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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란 무엇인가?

권력이란 ? 1

폭력적인 식민지배와 그 뒤를 이어 수십년 동안 지속된 독재의 역사는 한국인들이 권력을 대하는 태도에 흔적을 남겼다. 그래서 권력은 억압이자 구속으로 맞서 싸워야할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권력은 폭력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물론 권력은 자신에 대한 저항을 진압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항은 이미 그 권력이 약화되는 순간에 일어난다. 권력자가 무자비한 폭력을 필요로 한다면 그의 권력기반은 이미 허약해져 있는 것이다.

 

긍정적 형태로서의 권력은 공동의 을 형성하고 질서를 부여한다. 그래서 권력은 폭력과 반대로 생산적이다. 권력은 혼란이 생기는 것을 막는다. 오늘날은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면서 권력은 급속하게 그 힘을 잃어간다. 상호적 영향력 행사 혹은 상호의존성이 더 이상 권력적이지 않은 커뮤니케이션 모델을 만들어내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이 말한 스마트 파워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다른 사람들의 욕구와 요구에 응답하는 권력이다. 부정적 형태의 권력은 독백적이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한 기존의 권력의 시대는 지나갔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권력을 통해 걸러지지 않는 모호한 영향력들과 복잡한 상호작용들이 넘쳐나는 시대이다. 권력이라는 하나의 목소리는 다수의 목소리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권력 개념은 아직까지도 혼란에 빠져 있다. 어떤 이들에게 권력은 억압을 의미한다. 다른 이들에게 권력은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고 커뮤니케이션을 구성하는 중심요소이다.

 

권력이라는 말은 통상적으로 다음과 같이 이해되고 있다. 자아가 권력에 근거하여 타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특정 행동을 하도록 영향을 미친다. 권력은 타인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결정을 관철하게 한다. 권력자는 복종하는 자로 하여금 특정한 행동을 선택하도록 이끈다. 권력에 복종하는 자가 스스로 권력자가 원하는 행동을 하려고 하고, 권력자의 의지를 마치 자신의 의지처럼 심지어 미리 알아서 따르려고 하는 것, 이것은 더욱 강력한 권력의 지표이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권력은 이미 약화된 것이다.

 

권력자가 하려는 것이 권력에 복종하는 자에 의해 그 자신이 하려는 것으로 수용되거나, 내면화된다. 권력은 움직이는 어떤 물체를 다른 방향으로 가게 하는 기계적인 충격처럼 기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권력은 그 속에서 물체 스스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장처럼 작용한다. 강제로서의 권력은 타인의 의지에 대항해 자신의 결정을 관철시키는 것이다. 제대로 된 권력은 타인이 하려는 행동에 맞서는 권력이 아니라, 그 타인으로부터 솟아나 작용하는 권력이다.

 

인간이 구성하는 모든 공동체, 사회는 유기체다. 생명이 없는 수동적 사물과 달리 유기체는 스스로 아무것도 행하지 않으면서 외적 원인의 작용만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유기체는 그 원인에 대해 자립적으로 반응한다. 살아있는 존재가 특별한 점은 외적 원인을 중단시키고 그것을 다른 것으로 전환시키며, 그로부터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 시작되게 한다. 물리적 폭력이 갖는 장점이라면 복잡성을 감소시킬 수 있는 것뿐이다. 에고가 타인의 협조에 의존하고 있는 한, 에고는 타인과 상호의존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에고는 타인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요구를 표명하거나 관철할 수 없다. 권력자의 권력이 클수록 그의 권력은 수하에 있는 자들의 조언과 협조에 더 많이 의존한다. 증가하는 복잡성으로 인해 실질적 권력은 무엇을 명령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해주는 조언자에게 위임된다. 권력자가 갖는 이러한 다양한 의존성은 수하에 있는 자들에게는 권력의 원천이 되고, 이는 구조적인 권력분산으로 이어지게 된다. 절대적인 권력을 얻으려는 자는 폭력이 아니라 타인의 자유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속성은 타인에게서 자신의 결정을 실현하고 그를 통해 타인 속에서 자신을 연속시키려 한다. 권력은 타인 속에 자신을 연속시키고 타인 속에서 자기 자신일 수 있게 한다. 폭력과 자유는 권력 단계의 양극점이다. 타인을 통해 해야 할 일이 증가할수록 더 많은 자유 혹은 자유의 감정이 생성되어야 한다. 권력은 권력자에게 더 넓은 자아의 공간을 마련해준다. 권력의 상실은 곧 공간의 상실이다. 권력을 상실하는 순간 권력자는 작아지고 죽을 수밖에 없는 육체로 환원되어 버리는 것이다.

 

권력이 금지나 파괴 같은 방식으로만 작용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권력은 커뮤니케이션 매체이며, 커뮤니케이션이 특정한 방향으로 원활히 흘러가게 한다. 권력에 복종하는 자는 권력자의 결정을 곧 그의 행위 선택을 받아들이도록 유도된다. 권력을 촉매라고 정의한다. 촉매는 자신은 변화하지 않으면서, 사건의 발생을 촉진하거나 특정한 과정의 흐름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 의미에서 권력은 생산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권력에 대한 요구는 커뮤니케이션이 난항을 겪을 때 생겨난다. 권력은 언제든지 생겨날 수 있는 아니요로 전환시켜야 한다. 권력은 파괴하거나 금지한다고 하는 인상은 매개가 약한 강제관계 속에서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권력만을 염두에 둠으로써 생겨난 것이다. 막스 도 권력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권력은 특정한 사회관계 속에서 저항에 맞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모든 기회를 의미한다.’ 권력의 힘은 공공연한 명령 없이도 결정과 행위를 유발할 수 있다. 특정한 결정을 선택하고 관철할 수 있으려면 권력자는 자신의 에고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권력수단으로 폭력밖에 알지 못하는 시스템은 생산성이 낮다. 복잡한 시스템은 정교하게 구조화되어 있는 조정 및 권력 메커니즘에 의존한다. 더 많은 권력이란 권력자에게는 더 큰 자유를 의미한다. 권력자가 다양하고 많은 결정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그의 권력은 커진다. 나아가 권력자가 더 많고 다양한 종류의 대안을 가지고 있는 상대에 맞서 자신의 결정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그 권력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관계는 상호간의 신뢰나 인정을 통해 강화된다. 신뢰는 복잡성을 완화시켜 결정 과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신뢰와 상호인정의 커뮤니케이션은 생산력 증가에 기여하지만 이것이 권력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관계의 강화가 곧바로 권력의 양을 증가시키는 것은 아니다. 관계를 강화하면 상급자의 권력과 하급자의 권력이 동시에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권력은 영향력과는 다르다. 영향력 행사의 가능성이 곧바로 권력으로 흘러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것이 권력 관계로 변환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유는 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무엇보다 법질서에 대한 인정, 곧 법이 나의 의지이자 자신 스스로 행함이며 나의 자유라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법률의 배후에는 칼이 있다. 그렇다고 법이 칼에 근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부정적 제재조치를 통해서만 자신의 결정을 관철할 수 있는 자는 별다른 권력을 갖지 못한 자이다. 권력이란 구조 의존적인 선택이다. 권력 행위 주체들은 그들 상호간의 권력관계를 선규정하는 시스템에 의해 특정 위치를 배당받는다.

 

공간적 권력은 모호한 힘들을 하나로 결집해 전체 질서를 형성하는 중력으로 등장할 수 있다. 권력은 특정한 행위가 방향을, 다시 말해서 의미를 얻게 되는 공간을 열어준다. 그 공간은 내부에서 누군가가 더 많은 권력을 갖는 것이며, 다른 이보다 우세할 수 있는 영역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권력은 개별적인 권력관계들이 잠재되어 있는 공간을 창출해낸다. 모든 권력 공간은 타자에 맞서 자신을 유지하는 자아의 연속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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