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세계대전을 치룬 연합국측은 1차 세계대전 후처리에 대한 학습으로 패전국에 대해서 과중한 징계와 무책임한 처리방식을 피했다. 패전국들에 점령된 나라들의 경우에도 예전 같으면 새로 정해진 국제질서에 따라 처리했겠지만, 이제 각국이 처한 상황과 처지에 따라 다양한 처방이 취해졌다. 독일의 주권을 회복시켜주고 오스트리아는 영세중립국으로 만든 시기가 전후 10년이 지난 1950년대 중반이었다. 현실의 변화 속도는 그들이 대처하는 속도를 앞질러갔다. 냉전체제로 현실화 된 시기는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그 변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분단이다. 그 분단이 강력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지리라는 것은 종전이 되기 전에 루수벨트는 물론이고 처칠, 스탈린 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얄타에서 종전 후 독일을 처리하는 문제를 논의했다. 여기서 미국과 영국, 프랑스, 소련의 4개국이 독일을 분할통치하고 전범을 재판하고 독일의 재무장을 금지하는 방침을 정했다. 일본만 저항하고 있을 때 미국, 영국, 소련 3개국 정상은 베를린 인근의 포츠담에 모여 얄타회담에서 정한 공동관리방침을 구체화했다. 하지만 4개국의 색깔로 보면 미국, 영국, 프랑스가 한편이고 소련이 다른 편이라는 것은 누가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결국 독일의 국토는 동서로 분리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자마자 곧바로 한반도 남부에는 미국이 북부에는 소련군이 진주해 사실상 분단의 체제가 시작되었다. 독일의 경우처럼 한반도에서도 분단직후까지 교통과 물자이동이 자유로웠다. 그러나 남한에서 단독으로 총선거를 실시하여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선언하자 북한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수립함으로써 분단이 이루어졌다.
파시즘은 원래 사회주의와 상극이다. 레닌에서부터 사회주의 이념과 이론에서 이탈한 현실 사회주의는 파시즘과 묘한 친화력을 보였다. 1인 권력구조, 국가지상주의, 선전과 선동으로 대중을 호도하는 전체주의적 성격에서 두 체제는 닮았다.
유럽에서 국제전은 더 이상 없을 것이며 전 세계적으로 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진영,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진영 두 체제가 치열한 경쟁을 하기 시작했다. 이 두 가지 사실을 조합하면 이제부터 유럽지역이 아닌 곳에서 체제 모순이나 대리전 혹은 국지전 양상으로 표출될 것이다. 한국전쟁은 세계사적 필연성의 소산이다.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도 소련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으므로 열외다. 남은 곳은 서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다.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는 19세기 영국과 러시아가 주도권을 둘러싸고 상대길목을 막고 있었다. 특별한 지역적인 구심점이 없어 대리전 무대가 되기 좋았다. 하지만 지역이 너무 넓어 국제전으로 전화되기 쉬웠다. 국지전의 또 다른 후보는 한반도였다.
싸우지 않고 상대방을 제압하려면 덩치를 키우는 방법밖에 없다. 양 진영은 자신이 똘마니를 끌어들여 세 불리기에 매진한다. 우두머리의 임무는 조직을 관리하고 똘마니를 먹여 살리는 게 중요하다. 세계대전에서 유일하게 부자가 된 미국은 지갑을 화끈하게 열어 유럽세계를 지원했다. 유럽부흥계획, 마셜플랜이다. 유럽은 산업과 농업을 안정시키고 재정난을 극복했다. 적의 우두머리가 돈을 마구 뿌린다는 소식에 또 다른 우두머리 소련도 자기 똘마니를 챙길 수밖에 없었다. 소련은 경제상호원조회의 코메콘이라는 기구를 조직해 사회주의 경제블록화를 시도했다. 소련은 호주머니가 넉넉하지 않으므로 부족한 돈을 이념으로 메웠다. 사회주의국가는 모두 한 형제라는 구호아래 국제적 분업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아무리 형제라도 소금장수와 우산장수의 이해관계는 다른 법이다. 특히 전쟁으로 산업기간 시설이 초토화된 북한은 그 블록마저 속하지 못해 극심한 경제난에 허덕였다. 우두머리가 외면하면서 자력갱생이 모토가 된다. 북한의 지도부는 세상에 믿을 놈 없다면서 우리 식대로 살아가자고 외치게 된다. 이것이 우상화로 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만든 주체사상이다.
묘한 것은 냉전체제를 이루는 두 진영의 움직임이 서로 어긋나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진영 입장에서는 냉전을 거치면서 다원화 논리가 점차 관철되는 추세를 보였다. 소련이 제대로 우두머리 역할을 못하니 대오이탈을 막을 수 없었다. 반면 유럽에서는 프랑스와 서독이 석탄, 철강을 공동으로 관리하기 위한 유럽석탄철강공동체를 만들었고, 그것은 유럽세계가 경제블록화 되는 첫 단추였다. 그런 배경에서 1959년 유럽공동시장 EEC가 성립되었고 1967년 유럽공동체 EC가 탄생했다. 중세유럽은 종교적으로 통합되어 있었으나 세속적으로 나라마다 도시마다 분리된 시대였다. 수백 년간 진통을 앓은 뒤 유럽은 결국 2차 세계대전으로 중세적 질서를 되찾은 것이다.
1917년 레닌이 위로부터의 혁명을 통해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사회주의국가를 건설한 것은 사회주의 실현인 동시에 변질이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사회주의는 분명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겨나야 했다. 자본주의가 성숙한 사회에서 자본주의가 붕괴하고 사회주의 생성 양식으로 이행해야 했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가 아닌 러시아에서 정치적인 과정을 거쳐 사회주의가 탄생 한 것은 두 가지 문제를 낳았다. 하나는 자본주의제도를 통한 경제발전이 생략되었기 때문에 사회주의적 분배와 평등을 구현할 경제적 역량이 모자랐다. 다른 하나는 러시아혁명 직전까지도 중앙집권적 제국체제였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정치적 표현인 의회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역사적 과정이 결여되어 있었다. 정상적인 사회주의 사회로 진입하려면 자본주의 단계를 통한 생산력의 발전이 필요한데, 그 단계가 생략되었기 때문에 그 단계를 인위적으로 메우려 한 것이다. 사회주의혁명 직후 붕괴직전에 놓여있던 소련경제는 신경제정책으로 미국과 견줄 정도로 강국으로 성장하여 2차 세계대전이후 냉전체제 한 축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하지만 소련은 바깥은 화려했지만 안이 점점 곪아 옛 제국체제의 명령이 도사리고 있었다. 소련이 이룬 경제성장은 제국체제의 중앙집권과 국가성장, 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적 경제정책이 결합된 소산이었다. 1949년 사회주의공화국이 된 중국은 마오쩌뚱 혁명이후 수십년 동안 단독 집권했고, 그 뒤에도 계속 1인 집권체제를 유지했다. 그 밖의 동유럽국가와 북한도 공산당이 모든 권력을 장악했고 공산당의 최종 지배자는 1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소련이 사회주의권을 블록화하려 한 것은 반대 진영에 맞서기 위한 자구책이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제국체제 본능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기도 하다. 현실 사회주의는 소련의 코앞에서부터 붕괴되기 시작했다. 폴란드가 자유노조를 결성한 것을 신호탄으로 동유럽사회주의 블록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1985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대외적으로 개방을 대내적으로는 페레스트로이카 개혁을 내세우면서 시대 변화를 수용하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숲의 호랑이가 두 마리였다가 한 마리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숲의 단독 주인이 될 것이다. 미국은 이제 누구의 눈치도 볼 것 없이 자기 마음대로 모든 신민 위에 군림하려 하였다. 1991년 쿠웨이트와 이라크의 영토분쟁에 끼어들었다. 미국은 의회와 국제연합을 통해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와 결의안을 신속하게 통과시키고 다국적군을 구성해 이라크를 공격했다. 걸프전쟁이라고 부른다. 걸프전쟁은 최초로 컴퓨터 시스템을 이용한 전쟁이었다. 과거에는 미사일 담당 병사가 물리적 발사 장치를 조작했지만 걸프전에서는 프로그램으로 조작했다. 이렇게 전쟁은 비인격적이 되었기 때문에 대량살상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다.
체제 간 대결이 사라진 후 전쟁은 미국이라는 반장이 명에 따르지 않는 급우들에게 제제를 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라크 사담 후세인은 반장에 의해 최초로 처형된 급우다. 미국이 교사가 되지 못하고 반장에 거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미국 내의 체제적 결함에 있다. 미국은 연방체제를 취하는 국가다. 미국은 여러 국가가 모인 합중국이다. 서유럽의 시민혁명과 같은 역사적 기능을 한 남북전쟁으로 연방체제가 강화되면서 중앙집권적 연방제라는 묘한 체제를 이루게 되었지만, 미국의 각 주는 연방에서 탈퇴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법적으로 연방정부는 헌법에 명시된 권한만 행사하고 나머지는 주정부 또는 국민이 행사는 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미국은 강력한 중앙집권화를 지향하겠지만 다원화의 역사적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미국은 대외적으로 반장 역할밖에 할 수 없고, 대내적으로 연방체제의 굴레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 내의 강성 우파가 아무리 애국을 부르짖어도 미국은 단일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미국은 서유럽에서 이미 폐기된 민족주의 이념에 매달리고 있다. 서유럽의 민족주의 절정이 히틀러의 인종주의다. 미국이 그런 역사적 경험이 없어서 민족주의 폐해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지만, 결국 경험이 부재한 역사는 미국 행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