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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 한병철, 김태환 옮김)

우울사회(1)

피로란 스스로는 고통을 느낄 줄 모르는 간의 고통이다. 따라서 자기 착취의 주체인 프로메테우스는 엄청난 피로에 빠지고 말 것이다. 오늘의 사회는 날이 갈수록 금지와 명령의 부정성을 철폐해 가며, 자유로운 사회를 자처하는 성과사회이다. 이러한 사회적 변동은 인간의 내적 영혼에도 구조적 변화를 가져온다.  칸트의 도덕적 주체 역시 폭력에 예속 되어 있다.  모든 인간은 양심을 갖고 있으며,  내면의 판사에게 감시 당하고, 위협받고 그에 대한 존경심을 품도록 요구 받는다. 그리고 이처럼 법을 넘어서, 인간 내면에서 감시하는 폭력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의 본질에 합체되어 있다.  이 주체는 어떤 타자의 명으로 행동하지만 그 타자는 자기 자신의 일부인 것이다. 후기 근대의 성과 주체는 의무적인 일에 매달리지 않는다.  노동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엇보다 쾌락 획득이다. 타자의 명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귀를 기울인다. 그는 자기 자신의 경영자가 되어야 한다. 명령하는 타자의 부정성에서 벗어난다. 이러한 타자로부터의 자유가 해방적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타자로부터 자유는 나르시시적 자기 관계로 전도되며, 이는 오늘날 성과 주체가 겪는 많은 심리장애의 원천이 된다.

 

세네트 역시 보상의 위기가 온 원인으로 나르시시적 장애와 타자관계의 결핍을 들고 있다. 나르시시즘에서는 자아가 결코 새로운 것, 다른 것과 마주치지 못한다. 나르시시스트는 경험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는 체험하고자 한다. 마주치는 모든 것 속에서 자기 자신을 체험하려 하는 것이다.  경험하는 인간은 타자와 마주한다. 반면 체험은 자아를 타자 속으로 연장시킨다. 따라서 체험은 동화적으로 작용한다. 자기애는 자기 자신에 비해 타자를 폄하하고 거부한다는 점에서 아직은 부정성의 영향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아는 타자와 대립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정립한다. 이로써 자아와 타자의 경계선이 유지된다.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자는 타자와의 대립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설정한다.  나르시시즘에서는 타자 관계가 소실되고, 이에 따라 안정된 자아의 이미지도 형성되지 못한다.

 

세네트는 “ 기대가 끝없이 올라감에 따라 사람들은 그 어떤 행동에서도 결코 만족감을 맛볼 수 없게 되는데 이와 함께 무언가를 완결시킬 수 있는 능력도 상실한다. 어떤 목표를 이룩했다는 느낌은 회피 된다.  왜냐하면 완성을 통해 자신의 체험은 객관화 되고 하나의 형태, 형식을 얻게 될 것이며, 이로써 자아에서 독립한 안정적 존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세네트에 따르면 완성을 통해 자아와 무관하게 존속하며, 자아를 약화시킬수 있는 어떤 객관화 할 수 있는 형태가 생겨나기 때문에, 나르시스적 개인은 의도적으로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거나 뭔가 완결을 회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다. 

 

히스테리는 심적 억압, 금지, 부인과 같이 무의식의 형성으로 이어지는 부정성을 전제한다. 히스테리 환자가 이처럼 어떤 특정적 형태를 나타낸다면, 우울증 환자는 무형적이다. 그는 성격없는 인간이다. 긍정적으로 보아준다면 성격없는 인간이란 어떤 모습으로도 나타날 수 있고, 어떤 역할이나 기능도 수행할 수 있는 유연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무형성 내지 유연성은 높은 경제적 효율을 가능하게 한다. 우울증, 소진증후군,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와 같은 오늘날의 정신질환은 심적억압이나 부인과는 무관하다. 그것은 오히려 긍정성의 과잉, 즉 부인이 아니라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무능함, 해서는 안됨이 아니라 전부 할 수 있음에서 비릇된다. 부정성의 철폐는 성과의 제고를 위한 것이다. 

 

프로이드에 따르면 '멜랑콜리'란 나르시시즘적인 동일시를 통해, 자아의 일부로 내면화 된 타자가 자아에 대해 파괴적 작용을 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로써 타자와의 갈등은 내면화 되고, 자기 자신과의 갈등 관계로 진하여, 결국 자아의 빈곤과 자기 공격성으로 이어진다.  우울증에는 아예 타자의 차원이 개입되어 있지 않다. 소진burnout은 자주 우울증으로 귀결되고, 이때 우울증을 유발하는 원인으로는 오히려 과도한 긴장과 과부하로 파괴적 특성까지 나타내는 과잉 자기관계를 들수 있는 것이다.  탈진과 우울상태에 빠진 성과주체는 말하자면 자기 자신으로 인해 자신과의 전쟁으로 인해 자치고 탈진해 버린다자신에게서 걸어나와 바깥에 머물며 타자와 세계에 자신을 맡길 줄은 전혀 모른 채, 그저 자기 속으로 이를 악물 따름이다. 그 결과 남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속이 텅 비어버린 공허한 자아 뿐이다.  주체는 점점 더 빨리 돌아가는 쳇바퀴 속에서 마모 되어간다. 가상공간에서는 타자성과 타자의 저항성이 부족해진다. 가상공간에서 자아는 사실상 현실원리 없이 다시 말해 타자의 원리와 저항의 원리에 구애받지 않고 움직일 수 있다.  실재가 무엇보다도  그 저항성을 통해 존재감을 가진다면, 가상화와 디지털의 과정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그러한 실재를 지워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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