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도 변했고 내가 살아가는 주변 환경도 변했습니다. 남아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새로운 '나'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모두들 이야기 합니다. ‘건강하게 잘 사는 것’입니다. 건강하게 잘 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
일까요? 물론 ‘나’입니다. 나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산다는 것입니까?
건강하기 위해서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합니다. 건강하기 위해 육체적으로는 잘 먹고, 잠 잘자고, 운동하고.
이런 식생활, 일상생활의 습관이 중요합니다. 정신적으로는 관념,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치열한 경쟁환경에서 전투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난 그러고 싶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러니, 환경이
그래서, 그냥 따라가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걸으면 나도 걷고, 다른 사람들이 뛰면 나도 뛰어갑니다. 어디로 가는지
왜 뛰는지, 나도 모릅니다. 그냥 다른 사람이 뛰어가니 나도 뛰어야 할 것 같아서. 그렇게 뛰어오다 보니 어느 순간 앞이
천길 낭떠러지입니다. 천갈래 만갈래 길이 나 있습니다. 깜깜한 암흑이고 황량한 황무지입니다. 이제 나 홀로 가야 합니다.
내가 함께 해야 할 나의 가장 중요한 삶의 동반자는 '나'입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나를 위해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해 주었나요? 내 몸을 위해 지금 나는 무엇을 해 주어야 할까요?
저는 내 몸이 스스로 알아서 잘 동작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몸을 원망과 분노와 좌절과
우울 속에 두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탓하지 말고, 자연에 저항하지 말고, 세상만물을 존재 그대로 인정해 주고, 그 속
에서 내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가능하면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해주려 하지 말고, 기대하지도 말고, 내
삶을 살아가려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나는 내 몸과 함께 살아갑니다. 내 몸이 좋으면 나도 좋고, 내 몸이 나쁘면 나도 나쁩니다. 내가 잘 되기 위해서는 내
몸이 잘 되어야 합니다. 나를 위해 내가 해야 할 중요한 세 가지는' 내 몸이 제대로 자기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하고,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도록' 도와야 하고, '언제나 스스로 존재감을 갖고 당당하게 살아가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건강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모두 건강해야 합니다. 육체와 정신은 하나입니다. 정신은 육체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면 육체적으로 병이 생깁니다. 대표적인 것이 스트레스입니다. 건강하다는 것은
우리 몸의 모든 기관이 제대로 동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몸은 음식물을 섭취하여 소화시키고 몸에 필요한 영양소,
에너지를 만듭니다.
동의보감에서는 몸의 작동 메카니즘을 정精, 기氣, 신神의 작용으로 설명합니다. 이러한 필수 영양소, 에너지를 저는
동의보감에서 이야기하는 정精으로 이해합니다. 그리고 氣는 이러한 영양소를 심장, 폐, 혈액, 림프액 등의 순환기의
작용으로 몸의 각 기관에 운반하는 힘이라고 이해합니다. 각 기관은 필요한 영양소, 에너지를 이용하여 기관 작동을
위해 필요한 요소를 만들고, 상황에 따라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이러한 몸의 작동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하면
병이 생기다고 이해합니다.
이러한 물리적, 육체적 작동시스템 장애를 유발하는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정신적 작용입니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걱정이 많으면, 분노가 일어나면 혈액순환에 장애가 생기고, 호흡이 빨라지고, 장기가 비정상적으로 작동합니다.
소화기, 순환기, 면역체계 장애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정신적 건강이 중요합니다. 남 탓을 하고, 세상 탓을 하며, 비난
하고, 분노하고, 또 스스로를 탓하고 자책하는 것도 내 몸의 생존시스템의 작동에 부정적 영향을 주게 되어 질병이
생긴다고 이해합니다. 정신적으로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무엇에 저항하는 것은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스트레스입니다. 그래서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삶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관념을 통해 세상으로 바라보고 판단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관념이 동의보감에서 말하는 神, 즉
정신情神이라고 생각합니다. 관념이 육체의 중추신경에 연결되어 있어, 이 神의 지시에 의해 감정을 일으키고 몸이 작동
하게 합니다.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합니다. 이 神이 관념이고,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이고. 이 神이 하나님이고
부처님입니다. 종교는 이 관념은 사랑과 자비가 기반이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많은 관념들은 몸 내면에서 형성되어 무의식이 되고 습관화 되어, 내 삶을 지배합니다. 나는 자유의지에 의해 무엇을 行
하기 어렵습니다. 내가 옳다고 해도, 내가 행해야만 하는 것도 나는 행하지 못합니다. 나는 외부세상에서 받아들인 자극에
대해 관념의 지시로 반응합니다. 그러한 관념들은 삶의 환경에 의한 지속적인 외부 자극에 의해 끊임없이 변해야 합니다.
일상에서 끊임없는 자극이 필요합니다. 아니면 고정됩니다.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내 의지에 의해 바꿀수는 없습니다.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계속 합리적인 변명을 찾아냅니다.
학습의 목적은 관념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고정관념은 외부자극에 적절하게 반응하려 하지 않고 방어하려고만 합니다.
외부세상에 문을 닫게 됩니다. 외부자극에 대해 자신을 지키려고만 합니다. 나는 관념의 문지기 노릇만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외부로부터 내 몸이 지속적으로 자극받고 반응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메커니즘이 계속 작동하게
해야 합니다. 외부자극에 반응하지 않고, 배타적으로 방어하려고만 한다면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것입니다. 병들어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다양하고 복잡하게 모든 것이 함께 뒤섞힌 세상에서 삶은 더욱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세상이 점점 더 나에게는
생소해지고 세상을, 상황을 읽기 어려우면 자신을 방어하려고만 하며, 스스로를 닫아버립니다. 나를 외부의 많은 다양한
자극에 노출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흥미로워야 합니다.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하는 것이 좋지만, 노년이 되면 육체적
으로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책이나 멀티미디어 등의 텍스트를 통한 학습으로 자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삶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하고 선택하여 책임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생각이 깊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성인이 되라는 것도 종교적 수행자가 되라는 것도 아닙니다. 내 삶에서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가치들, 관심 있는
것들에 대한 생각이 깊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심 갖고, 몰입할 무엇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공부를 하게 하는
것은 호기심이고, 노년의 공부의 마무리는 무엇을 기억하는 것도 아니고, 아는 것도 아니고 깊은 생각입니다. 깊은 생각이
관념과 연결됩니다.
돈이든, 가족이든, 사랑이든, 종교든, 국가든, 무엇이든 스스로 묻고 또 물으며 답을 찾아가야 합니다. 생각하지 않은 것은
학습되지 않습니다. 생각 없는 행동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 지도, 내가 누구인 지도 모릅니다. 그냥 타성으로, 관습에 따라
행동합니다. 그런 행동이 전쟁을 일으키고, 살인을 하고, 사회를 파괴하고, 인류를 멸망시킵니다. 아돌프 아이히만, 그는
유태인 학살에 앞장 섰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유태인들을 어떻게 하면 비용을 줄이고 대량으로 효율적
으로 학살할 수 있는지를 연구한 사람입니다. 그는 우리와 다를 것이 없는 좋은 아버지였고, 좋은 남편이었습니다.
다만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고 지신에 의해 자신의 생각이 전혀 없는 종으로서 충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들 대부분의
삶이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도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고, 누구의 탓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면 내가 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이히만처럼 살인기계가 될 수 있습니다.
나이들어 은퇴하고 노인이 되어가면서 가장 괴로운 것은 돈이 많든 적든, 지위가 높든 낮든 자신 스스로가 자신을 세상에
필요없는 존재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돈이 많고 권력이 있는 사람들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자신을 인정해주지만,
스스로 생각할 때 그들은 나의 돈 때문에, 나의 힘 때문에, 나에게 뭔가 필요한 것이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하게 되면 사람
들을 의심합니다. 편하고 친근감이 느껴지기보다 모든 사람들을 의심하게 되니 외롭습니다. 세상만사 많은 것들이 서운하고
불만스럽고, 세상 돌아가는 것이 짜증스럽습니다. 친한 사람일수록 더욱 의심이 가고, 서운한 그런 마음이 많습니다. 자신에
대한 존재감의 부족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나이들어 필요한 것은 내 스스로가 인정할 수 있는 나, 나 자신에 대한 존재감을 갖는 것입니다. 외부로부터의 인정이 아닌
내 스스로가 인정할 수 있는 존재감 말입니다. 지금까지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돈을 번다는 것으로,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으로 존재감을 만들었습니다. 이제 스스로 나의 내부에서 내 스스로가 인정하는 존재감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대체로 구속된 삶을 살아갑니다. 돈에 구속되고, 가족에 구속되고, 일에 구속되고, 어떤 힘에 구속되어 살아
왔습니다. 은퇴를 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일과 돈, 힘과 가족으로부터의 구속에서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비로소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자유! 우리 모든 인간들의 바램입니다. 드디어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 자유가 불안하고 불편합니다.
쉴 새 없이 바쁘게 살아가던, 돈 때문에 일 때문에 잠 못이루던 그때가 그립습니다. 우리 몸이 무엇의 종으로 사는데 익숙
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비로소 그 자유를 얻어 자신의 삶을, 자아실현의 삶을 살게 되었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릅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상대의 시비를 논하지 말고 비판하지 말고 분노하지 말고 탓하지 말고, 돈도 권력도 그 무엇에도 눈치보지 말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제 세상을 내가 느끼고 표현하고, 내 욕구를 만들고 이야기하고 즐기며 살아야지요. 그러자면 내 몸을
만들어야 합니다. 내 몸을 만들수 있는 좋은 스승, 경험이 필요합니다. 인터넷에서, 책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노년에 독서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하여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남의 탓, 세상 탓을 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지금 일어
나고 있는 세상 모든 사건사고들은, 현상들은 일어날만 하니까 일어났고, 사라질만 하니까 사라집니다. 많은 것들이 내
관념의 틀에 맞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세상을 탓하고 남을 탓하는 것은 내 삶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항상 무엇을
미워하고 분노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세상이 나를 위해서 뭔가를 해주지 않으면 내 삶은 항상 힘들기만 할 것입니다.
내가 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종속적인 삶입니다.
이렇게 세상에 휘둘려 살다가 인생 허비하게 됩니다. 분노하고 좌절하다가 스스로 붕괴되어 우울증에 빠집니다. 더이상
내가 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느끼면, 내 존재감을 가질 수 없습니다. 누가 인정을 하든 안 하든, 내 스스로가 인정할
내가 할 무엇을 만들어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한다는 느낌, 몰입하는 느낌, 그 순간이 행복이라 생각합니다.
노년이 특히 자기주도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감정적으로도 종속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더 이상 누구에게 의존해서
살아가려고 하지도 말고,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해주려 할 필요도 없습니다. 어떻게 타인의 도움이 가장 필요한 노년에
그렇게 사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노년의 삶에 대한 태도가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만 건강하게 잘 살면, 그것이
주변사람 도와주는 일입니다. 노년의 삶은 자유이어야 하며 철저히 혼자임을 깨닫고 수행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노년은
비로소 지금까지 삶에 대한 보상입니다. 이제 내가 좋아하는, 내가 몰입할 수 있는 나의 무엇이필요합니다. 그것을 중심
으로 나만의 삶의 패턴을 만들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