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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는 없다. (샘 해리스 지음,

도덕적 책임

우리는 '자유의지'란게 없다면 우리는 창조적이고, 충실한 삶을 살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인생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사람과 사물을 원자 집합으로 보는 것으로 늘 충족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물리학의 진실이나 유용함이 부정되지는 않는다.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해서, 내가 운명론자가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기분이 언짢은 상태라서 당신이 아내와 말다툼 할 수는 있지만, 이는 그런 기분과 행동이 저혈당 때문에 초래되었음을 아는 것과는 별개 문제다. 우리는 자신의 의식적 사고와 감정의 배후를 알아낼 때 생활을 한결 지적으로 조종해 나갈 수 있다. 자유의지를 신봉함으로써 우리는 죄라는 종교적 개념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인과응보에 물두하게 되었다. 우려되는 것은 인간행위의 근본 원인을 솔직하게 논의하다 보면, 도덕적 책임감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지를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존재로 보는 태도에 의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행동에 책임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행동에 책임진다는 것은 내가 나의 생각, 의도, 신념, 그리고 그것들의 연장선으로 간주되는 욕망 등과 충분히 어울리도록 행동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어떤 경우는 어린시절 학대받은 이력과 느닷없는 상황때문에 살인자의 죄가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다. 또 어떤 살인자는 학대받은 적도 없고, 정상적인 삶을 살아온 자가 살해동기로 볼 때 사이코패스라 불리기도 한다. 살인자가 뇌종양이 있다면 도덕적 셈법이 달라진다.  살인자의 감정이 뇌종양이라는 물리적 원인을 갖고 있음을 우리가 이해하는 바로 그 순간, 우리는 그 살인자가 그 자신의 생물학적 상태의 희생자라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해를 입히려는 의식적 결정을 너나 없이 비난하는 이유가 뭘까? 왜냐하면 우리가 의식적 계획에 이어 하는 행동은 우리 마음의 전반적인 성질, 즉 우리의 믿음, 욕망, 목표, 편견 등을 크게 반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살인자의 뇌종양이 그가 상황 판단을 급격히 바꾼 이유가 아니라면, 살인을 하지 않았을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뇌종양과 뇌종양이 미친 효과가 우발적으로 보이고, 이 때문에 살인자는 순전히 생물학적 상태의 희생자로 보이는 것이다. 사형선고를 받는 사람들은 나쁜 유전자, 나쁜 부모, 나쁜 환경, 나쁜 생각 등이 일정하게 결합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런 요인들 중에서 정확히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가? 세상의 그 어떤 이도 자신이 물려받은 유전자나 양육된 방식에 책임이 없다. 우리의 사법제도는 누구든지 아주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여야만 한다. 실제로 도덕성 자체에 운이 얼마나 크게 개입하는지 인정하지 않는 것은 비도덕적인 것 같다. 우리가 인간의 악함을 치유할 약을 찾아냈을 경우 그 약으로 뇌에 적절하게 변화를 줄 수 있다면, 악함은 그저 영양부족 같은 것이다. 악함을 치료하는 약이 존재한다면, 살인자가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치료를 받을 기회가 있다면? 그래도 그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할까? 보복하고 싶은 충동은 인간행위의 바탕에 깔린 원인들을 보지 못하는데 기인한다는 것이다.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은 죄라는 관념을 지탱한다. 과학이 발전하면 인간이 스스로를 더 완전하게 이해하면 할수록 인간성이 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을 자연현상으로 바라본다고 해서, 형법제도가 훼손될 이유는 없다. 우리 대부분은 사람들 스스로 행하는 행동의 주인으로 인식하고, 그들이 우리에게 저지르는 악행들에 책임이 있다고 여기며, 그런 범죄들은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절해 보이는 유일한 처벌은 범죄자가 평생 고통받게 하거나, 범죄자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다. 분명히 인간행위의 원인들을 완전히 설명할수 있다면, 불의에 대한 우리의 자연적인 반응은 어느 정도까지는 누그러질 것이다. 특정한 범죄자들을 처벌하는데 중점을 두는 것이 유용한지 아닌지는, 사회학과 심리학이 해결할 문제다. 보복에 대한 욕망은 모든 이가 자기사고와 행동의 자유로운 주체라는 관념으로부터 발생하여, 인지적이며 감정적인 환상에 의지한다. 나는 당신이 도전히 통제하지 못할 행동에 대해, 당신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재채기를 불법화 한다면 위반의 대가가 아무리 막대하다해도 많은 이들이 법을 어기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유괴같은 행위는 언제나 의식적 숙고와 의지적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보이므로 저지 되어야만 한다.

 

처벌의 위협 때문에 당신이 지금하고 있는 행동을 중단할 수 있다면, 당신의 행동은 자유의지와 도덕적 책임이라는 틀에 박힌 관념에 딱맞아 떨어진다. 엄격한 처벌이 특정한 범죄를 방지하는데 필수적인지도 모르겠다.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를 처벌하여 전염병을 예방 할 수 있다면,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에도 정의를 행사해야 할 터이다. 상당히 다양한 인간행위들을 처벌과 보상으로 교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누군가가 평생 모은 재산을 도박판에 써버리는 것을 자유로운 선택에 맡긴다고 하자. 이는 그에게 다르게 행동할 온갖 기회가 있었고, 그렇게 행동한 것은 전혀 우연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그가 도박을 한 것은 사고에 의해서도 아니고, 망상에 사로잡혀서도 아니다. 매 순간 본인이 원하고, 의도하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욕망과 의도의 깊은 원인은 무시하고, 오히려 당사자의 전형적인 특색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는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관해 생각할 때 이렇게 한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정리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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