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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 한병철, 김태환 옮김)

성과사회 , 깊은 심심함

병원, 정신병자 수용소, 감옥, 병영, 공장으로 이루어진 푸코의 규율사회는 더 이상 오늘의 사회가 아니다. 오늘의 사회에는 피트니스 클럽, 오피스빌딩, 은행, 공항, 쇼핑몰로 이루어진 사회이다. 이 사회 주민은 더 이상 복종적 주체가 아니라, 성과주체라고 불린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경영하는 기업가다규율사회에서는 여전히 'NO'가 지배적이었다. 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다.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 낸다.  생산성의 향상을 위해서 규율의 패러다임은 '성과의 패러다임' 내지'할 수 있음'이라는 긍정의 도식으로 대체된다. 알랭 에랭베르에게 우울증은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한 후기 근대적 인간의 좌절에 대한 병리학적 표현이다. 우울증을 초래하는 요인 가운데 사회의 원자화와 파편화로 인한 인간적 유대의 결핍도 있다. 오직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명령이 아니라, 성과를 향한 압박이 탈진 우울증을 초래한다.  실제로 인간을 병들게 하는 것은 과도한 책임과 주도권이 아니라, 후기 근대적 노동사회의 새로운 계율이 된 성과주의의 명령이다.

 

긍정성의 과잉상태에 아무 대책도 없이 무력하게 내던져져 있는 새로운 인간형은, 그 어떤 주권도 지니지 못한다. 우울한 인간은 노동하는 동물로서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타자의 강요없이 자발적으로 그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파괴적인 자책과 자학으로 이어진다. 우울증 환자는 내면화 된 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군인이다. 성과주체는 노동을 강요하거나 착취하는 외적인 지배기구에서 자유롭다. 성과 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과도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 착취로 치닫는다. 자기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가해자와 피해자는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다.

 

업무부담의 증가는 시간과 주의를 관리하는 특별한 기법을 요구하는 데,  그러한 기법은 다시 주의구조에 영향을 미친다. 멀티태스킹이라는 시간과 주의관리기법은 문명의 진보를 의미하진 않는다. 야생에서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기법이 멀티태스킹이다. 먹이를 먹는 동물은 이와 동시에 다른 과업도 신경을 써야 한다.  이를테면 경쟁자가 먹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고, 먹는 도중 도로 잡아먹히는 일이 없도록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하며, 동시에 새끼들도 감시하고 또 짝짓기 상대도 시야에서 놓치지 않아야 한다.동물은 주의를 다양한 활동에 분배를 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런 까닭에 깊은 사색에 잠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동물은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대상에 사색적으로 몰입할 수 없다. 언제나 그 배경의 사태도 계속 정신적으로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사회적 발전과 주의구조의 변화는 인간사회를 점점 더 수렵자유구역과 유사한 곳으로 만들어간다.

 

철학을 포함한 인류의 문화적 업적은 깊은 사색적 주의에 힘입은 것이다 문화는 깊이 주의할 수 있는 환경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런 깊은 주의는 과잉주의에 자리를 내주며, 사라져 가고 있다. 다양한 과업, 정보 원천과 처리과정 사이에서 빠르게 초점을 이동하는 것이 이러한 산만주의의 특징인 것이다그것은 심심한 것에 대해 거의 참을성 없는 까닭에,  창조적 과정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는 깊은 심심함을 허용하지 못한다.  잠이 육체적 이완의 정점이라면,  깊은 심심함은 정신적 이완의 장점이다. 단순한 분주함은 어떤 새로운 것도 낳지 못한다. 귀기울여 듣는 기능이 소실되고, 귀기울여 듣는 자의 공동체도 사라진다. 귀기울여 듣는 재능은 깊은 사색적주의를 키울 수 있는 능력의 기반이 된다

 

사색의 능력은 반드시 영원한 존재에만 묶여 있는 것만은 아니다.  떠다니는 것, 눈에 잘 띄지 않는 것, 금새 사라져 버리는 것이야말로 오직 깊은 사색적 주의 앞에서만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는 것이다. 느린 것에 대한 접근 역시, 오랫동안 머무를줄 아는 사색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인간은 사색하는 상태에서만  자기 자신의 밖으로 나와서 사물들의 세계속으로 빠져들 수 있는 것이다사색적 집중상태에 이르지 못한다면, 시선은 그저 불안하게 헤매기만 할 뿐 아무것도 표현해 내지 못할 것이다. 예술이란 표현행동이다우리 문명은 평온의 결핍으로 인해 새로운 야만상태로 치닫고 있다. 활동하는자, 부산한 자가 이렇게 높이 평가를 받는 시대는 일찍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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