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로 마키아벨리는 1498년 29세 나이에 피렌체 공화정에 참여하여 외교업무를 담당했다. 1513년 메디치 정부 음모론에 연루되어 투옥되었으나, 메디치 가문의 추기경이 교황 레오10세로 즉위 하자 특사로 석방된다. 마키아벨리는 메디치정부의 공직에 참여하기 위해 계획을 짜고, 그 계획의 일환으로 군주론을 1513년말경에 집필하였으나 그의 기대는 실현되지 않는다. 정치사상사적 차원에서 볼 때 마키아벨리는 정치권력과 정치사상가의 관계에 관해서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정치사상가는 끊임없이 정치권력의 행사에 개입하거나 관여하고자하며 때로는 정치권력의 성격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헝시키고자 한다. 세계를 변혁시키고자 하는 충동은 정치철학의 창시자인 플라톤의 행적에서부터 이미 태동하고 있었다. 플라톤이 서구 최초로 대학으로 세운 아카데미도 이러한 사상을 실현 하기에 적합한 정치적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하여 설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도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은 대표적인 현실주의 사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군주론에서 군주에게 권력의 획득, 유지, 확대에 필요한 조언을 제시하기에 앞서, 마키아벨리는 사물의 실제적 진실과 결코 존재한 것으로 알려지거나, 목격된 적이 없는 공화국이나 군주국에 대한 구분을 하고 있다. 이제껏 그러한 것에 대해 논의만 했을 뿐 군주가 실세로 활동해야 하는 현실 세계에 관해서 아무런 지침도 제공하지 않았다.
마키아벨리 역설은 홉스에 이르러 비로소 군주에게서 개인으로 국가의 본성에서 인간의 분석으로 확대되었다. 물론 마키아벨리는아마도 국가에 대한 현실주의적 이론이 인간본성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고 감지했을 것이고, 인간본성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은,통찰은 홉스의 출현으로 비로소 정리되었다.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적인 사상은 영광과 권력을 추구하는 군주에게 단순히 종교적이거나, 윤리적인 규범에 구애받지 않을뿐 아니라, 걷잡을수 없는 욕망이나 격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냉정하고 계산적으로행동할 것을 요구했다. 폭력(violence)은 같은 어원에서 비롯된 격정(vehemence)이나 벗어남(violate)에도 잘 나타나 있듯이 인간의 신체나 재산에 대한 격렬한 힘의 사용이라 할 수 있으며, 이익의 합리성 및 계산적인 측면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의미를 지니고 있고 따라서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안정 파괴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마키아벨리의 놀라운 점은 통상 격정에서 비롯되는 폭력마저도 마치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 필요한 약을 처방하듯이 결과를 감안하여 필요한 적절한 양만을 계산적이고, 합리적으로 사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폭력마저도 계산적인 이익에 종속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영역을 독립적인 탐구영역으로 설정하여 자연법사상과 같은 중세적 사고방식과 결별하고, 권력의 문제를 중심으로 정치현상을 분석했다. 그는 정치현상을 종교적 가치나 윤리적 고려를 배제하고 순수하게 권력을 획득, 유지, 팽창의 차원에서 조망했다. 이로 인해서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은 사회경제적 요소나 종교적, 윤리적 요소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등한시 했고, 그 결과 정치현실의 다양하고 복잡한 측면을 포섭하지 못한 편협한 사상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에게 요구하는덕의 개념상 혁신에서도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군주에게 요구되는 덕으로서 고대 로마공화정 당시의 비르투에 해당하는 남성다움,용맹스러움, 단호함 등을 요구했다. 마키아벨리 사상에 나타난 덕에 대한 이러한 개념상의 혁신은 정치적인 행위자에게 요구되는정치적인 덕이 일반 사적인 생활에서 요구되는 윤리적인 덕과 구별된다는 점은 곧 정치영역의 독자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마키아벨리가 도덕적인 덕보다는 '권력의 기술문제'에 골몰했다는 점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한니발의 비인간적인 잔인성 또한 덕으로 불렀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영역에서는 윤리적인 덕이 자동적으로 공적인 덕으로전환되지 않으며, 사적으로는 비윤리적 행위가 공적인 영역에서 덕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했다.
남을 잘 신뢰하고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 사적인 영역에서는 유덕한 행위이지만, 인간이 이기심과 재화의 희소성으로 인해 폭력과 기만이 난무하고, 한 개인의 사활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사활이 걸린 정치영역에서는 그런 행위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공적으로는 유덕한 행위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을 마키아벨리는 지적하고자 했다. 마찬가지로 사적인 영역에서 남을 속이거나 폭력을 수반하는 잔인한 행위는 유덕한 행위가 아니지만 공적인 영역에서는 전체 공동체에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유덕한 행위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윤리관은 막스 베버가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구분한 ‘확신의 윤리’와 ‘책임의 윤리’중 책임의 윤리에 해당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베버에 따르면 확신의 윤리는 인간이란 선한 존재라고 전제하고 동기가 선하면, 주어진 행위는 그 결과에 상관없이 선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하여 책임의 윤리는 인간의 평균적인 악을 전제하고 이를 감안하여 행동하여야 하며 따라서 동기의 선함보다는 결과의 선함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마키아벨리는 정부가 안정되고 확고한 상황에서 운영된다면 정부는 연민, 신뢰, 정직함, 인륜 그리고 종교와 같은 기존의 덕에 따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치적 상황이 군주를 포함한 정치적 행위자에게 권력의 획득과 유지를 위해서 비정하고 냉혹한 행위를 강요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정치적인 삶보다는개인 私人으로서의 삶이 우월하며, 영혼의 구원을 원하는 자는 차라리 정치적 영역에 들어서지 않는 것이 낫다고 이야기 한다. 이것은 정치적 행위자가 정치적 결정을 내릴때 개인으로서는 하고 싶지도 않고, 또 해서는 안될 비윤리적 행위를 선택해야만 할 경우가 많으며, 이러한 선택은 덕은 많은 고뇌가 수반된다는 점을 마키아벨리는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을 의미한다. 정치적 행위자로서 통치자는 능란한 위선자요 가장자여야 하며 성실함, 자비, 인간애및 신실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야’ 한다고 했다.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에서 ‘외양’의 강조는 대체로 네가지 함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마키아벨리는 정치가 본질의 영역이 아니라 외양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플라톤과 같은 사상가들이 졍치영역 에서 철학적 진리나 종교적 진리를 구현하고자하여 정치현상을 이러한 원리에 따라 규율하고자 했다. 플라톤의 경우 정치권력은 선의 이데아를 실현하고자 하며, 그 정당성 역시 철학적 지식에서 나온다고한 반면 마키아벨리는 정치는 변화무상한 생성과 현상의 영역이기 때문에 찰학적 진리나 종교적 진리의 적용을 거부한다.
둘쩨 기만과 폭력이 횡행하는 정치상황에서 정치적 행위자가 자신을 정치적인 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보호색으로 능숙한 가장과 위선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에서 외양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대부분 정치적 상황이 불안정하고 유동적이기 때문에 정치적 행위자가 한결같이 일관되게 기존의 도덕률을 채택하게 되면, 그의 행위는 적에게 쉽게 노출되고 간파되어 정치적으로 파멸을 초래할 위험이 커진다. 그리고 이는 개인의 파멸에 그치지 않고, 정치공동체의 사활에 관련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통치적 정치상황이다.
셌째 통치자는 통상의 윤리로부터 일탈하여 정치상황의 필연적 논리에 따라서 행동해야할 경우가 많은데, 그 경우에도 권력유지에 필수적인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능숙한 가장과 위선이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통치자는 필연적 요구에 의해서 독자적인 정치윤리에 따라 통상 반도덕적으로 간주되는 행위를 취해야 할 때도 있다. 정치와 통상적인 윤리 간의 갈등을 가급적 외양의 조작을 통해서 해소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정치적 행위가 부득이 통상적인 윤리적 규범에서 일탈해야 하는 경우에도 적절한 외양의 조작을 통하여 그 간극을 메우거나, 그럴듯한 핑계나 구실을 제시하여 그 충격을 축소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항상 정직하게 행동하지는 않더라도 정직하게 보이는 것, 신의를 지키는 것처럼 보이는 것, 관대하게 보이는 것 등 통상적인 윤리적 규범을 준수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통치자는 자비로워서 쉽게 죄인을 용서하게 되면 기강이 문란해져서 권력과 질서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지고, 급기야 더 엄격하고 잔인한 통치를 해야 되는 반면에 잔인함이라도 절제해서 사용하면 기강을 바로 잡아서 자비로움보다도 더 관대한 결과를 나중에 가져오기 때문에 덕이 된다는 것이다. 즉 잔인함은 단지 소수의 사람에게만 해를 가하고, 나머지 다수는 두려움에 의해서 그들이 행동의 제지를 받는 반면에, 전자는 무질서를 양산하여 전체 공동체에 해를 입히거나 아니면 나중에 더 많은 사람에게 보다 잔인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무릇 정치 사상가가 이야기하는 정치세계란 재화 - 부, 권력, 명예 등 - 의 상대적 희소성의 상황하에서 인간의 가치, 야심 및 이기심이 부단히 충돌하고 운동하는 변전무상한 현상의 세계다. 하지만 서구의 많은 사상가들은 이러한 생성의 세계를 거부하고, 불변적이고 확실한 질서를 구축하고자 했다. 변화로 엉킨 세계에서 확실하고, 안정된 정치질서를 구축하고자 하는 사상가들의 노력은 종종 변화가 없는 고정불변의 정치체제에 대한 구상, 정당한 권위의 문제에 대한 탐구로 귀결 되었다. 플라톤은 선의 이데아라는 철학적인 영구불변의 진리에 따라서 정치체제를 구성함으로서, 영구적으로 안정된 정치질서를 구축하고자 했고, 아퀴나서와 같은 중세의 사상가들은 종교적 신앙이나 진리의 구현이라는 차원에서 정치체제를 조망하고, 이론화 하고자 했던 것이다. 많은 사상가들이 자연법과 인간의 이성, 기하학적 진리, 뉴턴의 물체의 운동법칙과 같은 물리적 진리에 상응하는 정치운동의 법칙, 그리고 절대이성, 유물론적 변증법 및 사적 유물론 등과 같은 확실하고 고정된 이론적인 틀을 통해서 정치체를 조망하고, 이론화함으로써 정치질서의 확실성과 안정에 대한 요구를 만족시키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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