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는 특히 코시모의 사례를 통해서, 다양한 권력이 상호각축 하는 과정에서 올바른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언급한다. 공화제 전통이 강한 피렌체를 장악하게 된 코시모 데 메디치 이후의 가문은 형식적인 공화제를 유지하면서, 시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축제와 향연을 자주 베풀었다. 사치와 오락이 만연하는 분위기속에서 시민들은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현실에 안주하고, 나태한 삶을 누리려고 했다. 이러한 피렌체의 타락상을 비판한 사제가 사보니롤라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말뿐인 예언자와 무기를 든 예언자의 대비를 통해서 종교와 정치의 논리가 엄연히 다름을 암시하고 있다. 외교와 군사부문에서 일했던 마키아벨리는 능력을 인정받게 되어, 공화정의 주요 업무를 맡게 되었다. 정의의 기수로 선임된 소데리니의 신임은 마키아벨리에게 공직활동의 힘을 실어 주게 된다. 그러나 메디치 가문의 복귀로 공직을 잃게된 그에게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체사레 보르자와 피에로 소데리니였다.
보르자는 난관을 극복하면서 자기군대를 육성해서 여우의 간계와 사자의 용맹으로 묘사되는 위기타파 능력을 통해서, 보르자는 자기군대를 확보하고, 자신에게 충성을 하지 않는 용병대장들을 속임수로 꾀어낸 다음 제거하는 등 보르자는 속임수에 능했다. 그리고 충복에게 귀족들을 제압하고 질서를 회복하지만, 인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충복을 참수함으로써 인민의 마음을 얻게 된다. 음모와 단호함을 적절히 사용할 줄 알았던 보르자였다. 반면에 피렌체 공화정 내의 귀족파와 인민파 간의 대립 속에서 정의의 기수로 오른 소데리니는 유약한 성격과 선의에 대한 믿음속에서 공화정을 몰락으로 이끈 인물이다. 정치적 순진함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시간을 끌었다. 그의 우유부단한 정책으로 나타나게 된다.
정치에서 항상 잠복해 있는 위기는 언제든지 밖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위기가 오는 것을 막을수는 없지만, 문제는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이다.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진행중인 위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행중인 위기를 잘 극복하면서 피해를 최소화 하는 것이다. 두 경우 모두 사태파악 능력이 필요하다. 정치적 지혜를 마키아벨리는 질병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 병은 초기에는 치료하기 쉬우나 진단하기 어려운데 비해서, 초기에 발견하여 적절히 치료하지 않으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진단하기 쉬우나 치료하기 어려워집니다. 국가를 통치하는 일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사태가 악화되어 모든 사람이 알아차릴 정도가 되면 어떤 해결책도 더 이상 소용이 없습니다. 시의적절한 개입과 지연이 필요합니다.' 마키아벨리는 예측불가능한 상황속에서 그것을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고, 그것은 바로 제방을 튼튼하게 쌓는 것이다. 그것은 자국군을 만들어 정치와 규율이 서는 강한 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용병들은 전쟁을 직업으로 하기 때문에 전쟁을 끝내려 하지 않았고, 서로이 이해관계를 따지고 있었다. 인민들이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들지 않고, 군대를 돈주고 사는 것은 돈많은 상업자본가들에게 가능한 일이었다. 강력한 제방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귀족들을 제어하고, 인민들의 지지에 의지해야 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귀족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다. 귀족은 지배욕이 충만한 자들로서 억압받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것 자체만으로 만족하는 인민들과는 달리, 인민들을 억압하고 지배하려는 자들이다. 따라서 그들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외세를 끌어들이거나, 모반을 일으키는 등 정치적 갈등을 끊임없이 일으키는 주모자들은 주로 귀족들이다. 만족할 줄 모르는 야심과 욕망에 사로잡힌 자들이다. 마키아벨리는 귀족들의 전횡을 막고, 인민들을 보호하는 것이 군주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군주는 귀족이 아니라 인민에 의지해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인민들을 귀족의 억압으로부터 보호하고, 인민들의 환심을 사며, 지지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키아벨리는 급변하는 정치상황 속에서 정치를 사고하고, 삶을 영위했다. 안정된 법이나 규칙이 지배하는 평온한 시기가 아니라, 폭력과 힘의 논리가 관철되는 시기를 살았던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는 윤리와 도덕은 현실세계를 설명할 수 없었다. 윤리와 도덕이라는 안경을 벗고 바라본 세계는 인간들간의 관계의 아이러니를 볼 수 있도록 하였다. 관용, 사랑보다 인색함, 두려움, 잔인함이 더 나을수 있음은 의도의 선함이 결과의 선함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가르침을 보여준다. 사적인 세계가 아니라 공적인 정치세계에서는 결과가 중요한 것이고, 일대일 관계가 아닌 다수간의 복잡한 관계에서는 의도보다는 결과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보기에 이탈리아에는 튼튼한 성벽도, 거대한 함선도, 금은 보화도 부족하지 않았다. 문제는 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관계에 있었다. 귀족들이 자원을 독점하고, 인민들이 정치에서 배제된 상황에서 이탈리아는 그 풍부한 물적, 인적자원을 응집시켜 외세에 대웅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치는 귀족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수단이 되었고, 인민들은 귀족들이 나누어주는 떡고물에 취해 배가 불러 꼭두각시가 되어버렸다. 公은 사라지고 私만 풍미하게 된 것이다. '부패와 무질서의 상황을 극복하고 질서를 세우는 것이 군주의 임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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