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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심리학 (배르벨 바르데츠키

여성적 나르시시즘이란? (2)

엄마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하는게 아니라, 엄마가 바라는 모습이 되어줄 때 비로소 사랑한다. 그러기 위해서 아이는 자신의 삶과 자율성을 희생해야 한다. 부모는 자식이 잘될 때 진심으로 기뻐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들의 가치가 드높아진 것으로 간주한다. 자기애적 착취란 아이의 개성과 아이 자체를 희생시키면서 부모가 자신의 위상을 드높이려 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애적 장애를 지닌 어른들은 대개 자신이 어린시절 착취 당했던 방법으로 타인을 착취한다. 만나는 상대도 자신의 나르시시즘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사람들 뿐이다. 애인이나 배우자를 선택할 때에도 적어도 자기와 같은 급수이거나, 자신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 고른다.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지위와 그 사람이 누리는 특권 때문이다.

 

나르시시즘의 확장된 영역이란, 자신이 가진 능력에 아이가 가진 능력을 더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아이가 예쁘게 생겼고, 영리하고, 이해력이 뛰어나고, 또래 아이들보다 조금 더 성숙하다면, 부모는 아이의 그런 능력을 자신의 능력과 동일시 한다. 아이가 듣는 칭찬을 부모도 같이 들으면서 자신들 가치도 그만큼 상승했다고 생각한다. 아이에게 자신을 투사 시켜서는 안된다. 그렇게 할 경우 아이는 엄마의 얼굴에서 자아를 찾는 대신 엄마의 절망만을 찾을 뿐이다.  반영이란 예컨대 엄마가 아이가 인지한 것을 인지한 뒤 그 사실을 말로써, 혹은 말이 아닌 다른 수단으로 아이게게 다시 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가 부서진 장난감 때문에 슬퍼한다면, 아이의 감정을 적절하게 반영하려면, 아이를 품에 안고 ‘네가 얼마나 가슴 아픈지 엄마도 알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반면에 ‘뭘 그런 걸로 슬프해’라며 슬프하지 않아야 할 이유만 강조하며, 다른 장난감을 내미는 것은 반영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행위이다.

 

뭔가 잃었을 때 드는 슬픈마음, 몸을 다쳤을 때 느끼는 고통, 좋은 일이 있을 때 마음 속에 샘솟는 느낌, 다른 사람이 자신을 위협하거나 도가 지나친 행동을 했을 때 들끊는 화 등을 나는 진정한 감정으로 간주한다. 특정 감정은 표출해서는 안되고, 그런 감정이 드는 생각 자체를 버리라고 자식에게 가르치는 부모가 얼마나 많은가? 사내아이에게 사내는 눈물을 보이면 안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왜 남자는 눈물을 보이면 안되는가? 그러면 어쩌란 말인가? 그런 가르침을 받은 아이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고민을 해결할 수 밖에 없다. 감정을 거부당하고 반영받지 못한 아이는 자신의 감정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한다.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부인하거나, 자기들 식으로 해석하는 등 감정을 이입시켜 주지 않으면, 아이는 올바른 자아 체험을 할 수 없게 되고 자기 자신이 아니라 주변환경에 발 맞추는 거짓자아를 형성하게 된다. 자기애적 인격장애의 근본원인은 사랑를 충분히 받지 못했거나 엄마가 지나치게 싸고돌며 과잉보호 한 것이다.  

 

애정이 결여되어 있거나,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은 아이는 절망감이나 고독감에 잘 빠진다. 반면 과보호 속에서 자란 아이는 보호자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며, 자신의 문제를 모두 보호자가 해결해주기를 바란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의 애정에 크게 의존한다. 그렇게 때문에 아이는 부모의 마음에 들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이때 아이의 겉모습은 곧 거짓자아, 혹은 가면이 된다. 거짓자아는 유년기 아이의 생존을 보장해 주는 매카니즘이다. 이후 어른이 되어서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솔직하게 전달할 능력을 갖지 못한다.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 결과가 바로 자기소외가 되고 마는 것이다. 어울려 함께 사는 세상에서 주변사람들을 고려하지 않고 살 수는 없고, 남들을 배려하는 행위가 무조건 희생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적응을 위한 노력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그 노력이 너무 지나칠 때 문제가 되는 것이다. 너무 지나치게 되면 자신의 개성을 주위사람들의 기대 뒤로 미루기 때문이다. 자기 소외가 습관이 되어버린 아이는 자신의 진정한 감정과 욕구를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문제를 겪게 된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여성들은 ‘거짓자아’ 뒤로 자기를 숨긴다. 자기자신과 상대방에게 가면쓴 모습만 보여준다. 행복한 모습, 자율적인 모습, 완벽한 모습, 성공한 모습만 보여준다. 건강한 자아는 자존감과 편안함으로 대변되며,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 어제의 내 모습이 오늘과 같고, 내일이 된다해도 내가 완전히 달라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갖는다. 자아는 그 자체로 모습을 드러낼 수 없고, 다양한 표출형태를 통해 드러난다. 자기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대하는 방식을 보고, 그 사람이 건강한 자존감을 지녔는지 여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건강한 자존감을 지닌 사람이라면,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필요이상으로 과대평가하지 않는다. 반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잘 모르고, 어린시절에 옳다고 배웠던 모습이 자신의 참 모습인 양 행세한다. 자신의 진정한 자아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거짓 자아를 끊임없에 내세우는 것이다. 아무거리낌 없이 자유로운 아이처럼 행동한다는 말은 기분이 좋을 때면 웃고 즐거워하며, 슬플 때는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나아가 두려움, 상처받은 마음, 누군가 보호해주기를 기대 등도, 거침없이 표현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어린시절 만족스럽지 못한 모녀관계를 겪고 이로 인해 자존감에 상처입은 사람이라고해서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외로이 살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구축해 나가면서 혹은 치료를 통해서 옛상처와 거부의 기억은 교정할 수 있다.

 

마초들은 겉으로는 강하고 쿨한 척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연인이나 배우자는 오로지 자신의 삶을 좀 더 편안하게 만들고, 좀더 빛내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다. 겉으로는 자신감과 여유를 지닌 척하며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다. 남성들은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려 하고 그 영역을 침범당할끼봐 두려워하는 반면, 여성들은 지나치게 주변환경에 적응하는 경향이 있다. 적응의 목적은 타인의 인정을 얻는 것이다남성적 나르시지즘의 환자들은 남들과 거리를 두려하고 자신만의 영역으로 간주한다. 반면 여성적 나르시시즘은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면서까지 주변 환경에 적응하고, 대인관계에 있어서는 필사적으로 공생관계를 구축하려는 것이 특징이다. 여성은 집착하고 남성은 기피한다. 여성적 나르시시즘은 자기비관적이고, 남성적 나르시시즘은 자아도취적 형태이다여자 아이들은 공격적으로 자기주장을 관철시키기보다는 얌전하게 순응하는 법을 배우고, 남자아이는 정반대의 것을  배우며 자란다. 상대방으로부터 공격을 당하면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남자답게 자라라고 배우는 것이다. 누가 자기 행동을 비판이라도 할라치면, 그는 거부당했다는 느낌을 받으며 투쟁하고,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려했다. 자기애에 빠진 이들의 심적 갈등은 대개 우월감과 열등감 사이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남성들은 전통적 남성상에 따라 열등감을 지나친 우월감으로 보완하려 한다. 사회적으로 대성공을 거둔 사업가들 중에 이런 유형들이 많다. 사회적으로 실패한 사람들은 곡예에 가까운 자동차 운전이나 고성방가 등 다른 분야에서 자신을 과시함으로써, 사회적 실패를 상쇄하려 한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여성들은 부정적 감정에 강하게 집착하고 부정적 감정을 끊임없이 양산해 낸다. 남자는 안정감을 얻기 위해 자신을 숭배하는 순종적인 여성을 필요로 하고, 반대로 여자는 자신의 이상적 자아상에 가깝게 남자를 가꾸고 자신을 희생하면서, 그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격상시키려 한다. 이때 여성은 남성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때문에, 남성은 여성의 이상화된 대리적 자아가 된다. 부족한 자신감을 파트너를 통해 상쇄하는 것이다. 이토록 관계에 대한 집착과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보완적 나르시시스트인 여성들은 남편이 자기를 함부로 대하고 무시하며, 마음의 상처를 주더라도 참고 견딘다. 내가 치료한 여성들 중에는 직업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고, 겉보기에는 뭐든 해낼 것 같은 자신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사생활에서는 안정감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거짓 자신감과 당당함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가면을 벗겨보면, 그 뒤에는 불안정하고 의존도가 높으며, 보호받고 싶은 나약한 존재가 숨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