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철학, 물음이 답이다.(최용철)

플라톤

끊임없이 변하는 물질세계는 변화무쌍한 세계이다. 변화무쌍한 물질세계와는 전혀 다른세계를 플라톤은 추구했다. 전혀 다른세계에 어울리는 개념은 수학개념이었다. 플라톤은 수학개념이 감각을 초월하는 영역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도덕개념은 현실 세계에서 보이는 모양이나 들리는 소리를 초월하는 다른 세계에서 나온다.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기준은 현실 세계와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형상이다형상중 최고좋음은, 형상은 좋음 그 자체이다. '좋음' 그자체는 인간주관에 결코 영향받지 않는 객관성을 지닌다. 라톤이 말하는 좋음 그 자체는 절대기준이다.  형상세계는 현실에서 경험하는 사물세계와는 다른 추상세계이다. 올바름이란 무엇인가? 올바름 자체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오늘 혹은, 어제 누구에게 잘못했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누가 이 방에서 가장 아름다운가를 묻는 것이 아니다. 철학은 지금 여기에 있는 무엇을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철학이 관심을 두는 것은 지금 여기와 대비되는 언제나 어느 곳이다. 언제나 어느 곳이란 특별한 공간을 뜻하지 않는 보편성을 의미한다. '형상'이 바로 언제 어느 곳을 뜻하는 보편세계에 속한다. 플라톤에게 형상은 절대 기준이다. 형상이란 본모습을 뜻한다.

 

플라톤은 지식과 믿음을 서로 나눈다. 지식은 본모습으로서 형상을 대상으로 삼는다. 반면 믿음은 모습과 비슷한 모습이라든가, 본 모습을 본딴 모습이라든가, 본 모습을 변형한 모습을 대상으로 삼는다. 지식은 믿음보다 더 고급이다. 지식은 온전하지만 믿음은 불완전하다본래 타고났지만 상실했던 지식을 되살리는 과정이 아남네시스 anamnsis , 이른바 상기想起 과정이다. 상기과정은 덮혀 있는 먼지를 조금씩 벗겨내 모양이 차츰 드러내는 과정에 비유한다. 벗기다보면 점차 희미한 모습이 점점 또렷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직 분명히 깨닫지 못하는 무의식에 놓인 지식이 점차 의식에 속하는 짓으로 바꾸어가는 과정과 흡사하다. 플라톤은 물질세계에서 나타나는 변화무쌍함을 초월하는 또 다른세계를 끌어들였다. 그건 형상이다, 형상이 진리다. 일상에서 사람들이 지니고 살아가는 지식은 결코 지식이 아니라, 믿음일 따름이다그것이 믿음인 까닭은 믿는 대상이 있다가 없어지는 변화속에서 존재와 바존재가 오락가락 하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인간정신을 이성, 기개, 욕망의 세부분으로 나눈다. 이성은 목적이나, 가치가 무엇인가를 인식한다. 기개는 행동을 일으키는 활력이다. 욕망이란 신체로 말미암은 갈망이다.  세 가지가 서로 총돌하고 갈등을 빚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정신상태이다

 

인간이 처한 조건을 플라톤은 두 마리 못된 말과 그 말을 통제하려는 마부에 비유한다. 한 마리 말은 채질필요도 없이 경고만으로 몰수 있다.  다른 한 마리 말은 건방지고 뻔뻔스러워 채찍질에도 잘 굴복하지 않는다. 마부가 목적지를 분명히 알고, 착한 말이 그 길을 따르더라도 나머지 한 마리가 날뛰어 다른 한 말과 마부를 곤경에 처하게 한다. 마부는 말을 잘 인도하고, 통제할 권리와 의무를 지닌다. 마찬가지로 이성은 기개와 욕망을 잘 통제해야 한다. 이 두마리 말이 없으면 아무데도 갈수 없는 마부처럼 이성은 기개와 욕망이라는 또 다른 필수불가결한 요소들과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들간의 상호관계는 이성이 결정한다.

 

목적을 세우는 기능이 가장 중요하다.  물론 감정도 끊임없이 쾌락이라는 목적을 추구한다.  또 쾌락 역시 삶에서 없어서는 안될 필수요소이다. 이성은 욕망을 진정한 대상으로 향하게 해야한다. 플라톤은 좋은삶을 사물이 각각 고유기능을 발휘하는 상태와 비교한다. 칼은 잘 자를수 있을 좋은 칼이다. 의사는 좋은 의료활동을 할 때 좋은 의사이다. 플라톤에 따르면 도덕이란 단순히 여론에 따른 것도 아니며, 단순히 권력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다. 망치가 지닌 기능이 여론이나 권력이 결정하지 않듯이,  인간에게 걸맞는 행위도 여론이나 권력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망치가 간직한 기능을 망치가 가진 본질에서 찾아야하는 것처럼, 인간다운 행위도 인간 본질을 분석해야 한다.

 

국가는 필요로 말미암아 생긴다. 그 누구도 필요한 자원을 자급자족 할 수 없다. 어느 누구도 혼자서 의식주 모두를 해결할 수 없다.  필요한 물자가 많아지면, 그 물자를 만들어서 공급하는 기술도 당연히 많아진다. 노동 분화가 점차 이루어진다.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적합한 한가지 일에 전념할 때, 더 많은 자원을 생산할 수 있고, 일도 수월해진다.  게다가 인간의 욕구는 단순히 의식주에 머물지 않고, 고상한 삶으로 확장된다. 그래서 사냥꾼이나 농부,어부로 살아가는 사람뿐 아니라 조각가, 음악가, 시인, 무용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겼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도시가 형성되고, 도시에 사는 시민들이 모인 집합체가 국가로 불린다. 국가 구성원은 이익을 얻어려고 노동을 하고 만들어낸 물품을 서로 교환한다. 플라톤은 물품을 교환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박한 삶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 사람들은 곡물과 와인, 옷과 신발을 생산하고 자기 스스로 집을 짓는다...여름에는 대체로 벗고 맨발로 일을 하지만,  겨울에는 충분히 옷을 입고 신발을 신는다.  보리와 밀을 주식으로 삼고,  밀을 갈아서 밀가루로 만들어 빵을 만든다. 그들은 나무로 만든 침대 위에서 잠시 몸을 걸친다. 그들은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자신들이 만든 와인을 마시고, 머리에 화관을 쓰고, 입으로 신을 찬양하는 즐거운 사회에 살면서...”

 

소박한 생활에 머물지 않고 사치스럽게 살려는 욕구가 생기면 부정한 국가가 출현한다. 욕구가 증대하면 국가경제도 확대된다.  욕구로 말미암아 전쟁을 할 수 있고, 시민과 재산을 보호하려는 목적에서 군대가 필요해지고, 국가를 수호하는 계층이 생긴다. 이제 두 계층은 분명해진다. 하나는 생산계층이며, 다른 하나는 공동사회를 수호하는 계층이다. 공동사회를 수호하는 계층중에서 특히 뛰어난 사람은 국가를 통치한다. 누가 생산을 하고 누가 국가를 수호하며, 누가 국가를 통치하는가. 그래서 플라톤은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통치자가 되려면 18세까지 문학, 음악, 기초수학을 훈련해야 하며, 육체 단련과 군사훈련을 받아야 한다. 20세에 이르면 고등수학을 배워야 하고, 30세에 이르면 변증법과 도덕, 철학을 5년코스로 해야 한다. 엄격한 교육 과정은 35세에 끝난다. 그러나 교육과정을 거쳐 선택된 사람들은 끝으로 대국민 봉사 시험을 치러야 한다.

 

국민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국민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분명히 터득해야 한다. 이때 나이가 50대에 이르고, 마침내 가장 높은 지식단계에 이르러 통치자 회의에 참석할 수 있다. 통치자는 기본 욕구만을 채워주는 수입으로 허세 없는 소박한 생활을 해야 한다. 그들은 누구도 유복한 생활을 하려고 통치자가 되려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국가 통치만이 인생의 목표이다. 플라톤은 통치자가 곧 철학자라는 철학자 왕을 내세운다.  플라톤은 현실에서 사람들이 마치 동굴에 갇힌 사람처럼 환상에 취해 살아간다고 주장한다. 지금 여기 현실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불완전하다. 오직 철학자만이 지금 현실과 다른 세계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