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기 회의론자 섹스투스 엠피리쿠스는 상충하는 인식과 관찰을 다루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 종種간의 차이를 다룬다. 물고기가 보는 세상은 파리가 보는 세상과 다르고, 파리가 보는 세상은 새가 보는 세상과 다르며, 새가 보는 세상은 인간이 보는 세상과 다르다. 우리는 어떤 종이 보는 현실이 가장 정확한가에 대해 말할 수 없다.
* 개인간 차이를 바탕으로 한다. 사람마다 개인이 타고난 독특한 육체적, 정신적 편향에 따라 세상을 이해하고 거기에 반응하는 방식이 다를 것이다.
* 사물에 대해 서로 다른 인상을 남기는 감각들간의 차이를 바탕으로 한다. 사과의 향, 맛, 질감의 특징은 사과 자체에 기인한 것일까? 아니면 우리 감각 구조에 기인한 것일까? 모든 인간이 이런 과일을 똑같은 방식으로 경험할까?
* 우리의 지각은 항상 사물을 인식하는 시점의 상황 및 환경조건에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책, 도시, 영화 등도 삶의 어느 단계에서 경험하느냐에 따라 매우 다르게 느껴진다.
* 위치와 거리, 장소를 바탕으로 한다. 같은 사물이라도 다른 위치, 다른 거리에서 보면 다르게 보인다.
* 둘 이상의 요소가 섞여서 발생하는 상대성을 바탕으로 한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보는 일몰이 세계 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유는 상당량의 스모그가 빛을 굴절시켜 다채로운 색깔로 분산시키기 때문이다.
* 지각된 사물은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을 바탕으로 한다. 사물은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질량, 색깔, 움직임, 온도 등의 요소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 일반적인 상대성을 바탕으로 한다. 우리가 물리적으로 인지한 사물의 상대성부터 나이, 위치, 환경, 구성요소에 따른 상대성까지 일반적으로 인간이 하는 경험의 상대성을 다루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 현상의 빈도 즉 영속성 또는 희귀성을 바탕으로 한다. 사물의 중요성이나 가치, 세계의 다양한 측면을 밝히기 힘든 건 단지, 우리가 그들과 가까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파리에서 살면서 매일 에펠탑을 보는 것은 식상하지만, 난생 처음 에펠탑을 보는 여행객의 눈에는 흥미롭고 인상 깊을 것이다.
* 생활방식, 관습, 법, 믿음, 독단적인 가정 등 상반된 입장의 원인이 될만한 모든 것을 바탕으로 한다. 10년전 사물을 보는 방식과 10년후 사물을 보는 방식은 다를 것이다. 나고 자란 환경이 당신의 행동에 끼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독단론자들의 논리는 증거는 입장을 뒷받침 하고 입장은 증거를 뒷받침하고... 이것이 무한히 반복된다. 증거의 제시가 더 많은 증거를 요구하고, 그 증거들은 또 더 많은 증거들을 요구한다. 논증방식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해석에 영향을 끼치는 우리의 온갖 편향성 뿐만 아니라, 우리가 무언가를 인식하고 판단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추론과 논리를 설명해준다. 회의론자들은 현상을 묵묵히 따랐다. 사물 본질에 대해 단언하지도 않고 의심하지도 않으면서 묵묵히 따랐다. 섹스투스는 회의론자들이 묵묵히 따르는 실용적인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 회의론자들은 인간이 타고난 감각과 사유능력을 따른다.
* 회의론자들을 충족시키는 몇가지 충동이 있다. 허기는 음식을 먹게 하고 갈증은 물을 마시게 하며, 성욕은 성관계를 맺게 한다.
* 회의론자들은 사회에서 법과 질서의 필요성을 깨닫고 있었다. 은둔 생활을 할게 아니라면, 다른 사람과 어울려 어떻게 지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서 규칙의 필요성이 생긴다. 회의론자 들은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기술을 연마하고 직업을 가졌다. 타고난 재능을 갈고 딱는 것도 현상을 묵묵히 따르는 방식이다.
소크라테스는 자기 자신을 자기만족에 빠진 아테네 사람들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성가시게 구는 등에에 비유했다. 진정한 회의주의자들은 개념, 관념, 행위 등을 발전시킨 환경을 공통의 감각으로 인지한다. 철학자들은 이것을 '가설적 사실주의'라 부른다. 이 입장은 아주 기본적인 경험의 틀을 유지한다. 즉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영역을 추정 또는 가정하는데 여기에 사람, 동물, 식물, 별, 행성, 은하계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 이런 경험의 영역을 세계 또는 우주라 부를 수 있다. 회의론자들은 현상을 묵묵히 따르고 초자연주의자들은 판단을 중지한다. 역사의 특정 시기에는 인간이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언어와 대화, 감정의 표현으로 제한적이다. 이것을 '역사적 현사실성' 이라고 한다. 우리는 현 세대의 영향으로부터 제약을 받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유전적 치료에 대해서 논할 수 없었고, 뉴턴은 인테넷에서 정보를 검색할 수 없었다. 과학지식은 점진적으로 누적된다. 과거 위대한 과학자들의 업적 위에 새로운 업적을 쌓는다.
소크라테스와 회의론자들이 남긴 몇가지 유산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 나와 세계, 우주에 관한 정보는 자연주의적인 것과 초자연주의적인 것 두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초자연주의자들은 현실의 본질에 대해 절대적 진실을 안다고 주장한다. 자연주의자들은 세계를 공통 감각과 과학적 추론의 진실 수준에서 이해하려 한다.
* 소크라테스는 자기가 현실의 본질에 대한 절대적 진실을 알지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크라테스 방법론에 따라 처음에는 아는게 없는 척 상대편의 주장에 동의하면서 이야기를 유도해 상대편 논증에서 모순점을 찾게 한다.
* 초자연적인 관점의 주장이 특정 기준을 만족시키려면, 공통 감각적인 주장보다 훨씬 많은 노력과 능력이 요구된다. 보편적으로 함의된 본질적인 기준을 확립할 능력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이다. 초자연적인 대상에 대한 믿음은 추측 영역이어서, 우리와 우리가 속한 세계에 대한 공통 감각적이고, 자연의 법칙에 따른 이해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모든 이들의 합의를 도출하기 힘들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 어떤 주장을 할 때 전제를 제시하는 것은 자기 입장에서 무언가를 가정하는 것이다. 인간은 가정을 하고, 논리 일관성 등에 의지해 의사소통을 한다. 이런 의사송통을 할 때는 기본적인 수준에서 기본적인 논리 구조를 따라야 한다. 특정 주제에 대해 논할 때 상식 수준에서라도 늘 기본적인 가정 또는 전제가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 현실의 본질에 대해 초자연적인 관점의 절대적 가치가 있다고 착각하면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을 독단론자라 한다. 독단론자는 자기가 그런 문제에 대해 무지하다는 사실 조차 깨닫지 못한다.
*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만큼 그렇게 나쁘지 않다. 사실 무지의 인정은 책임감을 가지고, 비판적인 사고를 하려는 사람이 떼야 하는 첫걸음이다. 우리는 성찰을 통해 자기 무지를 인정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우리를 겸손하게 해주고, 모든 이들을 평등하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자신있게 인정할 수 있다. 나 자신과 세상에서의 내 위치를 이해하는 방법을 자유롭게 생각해 내고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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