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는 개별화로 각각 고립 되었다. 많이 자유로워졌다고 할까? 그만큼 외로워졌다. 그래서 인터넷에 연결하여 생각 하나 올리고, 말 한마디 올리고, 표정하나 올리고, 새 옷 하나 올리고, 먹는 음식하나 올려놓고 타인의 인정을 기다린다. 그 타인의 반응 하나하나에 의지하여 살아간다. 타인들의 관심이 나에게 약인가, 독인가?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만유인력의 법칙이 작용한다. 서로 가까이 있을수록 그 힘이 강해진다. 많은 물질들이 함께 있으면 다양한 힘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 힘이 강해질수록 안정감을 느낄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구속될 수도 있다. 안정하다란 말은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자유란 외로움의 또 다른 표현이다. 우리 대부분은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자유를 추구한다.
물질을 구성하는 원소 중에서 가장 구속력이 강한, 안정된 상태의 원소가 철이다. 모든 원소들은 안정한 상태를 유지하고자 한다. 철보다 무거운 원소들은 조금만 자극이 있으면 분열하여 철이 되고자 한다. 철보다 가벼운 원소는 철과 같이 되기 위해 함께 융합하려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큰 에너지가 나온다. 이것이 핵분열이고, 핵융합이다. 물질도 그렇지만 우리 마음도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 구속되지도 외롭지도 않으면서 자유롭고 안정된 상태를 원한다. 구속되면 자유로워지고자 하고, 자유로우면 외로워, 구속되고 싶어 한다.
은퇴 후 많은 시간을 홀로 있으면서 타인의 관심,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외로워졌다. 그 틈을 아이들과 책으로 메운다. 쇼펜하우어는 ‘우리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는 타인과 외로움을 동시에 두려워 한다’고 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순간, 더 이상 자유로운 자아는 불가능하다. 아내와 함께 있다 아내가 외출하고 나면 자유로운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외면하고 혼자가 되는 순간, 나의 자아는 외롭다. 함께는 괴롭지만 혼자는 외로운 게 인간이다. 외롭지만 인생이라는 길은 결국 나 홀로 가야한다. 외롭지 않을 정도로 함께 할 적절한 대상이 필요하다.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물음에 답은 없다.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면 된다. 사회적으로, 생물학적 인연으로 무엇을 해야만 하는 소명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때는 구속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러한 구속에서 벗어나는 노년기에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생명을 유지할 최소한의 물질은 필요하다. 이제 그 물질은 최소한이면 된다. 그것을 위해 에너지를 너무 소비하지 말라는 말이다. 물질로 유지되는, 그래서 물질에 구속되는 인생보다 노년은 내가 원하는 삶, 자아실현의 삶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굳이 좋은 결과를 만들 필요도, 타인의 인정을 받을 필요도 없다. 내가 즐겁고, 의미 있고, 가치 있다고 스스로 인정하면 된다.
“ ... 누군가가 보호자임을 자처하며 환심을 사기 위해 말한다. ‘무서워하지 마. 내가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쉼 없이 너를 바라봐 줄 테니까. 너는 한줄기 햇살 속에서 반짝이는 빛 조각처럼 내 시선 안에서 살게 될거야...”( 장폴 사르트르 ’닫힌 방‘)
우리는 함께 깊은 유대감과 관심과 인정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미워하고, 치유하고, 또다시 사랑하고 질투하고, 배려하며 살아가기를 원한다. 타자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갇혀 오직 그들의 눈치를 보며, 인정을 받고, 또 비난을 받으며 살아가야 한다면 지옥인가, 천국인가? 때로는 움베르토 에코의 말처럼 '지옥이란 다름 아닌 타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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