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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 한잔 들고가게!

텃밭을 가꾸면서

 

금년 봄에 친구 땅에 고추, 상추를 심었고 지난 주말에는 배추를 심고, 또 며칠 뒤 남은

고춧대를 모두 뽑고 열무를 심었다. 가끔은 주중에 가기도 하지만, 주말이면 왔다 갔다

하며 풀 뽑고, 물 주는 것 외에 특별히 한 것도 없는데, 주말마다 수확한 상추, 고추로

한여름 잘 먹었고, 또 즐거운 경험이었다.

 

집에서 텃밭까지 차로 15-20 분 정도 걸린다. 만나는 지인들이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안부를 물어오면, 나는 신이 나서 텃밭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그들은 나에게 조언한다.

'그것 해가지고, 기름 값이나 나오겠어, 사먹는게 낫지!'  할 말이 없다.

 

우리 대부분은 모든 것을 돈으로 계산한다. 나 역시 그렇다. 그러나 지금은 가능하면

모든 것을 돈과 분리해서 생각하려 애쓴다. 사물의 본질을 헤아려 보려 애쓴다.

그 본질을 보고, 느끼고, 내 스스로 구하려 한다. 나이 들어가면서 가능하면 돈에 대한

의존을 줄이려 애쓴다. 세상 모든 것을 돈으로 이야기 하면 나는 할 말이 없다. 그리고

그러한 자리를 가능하며 피하고 싶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돈 버는 것 말고, 살아가는 방법이 없는 줄 알고, 그것이

삶의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세상 모든 것에 돈의 잣대를 들이댄다. 사랑도,

우정도, 가족도.... 그리고 돈으로 해결하려 한다. '그거 얼마면 돼?'

 

돈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그런

잣대를 가지고 살면 인생은 고통이고, 절망이다. 가능하면 지금 돈에서 떨어지려

애 쓰는 것이 나머지 삶에서 내가 사는 생존전략이다.

 

고추 모종을 사서 심고, 나날이 그 싹이 쓱쑥 자라는 것이 경이롭고, 그 경이로움이

나에게는 희열이다. 텃밭에서 그것들을 보고 나도 모르게 말을 건네기도 한다.

뜨거운 헷빛 아래 커가던 새싹들이 어느새 고춧대가 되고, 고추가 열리는 것이

얼마나 대견하고 신기한지, 내가 한 것은 별로 한 것도 없지만...

 

그리고 한 여름 텃밭에서 고춧대에 무수히 달려있는 고추를 오늘 따내고, 며칠 지나고

다시 가보면 또 무수히 달려 있는, 무슨 마술을 부리는 것 같은 것이, 그것을 수확하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 놀이인지....

 

이제 막 따온 고추를, 찬물 말은 밥에 된장에 찍어 먹으면 약간의 풋내가 오히려 싱싱한

맛을 느끼게 하며 고추의 매운 맛과 또 고춧대에서 고춧잎을 따서 나물을 만들어 먹는

그 맛을 어디에서 느끼겠는가? 정성이 묻어나는 아내의 정과 어머님의 그 옛날 어릴 적

향수까지,  그 추억을 먹는 맛이 얼마나 좋은 경험인지!

 

한 여름 잠깐이지만 풀을 뽑고, 밭을 메다보면 온 몸은 금방 땀이 비오듯하여, 찬물

한바가지 덮어 씌고 마시는, 시원한 막걸리 한잔의 맛을 어디에다 비하겠는가?

이 얼마나 대단한 가치인가? 얼마나 소중한 인생의 희열이고, 경험인가?

어찌 이것을 돈으로 계산하겠는가? 어찌 기름 값으로 살 수 있겠는가?

세상 어떤 놀이가 이보다 의미있고, 재미있고, 가치 있다 하갰는가?

 

삶은 결국 경험이다. 이 순간을 인식하는 것이고, 느끼는 것이다.

인생은 돈으로, 내 능력으로, 물질로, 친구들과 가족과, 자연과 함께

만드는 경험이다. 내 주변에 모든 것이 아무리 풍부해도 그것을 이용하여

경험을 만들지 못하면, 아무 쓸모 없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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