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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고 유쾌한 과학 이야기( 브뤼

갈릴레이와 브루노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이론의 여지 없이 근대과학의 아버지로 꼽힌다. 갈릴레이는 갈릴레이는 열아홉살이던 1584년 피사 대성당의 샹들리에가 흔들리는 운동을 자신의 맥박수를 이용하여 측정하면서, 진자의 등시성을 발견한다. 갈릴레이는 관찰과 실험을 반복 하면서 단진자의 진동 주기는 진자를 매단 끈의 길이에만 영향을 받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이것이 바로 '진자의 주기에 관한 법칙'이다. 갈릴레이는 누군가의 추천으로 피사 대학의 수학 교수로 임명 되었다.  갈릴레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내놓은 한가지 이론에 의문을 품었는데  그것은 바로 물체는 무거울수록 당연히 더 빨리 떨어진다는 이론이다납으로 된 공과 코르크로 만든 공을 같은 높이에서 떨어뜨린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생각해 볼수 있는 유일한 답은 두 공이 어떤 경우든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보통의 관찰에 비추어보면 누구나 무거운 물체일수록 더 빨리 떨어진다고 알고 있다.  길릴레이는 가벼운 물체가 무거운 물체와 같은 속도로 떨어지지 않는 것은 공기의 방해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물체의 낙하 속도는 그 질량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었다.  물체가 질량이 클수록 그 무게, 다시 말해서 그 물체를 땅으로 잡아당기는 힘이 커지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무거운 물체일수록 빨리 떨어지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물체의 속성, 즉 관성 때문이다. 탁구공은 질량이 훨씬 작기 때문에 훨씬 적은 힘으로도 낙하운동을 하게 만들 수 있다.  관성은 질량에 비례하므로 두 물체를 움직일 때 필요한 힘의 차이는 정확히 질량 차이에 대응되며, 따라서 물제가 무거울수록 낙하운동을 일으키기 힘들어진다. 물체가 무거운 정도와 낙하운동이 힘들어지는 정도가 나란히 가는 것이다.  이 말은 관성의 초과분이 무게의 초과분을 상쇄시킨다는 뜻이며, 그래서 공기의 저항이 개입하지 않는 물체는 그 질량이 얼마든 간에 언제나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  이상이 갈릴레이의 실험에 담겨있는 사실이다. (관성은 물체가 자신의 운동상태를 유지하려는 성질로 정의한다. 관성은 질량이 종종 동의어로 생각되는 것이다.)  갈릴레이가 낙하 하는 물체에 대한 연구 끝에 등가속도 운동의 법칙을 알아낸 것이다.  갈릴레이는 물체의 관성을 기준으로 결정되는 관성질량우리가 보통 질량이라고 부르는 중력질량서로를 정확히 상쇄 시키는 관계에 있으며,  따라서 같은 조건에서 낙하하는 두 물체는 질량에 관계없이 동일한 운동을 한다고 밝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돌멩이를 나무 위에서 떨어뜨렸을 때,  그것이 수직으로 떨어진다는 사실이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 증거라고 말했다. 지구가 움직이고 있다면 돌멩이는 수직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논거를 펼치면서 말이다. 브루노가 생각하기에 그렇다면 움직이는 배의 깃대위에 떨어뜨린 돌멩이는 수직으로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부루노가 실험한 결과 움직이는 배의 깃대 위에서 돌멩이를 떨어뜨리자 그 돌멩이는 수직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부루노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것은 지구와 함께 움직인다. 브루노는 배가 육지에서 보기에는 움직이고 있어도 그 배에 탄 사람들의 기준에서는 움직이지 않는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절대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운동은 존재하지 않으며, 운동은 무엇보다도 상대적 임을 이해한 것이다. 브루노는 그 누구보다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우선 그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 하되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하늘은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으며 거기에 별들이 흩어져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태양이 다른 별들과 다를 바 없는 하나의 별이라면, 그 다른 별들도 주위에 행성들을 거느리고 있을 것이고, 태양계의 행성들 중 지구에 생명체가 살고 있다면 다른 항성계의 다른 행성에도 생명체가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프랑스 국왕 앙리3세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브루노는 유럽 곳곳을 다니면서 자신의 우주관을 설파했고, 옥스퍼드 대학에서의 경연으로 영국 국왕을 언짢게 했다. 1585년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이론을 상세히 비판한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에 대한 고찰’ 이라는 책을 집필했다. 이제 앙리 3세도 도 이상 그를 보호할 수 없었다.  브루노는 파도바 대학 수학 교수직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그를 베네치아로 초대한 조바니 모니체고라는 귀족이 브루노와 갈등이 생기자 그를 베네치아 종교 재판소에 고발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브루노는 사회에 저항적인 본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에게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지만, 브루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브루노는 몇몇 재판관과 함께 자신의 주장을 철회한다는 문서를 작성했으나 내용을 수정하기를 요구했다.  그렇게 수정하고 수정하여 그가 서명만 하면 되는 순간 그는 다시 생각을 바꾸어 철회를 거부했다. 교황 클레멘스 8세가 직접 나서서 마지막으로 굴복을 촉구했지만 브루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소. 나는 아무것도 철회하지 않을 것이오. 내가 무엇을 철회해야 하는지 모르겠소 이다. ’  600년 2월 17일 현재 그의 동상이 서 있는 로마 캄포 피오리 광장에서 화형을 당했다.

 

갈릴레이를 반대하는 자들은 천문학쪽으로는 그 만큼 모르게 때문에 다른 주제,  즉 부유하는 물체에 관한 문제를 놓고 그를 비판했다. 갈릴레이는 얼음이 물에 뜨는 이유가 물보다 가볍기 때문이라고,  밀도가 낮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에 뜨는 것은 얼음의 본성이라고 설명했다.  갈릴레이는 자신의 발언을 논리적으로 증명함으로써 물에 뜨는 물체에 관한 논쟁에서 이기게 된다.  1612년 독일 예수회 수도사이자 천문학자인 크르스토프 샤이너는 태양의 흑점에 관한 갈릴레이 이론을 비판했다. 샤이너는 태양의 흑점은 태양과 지구 사이에 무리지어 존재하는 별들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갈릴레이는 문제의 흑점이 태양의 표면에 있거나,  아니면 그 정확한 고도를 알아낼 수 없을 만큼 표면에 아주 가까이 있음을 훌륭히 증명했다. 샤이너는 갈릴레이를 인정했다.

 

1612년 교회는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고 지구가 그 주위를 돌고 있다주장하며, 성 도미니크회 수도사인 니콜로 로리니는 지동설을 맹렬히 비난했다.  성서를 인용해 태양과 달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이야기 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야훼께 외쳤다.  ‘ 해야, 기브온 위에 머물러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멈추어라.’  조르다노 브루노를 재판한 추기경은 갈릴레이 친구인 벨라르미노 신부였다. 그는 갈릴레에에게 천동설을 무효화하는 반박할 수 없는 증거가 없다면, 지동설을 당장 그만두라고 했다.  교회는 성서에 대한 해석이 때로는 틀릴 수도 있음을 인정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갈릴레이는 과학적 토론이 종교의 영역으로 옮겨가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분노했다. 그는 지구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에 실패했다.  지동설은 성서에 반하는 것으로 선포했다. 1619년 예수회 수도사이자 천문학자인 오라치오 그라시가 혜성의 타원운동에 관한 개론서를 발표했다.  그러자 갈릴레이의 제자중 한명이 혜성은 착시현상에 지나지않는다고 설명하는 이론을 지지했는데, 사실상 갈릴레이가 제자 입을 빌려 그라시의 의견을 반박한 것이었다.  갈릴레이는 논쟁술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책 ‘시금자試金者’를 통해서 반어적으로 대응했다.  모욕감을 느낀 그라시는 종교 재판소에 갈릴레이를 고발하는 익명의 편지를 보냈지만 종교재판소는 기각했다. 시금자’에서 갈릴레이는 수학이 과학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 철학은 우주라는 드넓은 책에 쓰여 있으며 이 책은 우리 눈앞에 항상 활짝 펼쳐져 있다. 그러나 우주라는 책을 이해하려면, 우주의 언어와 이 언어를 이루고 있는 문자를 먼저 배우고 이해해야 한다.  우주는 수학이라는 언어로 쓰여 있고, 그 문자는 삼각형, 원, 기타 기하학적 도형들이다.  이를 모르면 인간은 우주라는 책을 한 낱말도 이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