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은 인간을 만드는 학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수백만년전 유인원에서
진화한 인간이지만, 그 본능적인 생존을 위한 기반은 야수성이다. 그 야수성은
살아가는 환경이 좋을 때, 생존이 위협받지 않는다고 느낄 때는 나타나지 않지만,
생존이 위협을 받는다고 느끼는, 어려운 상황에서 나타난다.
동물도 인간이 기르면 온순해진다. 아마 그것은 생존에 대한 위협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농경시대 우리 조상들의 공부는 대부분 '인문학'이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인간의 도리를 공부했다. 인仁을 배우고, 의義를
배우고, 덕德을 배웠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서민들은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길을 공부했다. 물질적으로
궁핍한 상황에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 중요한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공부했다. 산업이후 인간은 물질적 풍부해졌고, 상공업이 삶의 중심이
되면서 공부의 주목적은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돈을 많이 벌기위한, 어떤 기능을 배우기 위해 공부한다. 인문학은
현대에 들어서면서, 언제부터인가 쓰잘데기 없는 학문으로 무시되었다. 그 결과
인간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잃었다. 힘든 시련, 익숙하지 못한 상황을
극복할 기질도, 능력도 없다. 갈길을 잃은 인간은 방황하고, 두렵고, 항상 일상에서
생존의 위협을 느낀다.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를 사회가 요구하는 어떤 기능을 하는
개인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한 개인을 그러한 기능을 하는
사회의 구성 요소로 만들기 이전에, 개인의 정신적 기반이 되는 인성人性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기능은 수시로 변한다. 변화하는 사회환경에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그 상황에 필요한 인성이 우선이다. 인성은 쉽게 만들 수 있는 것도, 바꿀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속적으로 의지를 갖고, 느끼고, 생각하고, 수련해야 한다.
인성人性을 위해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어떻게
이야기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에 대해 배워야 한다.
'차나 한잔 들고가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연의 순리에 따라야 (0) | 2014.12.12 |
---|---|
노동 (0) | 2014.12.11 |
삶을 산다는 것은 예술을 하는 행위다. (0) | 2014.12.08 |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공부밖에 없다. (0) | 2014.12.04 |
나의 욕망은? (0) | 2014.1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