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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손을 놓지 마라 ( 고든 뉴펠드. 가보 마테 지음, 이승희 옮김)

유대감을 보존하라1

아이의 애착 본능을 일깨우는 한 가지 방법은 아이의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때 우리에게 의존하기 때문에, 우리는 아이의 나침반 방위역할을 맡아야만 하고 그들의 안내자로서 행동해야 한다. 우리 어른들은 의식조차 하지 않은 채 이 기능을 자동적으로 행한다. 이것저것을 가리키고 사물의 이름을 가르쳐주고, 자라나는 유아가 주변의 환경과 친숙해지게끔 도와준다. 우리는 아주 어린 아이들에게는 직관적으로 잘 대응하는 반면, 어느 정도 자란 뒤에는 이런 방향을 잡아주는 본능을 잃어버린다. 더 이상 아이들에게 주변의 환경을 소개해주거나 아이들이 세계에 친숙해지도록 도와주거나,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알려주거나 사물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해석해주는 역할을 맡지 않는다. 아직도 우리에게 의존해야하는 아이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은 자동적으로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 방위의 역할을 하는 사람과 가까워지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아이들이 자신의 위치를 찾는 세계에서 더 이상 우리가 전문가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도 있다. 아이들의 안내자로 행동하기에는 모든 것이 너무나도 많이 변했다. 아이들이 컴퓨터와 인터넷에 대해서나 게임과 장난감에 대해 우리보다 더 잘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또래지향성은 우리 문화가 새로운 이민자들에게 그렇듯이,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낯선 아이들의 문화를 만들어낸다. 이민자들이 낯선 나라에서 방향성을 잃듯이 우리는 아이들을 지도하는 위치를 잃었다. 우리는 유아나 유치원생들을 안내하는 일은 훌륭히 해낸다. 아마도 우리가 없으면 아이들이 길을 잃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제 무슨 일이 있을 것이고 어디로 갈 것이고 무엇을 할 것이고, 이 사람은 누구이고 저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쉬지 않고 알려준다.

 

하지만 이 단계가 지나면 우리는 자신감을 잃고 아이들을 품안으로 모으는 이 중요한 본능을 잃어버린다. 아이들은 방향을 잡아주어야 하는 존재이다. 우리는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최고의 재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시간과 장소, 사람과 사건, 의미와 상황에 대해 방향을 정해주면 아이들은 그만큼 더 우리와 가까워지려 한다. 아이들이 혼돈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을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된다. 우리는 자신에게 아이들의 삶에서 안내자로서 통역자로서 우리의 지위를 맡아야 한다.

 

하루를 시작할 때 다음과 같이 방향성에 대해 아주 짧은 언급만 해도 아이들과 친밀함을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오늘 이런 일을 할 거란다. 오늘 밤 내가 하려는 건.. 이 분이 너를 보살펴 주실 거야.’... 물론 아이들의 정체성과 중요성에 대해서도 방향을 잡아주어야 한다. ‘너는 이런 것을 잘하는구나. 너는 이런 점에서 정말 재능이 있어. 이걸 해결하려고 이렇게 까지 노력하다니 훌륭하다’... 아이의 나침반 방위역할은 애착본능을 발동시키는 일이고 막중한 책임이다. 자기자식일 경우 방향성을 잡아주는 일은 우리와 친밀감을 유지하려는 아이의 본능을 부활시킨다. 만약 자기 아이 혹은 학생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우리에게 의존하게끔 상황을 만들 수 있다면, 애착을 준비시키는데 더없이 훌륭한 도움이 될 것이다.

 

많은 부모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행동에서 관계로 초점을 옮기는 일이다. 일단 관계가 악화되면 행동은 갈수록 공격적이고, 걱정스러울수록 불온해진다. 그런 상황에서는 아이가 욕하고 속이고 비판하는 것을 막기란 힘들다. 초점을 옮기려면 먼저 행동을 다루려는 일이 무익함을 인정하고 관계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즐거워야 한다. 주말에 아이와 함께 가는 소풍에서부터 온 가족이 떠나는 여행에 이르기까지, 이때 여유가 되는 사람들에게 별장이 여러모로 편리하다. 친척들이 시골에 산다면 더욱 좋다. 아이에게 여름동안 가족이라는 배경 속에서 지내게 하는 일은 종종 또래에의 몰두를 해결하는 방책이 된다. 현재의 우리 문화가 부모역할을 제대로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는 현실이 내 잘못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의 손을 잡아야 하는 것은 역시 부모로서 나의 책임이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부모의 역할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의 놓아버린다.

 

자주 하는 이야기지만 세상이 급격하게 변했다고 해서 부모의 역할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만 맡겨서도 안된다. 외부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서는 안된다. 내 아이의 교육은 내가 주도해야 한다. 부모가 아이 교육에 대해서 제대로 모르면 공부해야 한다.

 

어떤 문제나 어려움에 부딪힌다고 하더라도 아이와의 관계가 최우선 상황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은 아무리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도 우리의 깊은 마음을 깨닫지 못한다. 그저 우리의 어조나 행동으로 표현되는 것을 느낄 뿐이다. 우리가 우선 사항으로 생각하는 것들을 아이들이 알 것이라고 가정해선 안된다.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가진 부모의 아이들 대부분이 자기가 받는 사랑이 매우 조건적이라고 느낀다. 무조건적인 수용은 그것이 가장 필요로 하는 바로 그때에 실행하기가 가장 어렵다. 아이들이 우리를 실망시켰을 때 우리의 가치를 위반했을 때, 우리에게 밉상스럽게 굴 때가 바로 그런 때이다. 정확히 바로 그때 우리는 아이가 하는 행동보다 아이 자체가 더 중요하고, 품행이나 성과보다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나 몸짓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험악할 때 우리는 아이들을 단단히 붙잡아야 한다. 그러면 아이들이 우리를 붙잡을 것이다.

 

우리가 화가 나거나 분노로 가득할 때 부모역할을 하려면, 즉 교훈을 가르치려 하면 아이는 관계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게 될 수 있다. 아이의 눈에, 우리가 아이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관계에 아이가 매달릴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된다. 그럴 때에 최선은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고 비난의 말을 자제하고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는 것이다. 아이는 무엇이 중요한가라는 문제보다는 부모에게 자기 자신이 가치 있고 중요한 사람인가라는 문제에 더 집착한다. 우리는 다른 가치들은 인식하고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가치인 애착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애착을 의식하게 되었을 때에만 우리의 가장 깊은 헌신의 대상인 아이 자체를 제대로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자연적 발달 순서를 따르면 우선 사항은 확실해진다. 첫 번째가 애착이고 두 번째가 성숙, 그리고 세 번째가 사회화다. 아이들과의 문제에서 난기류를 만났을 때 우리는 먼저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는 성숙을 위한 것이다. 그러고 난 후 사회적 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부모들은 아이가 자신의 제안에 반응하지 않을 때 조차 상처를 받는데, 더 나아가 또래지향성에 사로잡힌 아이는 완전히 비열하고 심술궂게 군다. 또래지향적인 아이의 의도적인 오만과 불복종은 부모의 애착감성을 모조리 교란시킨다. 상처를 받으면 더 깊은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방어적으로 주춤하고 정서적으로 후퇴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때 우리 뇌의 방어적인 부위는 우리에게 상처입기 쉬운 영역에서, 모욕을 당해도 아프지 않고 결합이 부족해도 기분이 상하지 않는 영역으로 후퇴고자 한다. 부모도 인간이다. 이렇게 하면 우리를 방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아이는 이것을 거부의 경험으로 받아들인다. 아이들이 우리를 밀어내도록 허용한다면 아이가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