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병 클리닉에 여든다섯 살의 할머니가 찾아왔다. 할머니는 독신자 단지에서 요크셔테리어와 함께 살고 있었다. 남편은 23년전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근처에 사는 아들이 일주일에 한번 장을 봐다주고 날마다 들여다보곤 한다. ‘그저 내가 아직 살아있는지 보려는거지요’ 할머니가 농담을 던진다. 그는 혼자서도 상당히 잘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요리와 청소도 스스로 하고, 약복용과 공과금 관리도 혼자서 해내고 있었다. 할머니는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옷을 입는다. 약을 먹고, 개밥을 주고, 아침식사를 한다. 아침은 시리얼과 바나나를 먹고, 다음에 마당에서 개를 산책시킨다. 그 다음 빨래나 청소와 같은 집안 일을 한다. 늦은 아침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서 쉰다. 점심 메뉴는 샌드위치에 오렌지 쥬스이다. 점심식사후 마당에 나가 앉아 있다.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지만, 이제 할 수가 없다. 오후에 집안 일을 좀 더 하고, 낮잠을 자거나 전화를 한다. 그러다 저녁식사를 만들 때가 된다. 샐로드와 구운 감자 혹은 스크램블 에그를 먹는다. 밤에는 야구경기, 농구경기를 본다. 보통 잠자는 시간은 자정쯤이다.
할머니는 나이에 비해 건강이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심해지는 관절염과 요실금 그리고 대장암 전이에 이르기 까지 각종 질병을 가지고 있었다. 짧은 진찰 시간동안 우선 순위를 정하는 것이 중요해 보였다. 가장 목숨에 위협이 되는 증상에 초점을 맞추거나, 고통을 주는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노인병 전문 과장 생각은 달랐다. 그는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거의 묻지 않았다. 대신 오랫동안 할머니 발을 살폈다. 발을 씻을 정도로 허리를 굽힐수 없어서 발을 스스로 씻을 수 없다면, 전체적인 관리부재를 보여주는 것이자 현실적 위험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할머니 발은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할머니는 정신는 정신이 건강하고, 육체적으로도 강하다고 했다. 할머니가 처한 상황에서 가장 큰 위험은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을 잃게 되는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가장 심각한 위험은 폐결절도, 요통도 아닌 바로 넘어지는 것이었다. 넘어지는 데는 세가지 주요 원인이 있다.
균형감각쇠퇴, 네가지 이상의 처방약복용. 그리고 근육약화다. 노인병 전문과장은 어떤 의사든 환자가 삶의 질을 유지하도록 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질병만 치료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해결될거라고 생각한다. 노인병 전문의에게는 그것도 의학적 문제다. 사람들은 자신의 몸과 정신이 노화하는 것을 멈출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좀 더 감당하기 쉽고, 적어도 최악의 경우는 피하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 할머니가 넘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나를 비롯해 가족들중 그 누구도 할머니의 낙상의 위험을 알리고, 경고신호였다는 것을 몰랐고, 약간의 간단한 변화만 줬어도 할머니가 원하는 방식의 삶과 독립성을 좀 더 연장할 수 있으리라는 것도 몰랐다. 상황은 점점 나빠지기만 했다. 그러던중 할머니는 차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가 났다. 몸의 쇠락은 넝쿨이 자라는 것처럼 진행된다. 하루하루 지내면서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대로 적응해 가며 산다. 그러다가 뭔가 일이 벌어지면, 모든 게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노화는 우리의 운명이고, 언젠가는 죽음이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몸 속의 마지막 예비장치 마저 모두 고장날 때까지 어떤 의학적 도움을 받느냐에 따라 그 과정은 많이 달라질수 있다. 가파르게 곤두박질치는 길이 될 수도 있고, 각자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을 좀더 오래 보존하며 사는 완만한 경사길이 될수도 있다. 의료계 종사자들은 대부분 이런 생각을 잘하지 않는다. 우리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문제를 처리하는데 능슥하다. 대장암, 고혈압, 무릎관절염 등 특정질환에 걸린 환자가 찾아오면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러나 고혈압과 무릎관절염에 더해 각종 다른 문제를 안고 있는 이를테면, 자신이 영위해온 삶의 방식을 모두 잃어버릴 위험에 처한 할머니를 만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많은 경우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어 버린다.
만일 과학자들이 생명을 연장하지는 못하더라도 요양원에 가거나, 우울증에 걸려 비참하게 마지막을 보낼 확률을 줄이는 장치를 개발한다면, 모두들 그걸 사기위해 줄을 설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그 상상의 장치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노인병 전문팀이다. 그들은 폐조직 검사나 허리수술을 한 것도 아니고, 자동노쇠방지장치를 삽입한 것도 아니다. 그저 처방약들을 더 단순하게 조절하고 관절염을 관리하기위해 세심히 지켜봤으면, 반드시 발톱을 손질하게끔 하고, 매끼 식사를 잘 챙기도록 할 것이다. 또한 환자에게 고립이 의심되는 징후는 없는지 살피고, 사회복지사가 방문해 환자의 집이 안전한지 확인하도록 한다.
노인병 전문의는 환자들의 신체와 신체의 변화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의 영양상태, 복용약, 생활상 등도 계속 주시해야 한다. 게다가 환자의 생활방식을 재조정 하기 위해 필요한 아주 작은 변화라도 이루려면, 환자로 하여금 우리 삶에서 바꿀수 없는 것, 다시말해 누구나 불가피하게 직면해야 하는 노령과 생의 종말에 대해 생각해 보게끔 만들어야 한다. 불로장생 할 수 있다는 환상이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지만, 노인병 전문가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라며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펠릭스 실버스톤 박사는 노화와 그것이 초래하는 고통스런 현실을 잘 관리하고, 감당하는 방법을 찾는데 일생을 바쳤다. 그는 노인전문의답게 자신이 겪은 변화를 객관적으로 관찰하려고 애썼다. 자신의 피부가 건조해졌다는 것, 후각이 약해졌다는 것, 야간시력이 나빠졌다는 것, 쉽게 피곤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또 치아를 잃기도 했다. 그는 자신을 할 수 있는 조치를 했다. 피부가 갈라지는 것을 방지하기위해 로션을 발랐고, 열사병에 걸리지 않도록 뜨거운 햇빛을 피했다.
또한 실내용 자전거에서 일주일에 세번 운동을 했고, 1년에 두번 치과에 갔다. 그가 가장 염려한 것은 뇌의 변화였다. 이전처럼 명확하게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 무슨 일을 할 때, 그냥 기계적으로 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려고 했다. 그의 마음속에 난 생각의 줄기가 익숙한 길로 흐르려는 경향이 있어서, 아무리 애써 새로운 길로 접어들려 해도 말을 잘 안들을 때가 있는 것이다. 그는 노쇠현상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가끔 우울해진다고 했다. 이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라앉지 않도록 떠받쳐 주는 것이 바로 '목적의식'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주변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생각 말이다. 그는 아내가 옷입는 것을 돕고, 복용해야 할 약을 챙겨주었다. 아침과 점심을 챙겨주는 것도 그의 일이었다. 아내를 산책시키고, 예약된 날 의사를 만나러 데려가기도 했다. ‘지금은 아내가 내 인생의 목적이에요’ 그가 말했다. 계속 말다툼을 하고, 온갖 것으로 서로에게 화를 내곤 했다. 하지만 둘 다 서로 용서하는 것도 참 잘했다. 그는 이 역할을 잘 해내기 위해 자신의 능력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도 면밀하게 주의를 기울인다. 그의 목표는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의학의 지식과 그의 몸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삶의 품위를 누리는 것이었다. 그는 일에서 일찍 은퇴하지도 않았고, 재정적으로 궁핍하지도 않았다. 사회적 관계에서 고립되는 것을 피했고, 자신의 뼈와 치아, 그리고 체중관리를 철저히 했다. 노인병 전문지식을 지닌 의사를 찾아가 자신이 독립적인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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