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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지음

가족계획

야생동물은 노쇠하여 죽는 일이 거의 없다. 실제로 노화가 되기 훨씬 이전에 굶거나 병들거나 또는 포식자에게 먹혀버리게 된다.  최근까지 인간도 이러한 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개의 동물은 어린 단계에서 죽고 알의 단계를 넘기지 못하는 개체군도 많다. 기아와 그 밖의 사망 원인이 개체군의 무제한 증가를 불가능하게 하는 궁극적 이유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종에 있어서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상황이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만약 동물이 출생률을 조절하기만 하면 기아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종을 취해도 한 둥지안의 알 수 또는 한 배의 새끼수는 어느 정도 일정한 수를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 무제한의 새끼를 낳는 동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동물들은 집단 전체 이익을 위해 가능한 한 출생률 이하 새끼를 낳는다는 것이 윈-에드워즈의 가정이었다. 윈-에드워즈는 세력권을 놓고 다투는 동물들이 한조각의 먹이와 같은 현실적인 목적물 대신 특권을 보증하는 표식이 될 수 있는 대용 목적물을 가지고 싸우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개개의 경우 암놈은 세력권이 없는 수놈과는 짝짓기 하려고 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사귀던 수놈이 패하고 다른 수놈이 그 세력권을 차지하면 암놈은 재빠르게 그 승자 편으로 자리를 바꾸는 일이 자주있다.  성실하게 일부일처제를 지키는 종의 경우에도 암놈은 수놈과 개체적으로 결합되기보다는 오히려 수놈이 소유하는 세력권과 결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개체군이 너무 커지면 세력권을 갖지 못하는 개체가 생기게 되고 그들은 번식할 수 없게 된다. 원-에드워즈에 의하면 세력권의 획득은 번식의 티켓 또는 허가증을 입수하는 것과 같다. 가능한 세력권의 수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소위 번식 허가증 발행수 가 한정되어 있는 듯하다. 이런 허가증을 누가 획득하는가를 가지고 개체는 서로 싸울 것이다. 원-에드워즈는 높은 사회지위가 번식의 자격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티켓이라고 생각한다. 직접 암놈을 에워싸고 싸우는 대신에 개체는 사회적 지위를 걸고 싸우기 때문에 만일 상위의 사회적 지위에 도달하지 못하면, 그들은 번식의 자격이 없는 것으로 자인한다는 것이다. 물론 하위의 개체는 끊임없이 높은 사회적 지위를 향해 나아가려 할 것이다.

 

현대 문명인들에게는 가족구성원의 크기가 개개의 부모가 조달할 수 있는 한정된 자원들에 의해서 이미 제한 받지 않는 현상이 생기고 있다. 어떤 부부가 자기들이 양육가능한 이상의 아이를 낳았다고 하면 국가가 개입하여 과잉분의 아이들을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한다. 물질적 자원을 전혀 가지지 못하는 부부가 다수의 아이를 여성의 생리적 한계에 낳아 기르려 한다면 실제로 이것을 저지하는 수단은 없다. 그러므로 복지국가라는 것은 극히 부자연적인 실체다.

 

사회성 곤충의 한 집단은 거대한 가족이고 모든 개체는 한 어미에서 유래하는 것이 보통이다. 일벌레는 스스로 번식하는 것이 거의 또는 전혀 없고 종종 몇 개의 분명한 계급으로 분류된다. 그들에게 예컨대 작은 일벌레 , 큰 일벌레, 병정 같은 고도로 특수화된 계급이 있다. 번식능력을 나타내는 암놈이 여왕이라 부른다. 번식능력이 있는 수놈을 수벌 또는 왕벌이라고 부른다. 고도로 발달된 사회적인 종에서의 번식개체는 자식 생산 이외의 일은 전혀하지 않는다. 먹이와 보호는 일벌레에 의해 이루어지고 애벌레의 시중도 일벌레의 몫이다. 개미 등 몇몇 종에서 여왕은 토실토실하게 부풀어 오른 거대한 알공장이 된다. 몸의 크기는 일개미의 수백배에 달하고 거의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이것이 곤충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도 없을 정도이다. 여왕개미는 계속 일개미의 시중을 받는다. 일개미는 여왕의 몸을 돌보거나 먹이를 주기도 하고 또 여왕이 계속 출산하는 알을 공동의 보육원으로 운반하기도 한다. 이 거대한 여왕이 왕실을 이동할 때에는 여왕을 그 상태 그대로 고되게 일하는 큰 무리의 일개미 등에 업혀서 운반된다.

 

사회성 곤충에서 개체는 애 낳는 자와 애 키우는 자 두 주요계급으로 나누어져 있다. 애 낳기를 담당하는자는 번식력 있는 암컷과 수컷이고 애 키우기를 맡는자는 일벌레들이다. 일벌레중에 흰개미의 경우는 암수 모두가 불임인데 기타 모든 사회성 곤충에서는 암놈이 불임이다. 애 낳기와 애 키우기의 어떤 형체의 개체도 자기의 일에만 전념하기 때문에 그것에 관해서 아주 효율적으로 임한다. 그런데 도대체 누구의 입장에서 효율적인가?  그런 짓을 해서 일벌레에게 무슨 이득이 있는가?

 

개미 무리중에 다른 종류의 개미를 노예로 삼는 종이 있다. 노예 사역종의 일개미는 일반적인 일을 전혀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솜씨가 좋지 않다. 일개미들이 잘 할 수 있는 것은 노예를 사냥하는 일이다. 대립하는 군대가 상대방이 죽을 때까지 싸우는 진정한 의미의 전쟁은, 사람과 사회성 곤충에서만 볼 수 있다. 많은 개미류에서 병정개미라고 하는 특수한 일개미는 무시무시한 전투용의 턱을 가지고 있어, 집단을 위해 다른 개미 군대와 싸우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노예 사냥도 전투행위의 특수한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노예 사역개미는 다른 종의 개미집을 공격해 집을 방위하고 있는 일개미나 병정개미를 죽이고 성충의 되기전의 애벌레를 빼앗아 간다. 애벌레는 포획자의 보금자리 안에서 성충이 되어 노예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들의 신경계에 주입된 프로그램에 따라 자기와 같은 종의 보금자리에서 일반적으로 하는 모든 일을 한다. 청소, 먹이 구하기, 새끼 돌보기 등 개미집을 유지하기 위한 일상적인 작업에 정성을 쏟고 있는 사이에 노예 사역종의 일개미 즉,  병정개미는 다시 노예사냥 원정을 계속한다.  물론 노예들은 자기들이 시중들고 있는 여왕이나 새끼가 남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다.

 

수럽과 채집생활보다 정착해서 먹이를 양식하는 것이 훨씬 높은 효율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사회성 곤충은 인간보다 훨씬 이전에 발견했다. 예컨대 아메리카 종의 개미종과 아프리카 흰개미들은 매우 독립적으로 균원을 만드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남미의 우산개미는 식물 잎을 세분하여 특수한 퇴비 못자리를 만들고 거기에 특수한 균류를 뿌린다. 일개미는 자신의 먹잇감을 구하러 나가는 것이 아니고, 퇴비를 만드는 필요한 잎을 수집하러 나간다.

 

인간에 대한 특이성은 대개 문화라고 하는 하나의 말로 요약된다. 물론 나는 이 말을 통속적인 의미로서가 아니라 과학자가 쓸 때의 의미로서 사용하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보수적이면서도 어떤 형태의 진화를 일으키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적 전달은 유전적 전달과 유사하다. 문화적 진화의 위력을 진실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우리가 속한 인간이라는 종이다. 언어는 그 많은 측면의 하나다. 의복과 음식물, 의식과 습관, 예술과 건축, 기술과 공학등 이들 모두는 역사를 통해서, 마치 매우 속도가 빠른 유전적 진화와 같은 양식으로 진화하는데 물론 실제로는 유전적 진화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러나 유전적 진화와 같이 문화적인 진보도 진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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