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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슾픔 (알랭 드 보통)

물류와 비스킷 공장

물류

200년 전 우리 선조들은 자신이 먹는 음식이나 소유하고 있는 한정된 수의 물건 하나하나의 정확한 역사와 유래, 나아가서 그 생산에 관여한 사람이나 연장까지 알았을 것이다. 그 이후로 구매 가능한 물품의 범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과 반비례로 물품의 유래에 관한 우리의 지식은 거의 깜깜할 정도로 줄어들었다. 현재 우리는 많은 물건을 실제로 손에 넣을 수는 있지만, 그런 물건들의 제조와 유통과정이 어떠한지는 전혀 상상할 수 없다. 이런 소외과정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경이, 감사, 죄책감을 경험할 수많은 기회를 박탈당한다.

 

우리가 침대에 무방비 상태로 누워 입을 헤 벌린 채 이따금 좌우로 뒤척이는 동안, 어떤 곳에서는 그날 아침의 팔 탈지우유 가운데 대부분의 물량을 실은 트럭 한 부대가 잉글랜드 북부로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어둠 속에서 물류 단지의 활동을 살펴보는 것은 어린 시절 한 밤중에 깨어나 문밖의 발소리나 다른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것과 비슷하다. 문밖에서는 엄마 아빠가 도자기를 내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가구를 재배치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그때 우리는 집안의 낮의 질서가 밤에 이루어지는 그런 노동에 의해 지탱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때 거의 종교적인 범주만큼이나 뚜렷하게 식사라는 범주를 기준으로, 쌀을 먹는 사람들과 밀을 먹는 사람들, 감자를 먹는 사람들과 옥수수를 먹는 사람들로 나뉘었던 인간은, 이제 아무 생각 없이 잡다한 것으로 배를 채운다. 우리 조상들은 늦여름 덤불 밑에서 이따금씩 딸기를 한 줌 발견할 때면, 기대하지 않았던 창조주의 관대함의 표시로 여겨 기뻐했을 것이다. 지금은 12월초다. 그런데 중앙통로 옆쪽 어둑어둑한 곳에서는 붉은 딸기가 대기하고 있다. 이 딸기들은 어제 캘리포니아를 출발하여 검은 색과 황금색이 뒤섞인 하늘에 질소산화물 흔적을 남기며 달빛이 비추는 북극권을 가로질러 날아왔다. 계절이나 기후 때문에 고객이 음식에서 만족을 느끼는 일이 지연되는 사태를 슈퍼마켓은 앞으로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수백만 명의 타인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도 자기중심적인 일상의 관점으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하지도 못한다. 거대한 식량창고는 적어도 산업화된 세계에서는 우리 인간이 수천 년의 노력 끝에, 마침내 다음 끼니를 어디서 찾아먹을까 안달하는 일로부터 벗어난 유일한 동물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 결과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시달리며 절실한 먹이 걱정에서 벗어나, 스웨덴어를 배우거나 미적분을 익히거나 우리 관계의 진정성을 걱정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와인이 바다처럼 넘실거리고 빵이 알프스처럼 잔뜩 쌓인 우리의 풍요로운 세계는, 기근에 시달리던 중세의 조상들이 꿈꾸던 생기발랄한 곳과는 다르다.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정신들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쓸데없는, 아무 가치도 없는 일을 하는데 삶의 대부분을 보낸다. 겉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법을 잘 지키고 고본고분 하게 살지만 밑에서는 소리 없이 분노가 쌓여가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몇 대륙이나 떨어진 물에서 잡은 물고기가 불과 몇 시간만에 노샘프턴셔의 창고에 와 있다는 것이야말로 기술, 관리, 법적이고 경제적인 표준화 등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물류분야가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증거다.

 

비스킷 공장

이 회사의 모든 일이 궁극적으로 과자와 소금을 친 스낵을 파는 것으로 수렴되기는 하지만, 이 회사 직원 가운데 많은 수는 엄격하게 말해서 먹을 수 있는 것들과 직접 접촉하는 일로부터 떨어져 있었다. 이들은 창고에서 지게차 트럭들을 관리하거나 소금을 친 견과를 담는 전형적인 포장지의 앞면에 적힌 80여 단어를 꼼꼼하게 살핀다. 어떤 사람들은 슈퍼마켓으로부터 판매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는 일에 특별한 전문성을 갖게 되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매일 운송 중에 웨이퍼 사이에 일어나는 마찰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연구한다. 이런 전문화 분야와 더불어 수많은 수수께끼 같은 직책들이 등장한다. 포장기술자, 브랜딩 담당임원, 학습센터 관리자, 전략기획 평가자, 이들은 헌신적이고 심도 있게 경력의 고랑을 일구며 앞으로 나아간다.

 

세밀하게 만든 분업은 감탄할 만한 수준의 생산성을 낳았다. 일이 점점 미세하게 세분화 되면서 복잡한 기능의 축적이 가능해지고, 이것이 사업자들 사이에서 매매될 수 있다. 의사는 보일러 고치는데 필요한 기술을 배우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기관차 운전사는 아이들 옷을 수선하는데 필요한 기술을 배우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비스킷 포장기술자는 창고 보관 문제를 공급망 관리 전문가에게 넘기고, 자신의 에너지는 포장 매커니즘 개선에 쏟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가장 큰 이익이 된다. 이런 완벽한 사회에서는 모든 일이 전문화되기 때문에 아무도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일이 의미 있게 느껴지는 건 언제일까? 우리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의 기쁨을 자아내거나 고통을 줄여줄 때가 아닐까? 우리는 스스로 이기적으로 타고났다고 생각하도록 종종 배워왔지만, 일에서 의미를 찾는 방향으로 행동하려는 갈망은 지위나 돈에 대한 욕심만큼이나 완강하게 우리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합리적인 정신상태에서는 안전한 출세 길을 버리고 시골마을에서 먹을 물을 공급하는 일을 도우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한다. 또 인간 조건을 개선하는 면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고급 비스킷을 생산하는 일을 그만두고 심장 간호사 일을 찾아볼까하는 생각도 해 본다. 우리가 그저 물질만 생각하는 동물이 아니라 의미에 초점을 맞추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비스킷을 굽는 것이 의미 있느냐가 아니라, 그 일이 5천명의 삶과 많은 제조 현장으로 계속 확장되고 분화된 뒤에도 여전히 의미 있게 여겨지느냐 하는 것이다.

 

어떤 일은 오직 제한된 수의 일꾼들 손에서 활기차게 이루어질 때에만, 그래서 그 몇몇의 일꾼이 자신이 작업시간에 한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상상하는 순간에게만 의미 있게 보일 수 있다. 회사는 헌신과 자기 규율을 요구한다. 동기부여의 문제도 있다. 회사가 그 직원들에게 숭고한 이상을 제시하는가? 그래서 직원들이 그 이상을 위하여 온 힘을 쏟고 자기 삶의 가장 큰 부분을 내어놓는가? 왜 우리 사회는 가장 의미 없는 것들을 판매할 때 가장 큰 돈이 생기는 일이 종종 벌어지는 것일까? 모든 낭비 가운데 당신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낭비는 노동의 낭비다.

 

기계들은 인간이 그런 일을 손으로 할 수가 없어서가 아니라 노동의 값이 엄청나게 비싸졌기 때문에 도입되었다. 경제학은 팔이 세 개 달린 유압식 기계를 개발할 엔지니어 몇 명을 고용한 다음 직원 3분의 2를 해고하고, 그들에게 실업수당을 주는 것이 논리적으로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가톨릭 교리에서 고귀한 일은 주로 사제들이 신을 섬기는 일로 제한되었으며, 실용적이고 상업적인 노동은 기독교 덕목의 표현과 관계가 없는 매우 저급한 범주로 밀려났다. 반면 16세기에 발전한 프로테스탄트의 세계관은 일상적인 일의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겉으로 보기에는 하찮은 일도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영혼의 고귀함을 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구도에서라면 공장에서도 수도원에서만큼이나 겸손, 지혜, 존경, 친절을 진지하게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 구원은 가톨릭이 특권을 누리던 웅장하고 신성한 순간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생활의 수준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었다. 마당을 쓸거나 세탁실 장을 정돈하는 일도 존재의 가장 의미 있는 주제들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비스킷 공장 노동자들은 살아남으려고 노력하라는 오래된 임무에 전념하고 있다. 브랜딩이나 제조기술에서의 계산착오, 밀 값의 갑작스러운 상승, 코코아 공급의 불규칙성 같은 변수가 생기면 한 방에 노동력의 큰 부분을 쓸어낼 수 있고, 그렇게 직장을 잃은 사람들은 이 지역에서 다시 적당한 일을 찾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고속열차가 시속 250킬로미터로 네덜란드와 프랑스 사이를 달렸다. 고속열차 한 량은 약 28백만 유로짜리였다. 그 안에 탄 승객들은 신문을 읽고 있거나 뭔가를 마시고 있었을 것이고, 창밖으로는 어스름 속에서 나무 그림자들이 옛날 영화의 이미지들처럼 빠르게 스쳐갔을 것이다. 이 얼마나 독특한 문명인가, 엄청나게 부유하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작고 또 아주 작은 의미밖에 없는 것들을 팔아 부를 늘리는 문명, 돈을 쓸만한 가치 있는 목적과 돈을 버는 메커니즘- 종종 도덕적으로 경멸스럽고 또 파괴적인 메커니즘-사이에서 갈등을 일으켜 분별 있게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문명.

 

암스테르담은 건포도와 꽃의 판매를 기반으로 건설되었다. 베네치아의 궁들은 양탄자와 향료 교역에서 생긴 이윤으로 지었다. 상업적인 사회는 종종 비도덕적인 정책을 펼치고 이상을 무시하고 이기적인 자유주의에 빠져들지만, 그럼에도 물건이 많은 상점과 돈이 그득한 금고를 갖추어 신전이나 고아원을 건설할 자금을 댈 수 있다. 이 사회는 우리의 진지하고 의미심장한 요구와 관계가 없는 산업, 수단의 진지함과 목적의 하찮음 사이의 괴리를 피하기 어려운 산업들도 많다. 그 결과 컴퓨터 터미널 앞과 창고 안에서 우리를 의미 상실의 위기로 몰아넣기 쉽상인 산업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나는 우리 노동의 진부함을 생각하며 절망감을 느끼다가도 거기에서 나오는 물질적 풍요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겉으로는 유치한 게임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이 우리의 생존 자체를 위한 투쟁과 거리가 절대 멀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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