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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심리학 (배르벨 바르데츠키

가족이라는 이름의 굴레

대략 생후 18개월쯤부터는 아이들의 생활공간이 확장된다. 혼자서 걸을 수 있고 엄마로부터 멀어지거나 엄마를 향해 다가갈 수 있으며, 각종 공간과 세계를 탐구할 수 있다. 또 언어능력이 발달되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이 시기에는 우월감, 전지전능하다는 느낌, 열광, 자기자신에 대한 관심 등의 특징이 관찰된다. 이 아이들은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고 그렇게 때문에 모두들 자신에게 무한한 관심을 보여야 한다고 믿는다. 이 시기 아이들은 그와 동시에 자신의 능력이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도 뼈아프게 깨닫는다. 우월감과 열등감의 통합을 방해하는 또 다른 원인은 부모가 아이에게 능력과 한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지 못하는 것이다. 부모와 아이사이에 의견충돌이 생길 때 부모가 승자가 되어버리는 경우, 아이는 부모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자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아이와 부모중 상대적으로 더 많은 힘을 가진 것은 늘 부모다. 그런데 아이가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범위가 확대 될수록 부모의 권력은 축소된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의 자율적 행동에 제약을 가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부모가 아이를 지원하고 아이로 하여금 자신이 지닌 장점과 더불어 약점까지 깨닫게 해준다면, 나아가 아이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혼자서 처리하도록 배려하고 아이의 능력밖의 일에 대해서는 성심껏 도와준다면, 아이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 현실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부모를 전지전능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강점도 있지만 약점도 지닌 존재, 다양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다. 아이를 비웃거나 조롱하는 것은 아이가 열등감에 빠질 수 있으며,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하든 간에 오냐오냐하고 별 것 아닌 일을 했을 때에도, 호들갑을 떨며 칭찬하는 태도는 오히려 아이에게 독이 된다. 우월감과 열등감을 현실적 수준에서 제한하지 않으면 올바른 자아개념 형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이의 자아상은 손상될 밖에 없다. 자신이 매우 능력있고 독립심이 넘치며 모든 것을 알아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류가 그중 하나요, 자기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라는 느낌에 괴로워하는 부류가 그 나머지였다.

 

'예뻐지려면 고통이 따른다'는 말에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예뻐질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예쁜 얼굴이나 몸매 등 외적인 매력에 치중하는 행위는 약한 자존감을 외모로 상쇄하려는 시도다. 많은 여성들이 음식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날씬한 몸매를 위해 무조건 피해야 한다는 무언가를 떠올린다. 하지만 음식에는 그보다 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훌륭한 어머니에게 있어서 음식은 가족을 위해 늘 준비해야 할 무엇이고, 맛난 요리는 칭찬과 애정의 원천이기도 했다.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은 음식을 통해 전달되는 사랑이라는 말이 그야말로 실천에 옮겨지는 순간이다. 어머니들은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인해 그런 상황에 처하게된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의문을 전혀 제기하지 않고 사회적 관습과 통념을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이기도 하다. 가족과 자녀를 위해 자신이 품었던 꿈을 포기한다. 부족한 것 없이 자녀를 돌보고 모든 결정에 간섭하며, 가족 구성원들을 자신의 통제 하에 두려한다. 지금까지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희생으로 대체해 온 어머니들에게 있어, 딸의 독립은 존재 가치의 하락이나 상실을 뜻한다.

 

가족적, 사회적 시스템이 엄마로 하여금 자녀를 권위적으로 대하게 만드는 상황에서 개성을 고려한 자유로운 가정교육은 불가능하다. 엄마들이 자기만의 교육철학을 포기하고 사회가 제시하는 기준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부모가 자신을 인격체로서 수용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대해 적절하게 반응하지 않은 경험을 안은 이들은, 부모가 되어서도 채워지지 않은 나르시시즘을 그대로 떠안고 살아간다. 감정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에 놓인 이 부모들은 그러한 존재를 아이에게 발견하려 한다. 60년대 경제성장과 여성해방운동은 여성들에게 자주성을 발휘하고, 각자의 삶을 스스로 창출해 나갈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해 주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전해내려온 성역할을 대체한 것은 아니었다. 기존의 성역할에 새로운 성역할이 추가된 것뿐이고, 기존의 여성상이 확장된 형태에 불과했다. 여성의 전통적 성역할은 한물 건너갔고 그 대신 모든 일을 능수능란하게 해내는 여성, 모든 일을 문제없이 처리하는 직장여성을 요구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보스킨드-로달과 설린은 여성의 사회화의 결과를 두고 '사회적 노이로제'라는 표현을 썼다. 수많은 현대여성들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좌절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이는 현상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사람과 사람사이, 즉 대인관계를 통해 우리는 늘 무언가를 배우거나 가르치고, 이를 통해 성장한다. 원칙적으로 모든 가족 구성원이 동등한 지위를 지닌다. 어떤 그룹이든 간에 공동생활을 가능케 하기 위한 합의와 규칙이란 것이 존재한다. 역기능적 규칙은 갖고 구성원 개개인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 규정은 대개 묵언의 합의에 의해 마련되고 무의식중에 생성되기 때문에,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도 드물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여자는 모든 가족들의 감정을 배려하느라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 틈이 없다. 그러다 보니 자기자신의 신체적, 감정적 상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공생의 정도가 지나친 가족들의 또 다른 특징은 개개인의 독립성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렇게 상호간섭 정도가 높은 것도 결국 분리불안 때문이다. 가족 외부에서 자신의 감정과 교류하고 건설적 관계를 맺을 만한 사람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분리불안이 야기된다.

 

자기애적 착취성향이나 자녀에 대한 소유욕을 지닌 부모들은 자녀를 모성본능으로 따뜻하게 감싸주기 보다는 가부장적 권위를 내세우며, 자녀에게 부담을 지운다. 여성적 나르시시즘에 빠진 여성들은 성공에 과도하게 집착하면서 남성을 경쟁상대로 여긴다. 남자를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자를 동등한 입장의 파트너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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