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는 29개의 관절이 있는데 모두 관절염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 관절사이의 공간이 없어져 뼈와 뼈가 닿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손에는 정식으로 명칭이 붙은 신경가지만 해도 48개나 있다. 손끝에 있는 피부 기계수용기(물리적 자극을 감각 신호로 바꾸는 기관)의 능력이 저하되면, 촉감에 대한 민감성이 떨어진다. 운동신경이 상실되면서 손놀림도 둔해진다. 이 모든 것이 정상이다. 물론 건강한 식생활과 신체활동 등으로 그 과정을 좀 늦출 수는 있겠지만, 완전히 멈추는 것은 불가능 하다. 폐의 기능이 줄고, 장운동이 느려지며, 분비선 기능이 멈춘다. 심지어 뇌마저 줄어든다. 70세가 되면 뇌가 줄어들어 두개골안에 2.5센티미터 정도 되는 공간이 생긴다. 나이든 사람은 머리에 충격을 받으면 뇌출혈을 일으킬 확률이 훨씬 높다. 뇌가 두개골안에서 덜거덕거리며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기억력과 다중 작업능력은 중년이 절정에 이르렀다가, 그 이후 점차 쇠퇴한다. 정보처리 속도도 훨씬 떨어지기 시작한다. 85세에 이르면 40%는 교과서적인 의미의 치매증세를 보인다.
10만년에 달하는 인류역사중 최근 수백년을 제외하면, 인간의 평균수명이 30세이하였다는 것을 잊지말자. 늙기전에 죽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몽테뉴는 16세기말 사회상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노령으로 죽는 것은 드물고 특이하고 놀라운 현상이며, 다른 형태의 죽음보다 훨씬 부자연스럽다. 그것은 그야말로 마지막 남은 극단적인 형태의 죽음이다'. 그러나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평균수명 80세가 넘는 지금, 우리는 정해진 시간을 훨씬 넘어 살고 있는 특이한 생명체인 셈이다. 최근 수명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유전인자는 놀라울 정도로 작은 요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복잡한 시스템이 무작위로 장애가 발생하는 것처럼 인체도 동일한 방식으로 고장이 난다고 한다. 아무 문제없이 순조롭게 작동하다가 중요한 부품이 고장나면, 순간적으로 폐기해야 할 상태가 되어버린다.
발전소 처럼 복잡한 시스템은 수천개의 중요한 그리고 부서지기 쉬운 부품이 들어가 있음에도 멈추지 않고 기능해야 한다. 따라서 엔지니어들은 여러 단계의 예비장치를 설계한다. 비상시에 대처해야 할, 또 다른 예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가브릴로프는 인체도 유전자가 설정한 한도 내에서 이런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주장한다. 신장도 하나 더, 폐도 하나 더, 생식샘도 하나 더, 치아도 여러개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우리 세포의 DNA는 일상적으로 자주 손상을 받고 있지만, 세포속에는 여러개의 DNA 수선장치가 들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시스템안의 결함이 점점 늘어나면, 결국 한군데만 더 고장나도 시스템 전체를 악화시키는 시점이 온다. 노쇠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흰머리가 생기는 것은 머리카락에 색깔을 부여하는 색소세포가 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피부세포 안에서 노폐물을 제거하는 장치가 서서히 기능을 잃으면, 잔여물이 뭉쳐서 끈적끈적한 황갈색의 리포푸신이 된다. 이것이 바로 피부에 나타나는 검버섯이다.
리포푸신이 땀샘에 축적되면 땀샘이 제기능을 하지 못한다. 나이가 들면 일사병에 걸릴 위험이 높아지고 더위에 빨리 지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눈은 이와 다른 이유로 나빠진다. 수정체는 내구성이 엄청나게 강한 크리스탈린 단백질로 되어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화학적인 변화가 일어나 탄력성이 감소한다. 이 때문에 40세가 넘으면 원시가 된다. 백내장이 아니더라도 건강한 60세의 망막에 도달하는 빛은 20세때의 3분의1이다. 노인병 전문의 펠릭스 실버스톤 박사에게 노인병 전문가들이 재현 가능한 특정 노화 경로를 식별해냈는지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 아뇨,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그저 허물어질 뿐입니다.’ 의학의 발전으로 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이른바 인구의 직사각형화가 일어나고 있다. 인류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한 공동체의 연령별 인구비율은 피라미드 형태를 띠었다. 공동체의 토대가 되는 어린아이들이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점차 연령대가 높은 집단으로 갈수록 비율이 줄어드는 모양새이다. 30년후에는 80세이상 인구와 5세이하 인구가 맞먹을 전망이다. 모든 선진국에서 이와 비슷한 패턴이 나타난다.
이 새로운 인구구조에 제대로 대처하고 있는 사회는 거의 없다. 우리는 여전히 65세에 은퇴하는 개념을 고수하고 있다. 65세이상의 인구비율이 20%를 육박해감에 따라 점점 유지하기 어려운 개념이 되고 있는 데도 말이다. 최고령층의 절반 이상이 배우자 없이 살고 있으며, 우리 대부분은 전례없이 적은 수의 자녀를 두고 있다. 의료계가 상당부분 자신들에게 책임 있는 이 변화를 맞닥뜨리는데 있어서도, 노년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방법에 대해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지식을 적용하는 데 있어서도, 너무 더디다는 것이다. 주류 의사들은 노인병학에 대해 관심을 꺼버린다. 노인들을 다룰 능력이 없기 때문이고, 이들의 증상은 열다섯가지쯤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증상이 수십년 이상 계속된 것이라고 본다. 노인병을 고칠 수는 없지만 관리하는 것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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