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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세계사 (남경태)

동양사-인도1

인도의 서쪽 경계부근을 흐르는 인더스강 유역은 인더스 문명의 발상지다. 영국 고고학자 마셜은 인더스 강 일대의 모헨조다로에서 인류 초기문명을 찾아냈다. 인도의 역사는 인더스 문명이후 1000여 년 동안은 후대에 알려지지 않았다. 인도의 역사가 다시 진행되는 것은 기원전 1500년경 아리아인이 인도에 침입하면서부터이다. 아리아인은 원래 언어학상 용어로 인도유럽어족이다. 아리아인은 중앙아시아 일대에 살고 있는 유목민족인데 기원전 16-17세기부터 대 이동을 시작했다. 아리아인은 두 갈래 나뉘어 한 무리는 인도방면으로 다른 무리는 서아시아와 터키를 거처 유럽으로 이동했다. 유럽으로 간 아리아인은 오늘날 유럽인의 조상이 되었다. 유럽 백인의 인종적 조상은 중앙아시아의 캅카스인이며, 로마제국의 공용어인 라틴어는 인도의 고대어인 산스크리스트어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나치 독일의 히틀러가 아리아인을 인종적인 개념으로 사용한 것은 유명하다. 유럽으로 간 아리아인은 수천 년 뒤 로마를 침공한 게르만족의 조상이다.

 

중국의 고대 왕들은 자기 조상을 받드는 종묘와 피정복민의 문화에서 비롯된 사직을 함께 지키는 역할을 했다. 아리아인은 피정복인의 문화를 무시하고 카스트제도로 노골적인 신분차별의 차별정책을 실시했다. 그 카스트제도가 오늘날까지도 인도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물론 보편적 인권 관념이 생겨난 근대 이전까지 모든 인류사회는 신분제를 취했다. 하지만 인도의 카스트 사회는 특이한 점이 있다. 일반적 사회라면 정치와 군사의 지배층이 제1신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도의 최고 지배층은 사제 집단인 브라만이었고, 이들이 정치적 지배층인 크샤트리아를 통제했다. 고대 인도사회가 종교사회였음을 말해주는 동시에 인도에서 종교는 단순히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서아시아와 인도에서 종교는 곧 생활이다. 우리나라처럼 종교를 단순한 선택사항으로 여기는 곳은 드물다. 그리스도교 역시 서구인들에게 신앙이기에 앞서 생활방식에 가깝다. 인도에서의 종교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종교를 떼어놓고 인도의 역사를 이야기할 수 없다. 아리아인들이 인도를 지배하게 된 역사에 관한 기록도 그들이 남긴 베다veda’라는 중교문헌에서 나왔다. 베다 가운데서 중요한 문헌은 리그베다 rig-veda’이다. 리그베다에서 보는 인도의 모습은 형식상 군주제를 취하기는 했지만 종교가 세속의 권력보다 우위에 있는 사회였다. 왕은 자기 영토를 소유하지 못했으며 세금을 징수하지도 못했다. 다른 나라를 정복하면 전리품만 가질 수 있을 뿐이었다.

 

리그베다의 종교는 자연숭배의 향식을 띤 원시적 다신교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종교적 초점이 자연에 대한 관심사에서 점차 인간의 문제로 이행하고 신의 성격도 달라진다. 브라만교의 형식적인 종교의식에서 벗어나 참된 신앙을 찾자는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 시기에 등장한 철학이 우파니샤드upanisad’ 비밀모임이라는 뜻이다. 우파니샤드에 따르면 우주는 브라만()이며 브라만은 아트만(自我)이다. 내가 곧 우주가 되는 이른바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이다. 우파니샤드 시대에 뒤이어 브라만교의 권위가 해체되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새로운 종교가 불교와 자이나교이다. 흔히 불교라 하면 윤회나 같은 개념을 연상하지만 원래 그것은 힌두교의 전통적인 종교관념이다. 석가가 윤회와 업을 불교 속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불교는 처음부터 무신교로 시작했다. 부처는 신이 아니라 선각자 일뿐이다. 부처가 신과 같은 존재로 변하는 것은 후대의 대승불교가 체계적인 종단의 구조를 지니게 되면서 부터이다. 불교는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카스트제도를 부정했다. 불교의 평등사상에서 보면 하층계급도 얼마든지 해탈에 이를 수 있었다. 자이나교도 힌두교나 불교처럼 인도에서 발생한 종교답게 윤회와 업을 받아들였다. 자이나교도 불교와 비슷한 면이 많았다. 힌두교 질서에 반발하는 혁명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며 금욕을 강조하고 불살생不殺生 계율을 중시했다. 그러나 자이나 교는 그 점에서 불교보다 한층 극단적인 성격을 지녔다. 자이나교도는 주로 상업과 대금업에 종사하면서 막대한 부를 쌓았다. 윤회를 믿는 인도인들은 지금 비록 노예처지라도 성실하게 살아가면 다음 세상에서 더 좋은 신분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여겼다. 불교는 윤회의 관념이 없는 동남아시아 지역과 동북아시아의 중국, 한반도, 일본 등에서 꽃피우게 된다. 동북아시아에서는 윤회의 자리를 국가로 채워 호국불교 양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아리아인의 지배가 계속되지만 카스트 힘이 점차 약해졌다. 서로 융화되면서 인종적 구별이 사라져 직업으로 카스트를 구분해야 했다. 카스트제도가 약화되면서 도시국가들의 왕권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마가다, 비데하 등의 주요 왕국들이 갠지스 강 유역을 따라 퍼져있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해당하는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4세기까지 인도에서도 여러 도시국가가 각축전을 벌였다. 특히 마가다는 주변왕국들을 병합하고 북인도를 거의 석권하는데 성공했다. 그 시기에 그리스에서 출발한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군이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인도의 서북부까지 들이닥쳤다. 인도를 가장 먼저 침공한 것은 페르시아의 다리우스였다. 그 강국을 무찌른 자가 알렉산드로스였다. 그렇게 드디어 인도는 서양 세계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원정로는 육해상의 교통로가 되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이 초래한 커다란 문화적 사건은 간다라 예술이다. 간다라는 펀자브지역의 한 지방인데 알렉산드로스 침공으로 헬레니즘 문화가 유입되었다.

 

알렉산드로스가 물러나자 옛 마가다 영토는 난다 가문이 잠시 지배했다. 그러나 마다가의 찬드라굽타가 난다 왕조를 무너뜨리고 왕위를 빼앗았다. 지역의 패자를 노리고 상비군을 육성한 찬드라굽타는 60만의 대규모 군대로 북인도를 통일하고 마우리아 왕조를 세웠다. 인도 역사상 최초의 강력한 제국을 세웠다. 마우리아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벵골만에 이르는 대제국으로 발전했다. 이때부터 인도역사는 세계사의 일부로 자리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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