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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에 대하여(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인간의 화는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가?

다른 모든 격정에는 그 안에 일말의 차분함과 조용한 면이 있지만, 이 격정에는 오로지 격렬한 공격성만 가득할 뿐이다. 화는 그 상대방을 해할수만 있다면, 다른 그 무엇도 신경쓰지 않는다.  화는 그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겨누어진 비수의 칼 끝을 향해 덤벼들며, 앙갚음 하는 당사자인 자신마저 나락으로 떨어질지라도 철저한 복수를 갈망한다. 어떤 현자들은 화는 순간의 광기라고 말했다. 화는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버리는 건물과 같이 한순간에 자제심을 잃고, 이성과 충고에 귀를 닫고 무엇이 옳고 참된지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화에 사로잡힌 사람은 분별력을 잃고, 자신의 태도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다. 다른 모든 격정은 감출 수 있고 마음에 몰래 담아둘 수 있지만,  화는 저절로 끓넘치고 격해질수록 더욱 뚜렷이 표정으로 드러난다. 어떤 동물도 정상적인 상태에서 그렇게 무섭고 위험하지 않지만, 일단 화가 나면 사나움이 확연히 증가한다.

 

지금껏 그 어떤 역병도 인류에게 그보다 더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한 것은 없다. 학살과 독살, 고소와 맞고소,도시의 파괴, 민족의 멸망, 경매장에서 팔린 귀족의 재산들, 침략군의 공격에 허물어진 성벽, 화염과 불길에 휩싸인 거주자들과 드넓은 토지를 보라.  도시를 무너뜨린 건 화였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희생되어 피를 흘리고, 칼을 든 노예가 왕족의 목을 베고, 사람의 팔다리가 십자가에 매달린 것은 모두가 화가 저지른 것이다. 군대에게 무참하게 도살 당한 평민들, 무차별하게 학살당한 민족들. 군중들은 검투사들이 기꺼이 목숨을 내어놓지 않은 것을 자신들이 경멸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그에 따라 그들의 표정과 동작과 감정은 구경꾼의 입장에서 적의 입장으로 돌변한다. 아이들은 합당한 이유없이, 실제로 부당한 일을 당하지 않았는데도 부당한 일을 당했다는 막연한 느낌과 앙갚음을 해야겠다는 욕망에 사로 잡혀 화를 낸다.

 

반론: 우리를 해칠 의도를 품은 사람에게 화를 냅니다. 이것으로 볼 때 화는 분명 부당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화는 분명 보복에 대한 욕망은 아닙니다. 세상에 가장 힘없는 사람들도 힘센 사람에게 분노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화가 보복을 하고 싶은 욕망이라고 했지, 그것을 실행할 능력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들이 성취하지 못할 일들도 간절히 욕망한다‘화를 내는 것’과 ‘화를 잘 내는 급한 성격’이 어떻게 다른지 명백하다. 이는 술에 취한 사람과 주정뱅이가 다르고, 염려하는 사람이 겁쟁이와 다른 것과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서로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태어나고, 화는 서로를 파괴하기 위해 태어난다. 인간은 화합을 원하고 화는 분리를 원한다. 인간은 이익을 되기를 원하고 화는 해가 되기를 원한다.  인간은 낯선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고, 화는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에게까지 공격을 퍼부으려 한다.  인간은 타인의 이익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시키고  화는 상대방을 끌고 들어갈 수 있다면, 기꺼이 자신마저도 위험에 빠뜨린다. 마음이 악덕에 사로 잡혀 비뚤어졌을 때 우리는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가해 그들의 마음을 올바르게 편다.  법을 집행하고 시민사회를 이끄는 사람도 가능한 한 말로 사람들의 품성을 치유하는 것이 적절하다. 인간의 본성은 앙갚음을 추구하지 않는다. 

 

반론: 우리는 하나의 집단으로서 화를 낼 수 있지 않을까요?  분노는 사기를 높이고, 용기를 자극합니다. 화를 제거하는 대신 적당히 조절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화를 건강한 수단으로 적절히 유지하면, 행동이 유약해지거나  마음의 활력이 약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생각은 이렇다. 해로운 요인을 받아들인 다음에 관리하고 조절하기보다는 애초에 차단하고 받아 들이지 않는 것이 더 쉽다. 이성 자체는 고삐가 주어져 있어 자유자제로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으나,  이는 오직 격정과 분리되어 있는 동안만 그러하다.  애초에 격정을 차단하는 것은 가능할지라도 일단 이성이 격정과 뒤섞여 오염되고 나면 격정을 통제하지 못한다. 우리의 사고는 일단 흔들리고 자신의 발판을 잃고 나면, 난폭하게 밀치고 들어오는 것에 노예가 되어 끌려다닌다. 낭떠러지에 뛰어내린 사람은 하강하는 힘에 저항할 수 없다. 바로 그렇게 마음이 화, 사랑, 그 밖의 격정에 굴복하고 나면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고 무작정 돌진하게된다. 마음 자체의 무게 그리고 아래로 향하려는 악덕의 본성 때문에 백이면 백 마음을 깊은 나락으로 끌고 간다. 화가 마음에 들어와 우리가 그것에 주도권을 내어주게 되면 이성은 한치도 설자리가 없어지게 된다. 그 다음부터 화는 당신이 허락하든 말든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것이다.  이성과 격정은 별개의 사로 다른 장소에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더 좋은 상태나 더 나쁜 상태로 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