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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위로( 앤서니 스토 지음, 이

혼자 있는 능력

유년기와 아동기에 부모나 부모의 대체물에게 갖는 애착은 아이가 생존하는 데 아주 중요하며, 안정애착은 어른이 되어 다른 이들과 대등하게 친밀한 관계를 맺는데 필수적인 듯하다. 유인원이든 인간이든 어린시절 엄마에게 안정애착을 느끼면, 자연히 탐색활동을 활발히 하게 된다. 내가 필요할때 언제든 엄마가 곁에 있다는 걸 확신하는 아이는 탐색하고, 장남감을 가지고 놀고, 친구들을 비롯해 방에 있는 어떤 것이든 호기심을 갖는다. 어린시절 부모나 부모를 대신하는 이에게 느끼는 안정애착은 아주 중요하다. 동시에 또래 아이들과의 관계 역시 다른 관계에서는 절대 얻을수 없는 사회경험을 제공하므로 중요하다. 아이들이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수 있을 만큼 자랐을 때, 그런 시간과 기회를 가질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현대의 심리치료사들은 대등한 조건으로 성숙한 관계를 맺는 개인의 능력을 정서적 성숙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들 중 혼자 있는 능력을 정서적 성숙의 일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어린아이가 엄마가 없을 때 보이는 반응을 저항, 낙담, 포기의 단계로 설명한다. 아이가 엄마가 자기가 필요로 할 때 애착인물이 언제든지 옆에 있어 줄거라고 믿는 아이는 애착인물이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잘 견딘다. 그러므로 혼자있는 능력은 어린시절 내면에 형성된 안정감을 보여주는 한가지 표시다. 아이들이 혼자 있으면서 상상하기를 즐기는 과정을 통해 창의적 잠재력이 발휘된다. 아이들이 안정감을 가지려면, 같은 조건을 반복해서 경험해야 한다. 자신이 필요로 할 때 언제든 애착인물이 곁에 있다는 것을 반복해서 확인한 아이는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믿음으로 안정감을 갖는다.

 

정신분석 전문의 도널드 W. 위니콧은 성인기에 혼자있는 능력은 어릴적 엄마가 가까운 곳에 있음을 아는 상태에서 혼자 있던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혼자있는 능력이 누군가가 곁에 있음을 아는 상태에서 혼자있는 경험을 하는데서 생기며, 이런 경험을 충분히 하지 못하면 혼자 있는 능력을 키운는 것이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어릴 때 과도하게 순종교육을 받는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따라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거스러지 않고, 그들 마음에 드는 방식으로 사는 법을 배운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거짓자아를 형성하는 환자들이다. 자신의 진짜 느낌과 본능적 욕구가 아닌 다른 사람의 바람에 따라 자아를 형성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이 세상을 자신의 주관적 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 곳으로 보지 못하고, 그저 세상에 순응해 살아간다.

 

엄마가 가까운 곳에 있을 때 그리고 나중에는 엄마가 없을 때도 스스럼 없이 아이가 편안하게 혼자 있을 수 있어야만 다른 사람의 기대나 강요에 관계없이 자신이 정말로 필요로 하고,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다. 정신분석 과정에서 환자들은 의사들과 관계를 경험해 보고 이해함으로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데 도움을 받기도 한다. 자신은 누군가에게 거부당하거나 비난 받지 않을 것이고, 별나게 취급당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내면 가장 깊은 곳의 느낌을 접촉하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을 때 마음 속에서 어떤 종류의 재배치나 분류과정이 일어나면서 평화로운 느낌이 와닿음을 경험한다. 확실한 해답이 없는 문제에 직면했을 때, 사람들은 '하룻밤 자고 나서 생각해보라'고 하는데 일리 있는 말이다. 어려운 결정을 할 때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다음 날로 미룬 채 잠자리에 들어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러다 아침에 잠을 깨면 해답이 명확해서 왜 전날밤 그 생각을 못했는지 의아할 때가 많다. 말하자면 문제를 전체적으로 검토하고 재정비하는 과정이 자는 동안 진행되는 것이다. 시간과 고독이 결합되고, 가급적이면 얼만간의 잠까지 결합되어 통합이 일어나는 다른 한가지 예는 학습과정이다. 학창시절 시험을 보기 직전에 내용을 암기하면, 금새 잊어버려 좀처럼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전날 공부 해놓고 하룻밤 묵힌 내용은 훨씬 기억이 잘 난다.

 

잠의 통합기능은 꿈과 연결된다고 한다. 뇌가 깨어있을 때에는 굉장히 빠르던 뇌파의 파장이 점차 느려진다. 이때 안구운동도 따라서 느려지는데 이는 잠든 사람의 감긴 눈까풀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사람은 잠이 드는 순간, 깨우기 어려운 깊은 잠의 단계로 아주 빠르게 들어간다. 그러다 30-40분 정도가 지나면 잠이 얕아진다. 호흡이 빠르고 불규칙해진다. 눈동자는 빠르게 움직인다. 이런 급속한 안구운동 수면, 즉 렘(rem)수면의 단계는 10분 정도 지속된다. 그런 다음 다시 깊은 잠속으로 빠져든다. 이런 사이클은 90분 동안 지속된다. 그러니까 7시간반 동안 잔다면 대락 한 시간반에서 두 시간 동안 렘수면 단계에 있는 셈이다. 뇌에서 일어나는 재정비 과정의 또 한가지 예는 정치학자이자 심리학자인 그레이엄 월러스가 '부화'라고 이름 붙인 창의적 사고 단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창의적 사고의 첫 번째 단계는 준비다. 일단 특정한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자료를 모으고 구할수 있는 모든 정보를 읽어본다. 그 다음이 부화단계이다. 이 부화단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것이 다음의 발현단계에 필요한 예비단계라는 것이다. 부화에 필요한 시간은 몇분에서 몇달 몇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는 것이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몇달 동안 뇌안에서 저절로 다듬어지고 정리된다는 주장이 우스꽝스럽게 들릴지 모른다.

 

뇌는 굉장히 복잡하며 많은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 하지만 꿈을 꾸는 동안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진행되는 것처럼, 기도나 명상시간에 우리가 의식적으로 추진하는 검토나 분류과정과 유사한 과정이 부화 기간에 뇌속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기도는 신을 움직이거나 기도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을 조화로운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기도와 명상을 하는 동안은 이전까지만 해도 관련이 없던 생각과 느낌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하나로 연결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뇌가 가장 좋은 상태로 기능하고, 개인이 각자 최고의 잠재력을 발휘하려면, 혼자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학습과 사고, 혁신을 가능하게 하고, 자신의 내면세계와 끊임없이 접촉하게 해주는 것은 고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