아주 나이 많은 사람들의 경우,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고 말한다. 죽음에 이르기전에 일어나는 일들, 다시 말해 청력, 기억력 친구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활방식을 잃는다는 것이 두렵다는 것이다. 실버스톤 박사의 표현대로 나이가 든다는 것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잃는 것이다. 운이 좋고 꼼꼼하게 자기관리-건강한 식습관, 운동, 혈압조절, 필요할때 의학의 도움을 적절히 받을 것-를 한 사람은 오랫동안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점점 많은 것을 잃어가다 보면, 일상적인 삶을 유지 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충족하기에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버거운 상태에 이르게 된다.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 하는 경우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우리 대부분은 삶의 상당기간을 독립적으로 사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쇠약해진 상태로 보내게 될 것이다. 언젠가 벌어질 일이지만,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기 싫어한다. 그 결과가 대부분 아무런 준비없이 그 단계에 도달한다.
실버스톤박사 부부는 잃어가는 것들에 대해 슬퍼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것에서 기쁨을 찾으려 했다. 대화를 즐겼고, 아내를 돌보는 데서 삶의 목표를 발견했고, 아내 역시 남편 옆에 있다는 사실에서 큰 의미를 찾았다. 서로의 존재에서 위안을 찾았다. 거의 70년을 함께 살아온 그 어느 때보다 서로를 사랑하며, 잘안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그러나 어느날 자신들의 삶이 얼마나 위태로운가를 깨닫게 해준 사건을 겪는다. 할머니가 기억력도 약해지고, 시력을 상실하고, 고막이 터지면서 청력을 완전히 잃은 것이다. 소리는 두사람 사이를 이어주던 유일한 끈이었다. 눈이 안보이는데다 청력까지 잃고나니, 두사람은 어떤 종류의 의사소통도 할 수 없었다. 감각이라는 닻을 잃게 되자, 그녀는 시간감각까지 잃었다. 점점 극심한 혼돈에 빠졌고, 때로는 망상에 잡히거나 불안증세를 보였다. 더 이상 아내를 돌볼수가 없었다. 그는 스트레스와 수면부족으로 지칠 대로 지쳐갔다. 두사람이 산책하던 중 할머니가 쓰러진 것이었다. 실버스톤 박사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천천히 걷고 있었고 땅도 평평했다. 아내가 쓰러지면서 양쪽 다리의 종아리뼈가 부러졌다.
박사가 가장 두려워하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내에게 필요한 도움은 이제 자신이 감당할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서 버렸다. 요양원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아내를 육체적으로 돌보는데 들어가는 온갖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두 사람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조치일거라고 생각한다. 실버스톤 박사가 오랫동안 그토록 힘들어 하든 일들, 목욕시키기, 화장실 대려가기, 옷입히기를 비롯해 중증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도움을 떠맡았다. 박사는 이제 원하는 일을 하면서 남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아내와 함께 보낼 수도 있었다. 요양원 직원들이 최선을 다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존재 자체가 짜증날 때가 많았다. 요양원 직원들은 아무도 어떻게 머리를 빗어주면 좋은지 묻지 않았다. 남편은 어떻게 음식을 잘라야 그녀가 어렵지 않게 음식을 삼킬 수 있는지, 아떻게 일으켜야 그녀가 편한지, 어떻게 옷을 입혀야 그녀가 좋아하는지 모두 알고 있었다. 박사가 아무리 설명해도 직원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낯선 환경 때문에 아내가 혼란스러워 하는 것을 염려하여 집으로 다시 데려오기로 결정했다. 두사람의 숙소는 요양원과 그저 한층 차이였다. 두사람은 삶에 대한 주도권을 놓지 않았다. 아내가 다시 걸을 수 있게 된지 4일후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
박사는 '내 몸의 일부가 없어진 느낌이예요. 팔다리를 잃은 것 같아요' 라며 실의에 빠졌다. 그러나 그에게 위안이 되는 일이 하나 있었다. 아내가 고통을 겪지 않았다는 것, 요양원에서 혼란을 겪으며 환자로 지내지 않고, 집에서 두사람이 오랫동안 간직해 온 사랑의 온기를 느끼며 평화롭게 보냈다는 사실이다. 앨리스 할머니도 집을 떠나는 것에 똑같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집이야말로 자신이 삶에 대한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느낌과 편암함을 주는 유일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M이라는 한 남성은 예순일곱 살로 부두하역노동자였는데 중풍으로 불구가 되었다. 당시 그는 가족이 거두어 주지 않으면, 구빈원(정부운영 요양원)에 들어가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이가 들어 도움이 필요한 데 자녀나 가진 돈이 없으면, 몸을 맡길 곳은 구빈원 뿐이었다. 구빈원은 암울 하고 거기 감금 된다는 것은 끔찍한 운명이 아닐 수 없었다.
남편과 아내가 떨어져 지내야 했고, 구빈원은 기본적인 위생괸리도 형편없었다. 게다가 주거환경은 끔찍하게 더럽고 황폐화 된게 보통이었다. 노인들에게 그런 곳에 들어가야 하는 것은 큰 공포다. 1935년 사회보장법이 통과 되면서, 미국은 국민연금 제도를 갖추게 되었다. 갑자기 미망인l의 장래가 안정되고, 부자들만의 전유물이었던 은퇴가 대중화 되었다. 경제개발로 대가족제도가 깨졌음에도 빈곤과 무관심으로 부터 노인들을 보호할 부의 축적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인도에도 자선단체가 운영하는 구루 미쉬람 브리드 아쉬람이라는 노인의 집이 있다. 그곳에 있는 노인의 절반 정도는 양로원과 병원에서 돈을 내지 못해 이송돼 온 사람들이다. 나머지 절반은 자원봉사자나 경찰이 거리와 공원 등에서 발견해 데려왔다. 거기에 시크교도인 손과 발을 번갈아 땅에 대며, 기어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부유한 동네 전파상을 소유했으며, 딸은 회계사, 아들은 소프트웨아 엔지니어라고 이야기했다. 그가 일을 당한 건 2년전이다. 그후 그는 몸이 마비된 채 두달반을 지냈다. 병원비가 들어갔고, 가족들은 더 이상 들여다 보지 않았다. 결국 병원에서 이곳에 데려다 놓은 것이다.
가족들에게 연락해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했지만, 가족들은 그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잡아뗐다. 이 사람들의 삶의 여정은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지만, 이 분들이 필요로 하는 시설을 제공할 수 없었다. 선진국 나라 노인들은 이런 운명을 맞게될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나라가 부유해짐으로서 가난한 사람들 조차도 요양원에 들어가 제대로 된 식사와 전문적인 의료서비스, 물리치료, 빙고게임을 누리는 생활을 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대의 양로원이나 요양원을 두렵고, 외롭고, 끔찍한 곳이라 여긴다. 이보다 나은 무엇인가를 원한다. 롱우드 하우스는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보였다. 최신의 시설, 안전성과 간호에 있었어도 최상의 등급을 판정받은 곳이다. 앨리스 할머니가 살던 옛집의 안락함을 누릴수 있게 해주었다. 자녀들과 친척들을 무척 안심시킬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할머니에게는 맞지 않았다. 할머니는 끝까지 그곳 생활에 익숙해지지 못했고, 그 상황을 받아들이지지도 않았다. 할머니는 우울해져 갔다. 할머니도 자신을 우울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딱 집어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런 말을 자주 했다. ‘ 여긴 집이 아니야’ 앨리스 할머니에게 롱우드 하우스는 집을 흉내낸 곳에 불과했다. 진짜 집이라고 느껴지는 곳에 산다는 것은 인간에게 무척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물고기에게 물이 중요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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