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을 이른 아침에 오른다.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산길을 걷는다. 얼마만인가? 백두대간을 할 때는 주말마다 어둠속에서 산행을 했다. 설악산 천화대를 갔을 때는 랜턴불빛에 의존해 바위를 오르기 했다. 아무도 없는 산속의 적막함, 낙엽 밟는 소리와 낙엽 냄새가 참 좋다. 산에 올라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산에서만 오감으로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보는 것, 듣는 것, 냄새 맡는 것, 피부로 느껴지는 것, 계절 따라 날씨에 따라 시간에 따라 온 몸으로 느껴지는 감성, 정서가 있다. 그것에 중독된다.
아침 햇살, 비오는 소리, 눈보라, 달빛, 낙엽냄새, 새소리, 계곡물 흐르는 소리, 나뭇가지가 내는 거친 바람소리, 안개 자욱한 숲..... 예전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추우나 더우나 산을 찾았다. 거칠게 바람부는 날이 더 좋았고, 눈보라 치는 산 능선이 짜릿했다. 이제 그런 날은 산을 가지 않는 핑계가 되었다.
며칠 전 ‘카메라 효과’라는 기능을 시험하면서 수채화기능에 맞춰두고 잊이버렸다. 아무 생각없이 찍은 사진이 수채화로 변해있다.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그 외로운 봉우리와 하늘로 가야겠다.
묵직한 등산화 한 켤레와
그 쪽으로만 나를 끌고갈 별 하나와
그리고 빙벽을 깍아나갈 피켈과
바람의 노래와
흔들리는 질긴 자일만 있으면 그만이다.
산허리에 깔리는 장밋빛 노을
동트는 산빛 아침만 있으면 된다.
나는 아무래도 다시 산으로 가야겠다.
혹은 거칠게 혹은 밝게
내가 싫다고는 말 못할 그런 목소리로
저 바람소리가 나를 부른다.
흰구름 떠도는 바람 부는 날이면 된다.
그리고 눈 보라 속에
오히려 따뜻한 천막 한동과
발에 맞는 아이젠,
담배 한기치만 있으면 그만이다.
나는 아무래도 다시 산으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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