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평생 동안 해오던 일에서 은퇴하고 나면, 내 주변의 많은 관계들은 자동적으로 정리된다.
물론 계속 유지되기도 한다. 그 관계를 억지로 유지하려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다. 나는 '나'라는
존재는 '관계덩어리'로 이해한다. 그래서 나는 항상 변하고 있다. 나의 정체성도 물처럼 그렇게
흘러간다.
지금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 은퇴후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너무 정체성에 집착할
필요도 없다. 오늘의 좌파가 내일은 우파가 된다. 오늘은 이것이지만 내일은 저것이 될 수도 있다.
너무 우리 편, 남의 편 갈라서 원수처럼 싸울 필요는 없다.
은퇴후 업무적으로 관련된 많은 부분들, 사람들, 지식들, 관심분야들, 관련 물질들...그러한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나면, 나의 대부분이 사라지는 것 같다. 무성하던 나뭇잎이 어느날 갑자기 모두
떨어져 버린 겨울나무가 된다. 물론 상록수도 있다.
관계는 물질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정서적으로 만들어 지기도 한다. 모든 관계는 이 두기지
요소가 함께 있다. 물질적이라는 것은 불교용어로 이야기하면 色이다. 업무적인 관계들은 대부분
물질적인 것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 한다. 그래서 그것들은 쉽게 사라진다.
어떤 존재는 나에게 많은 관계의 변화를 만들어 낸다. 지난 날에는 직업 일이 많은 관계를 만든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많은 관계를 만들고, 카메라, 친구 , 좋아하는 취미활동, 여행, 책 또한
많은 관계를 만든다. 관계를 만든다는 것은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다양한 더 많은
관계를 만들어 주는 것은, 내 경험에 의하면 책이다. 만나고 싶은 사람, 분야, 무엇도 만날수 있다.
어떤 존재 하나는 나의 관계를 변화시킨다. 나를 변화시킨다.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어떤 관계는 사라지게 하고, 또 어떤 관계는 강화한다. 은퇴는 많은 관계의 변화를 가져온다.
특히 외적인 많은 관계들이 사라진다. 외적인 관계 정리는 무엇에서 벗어난다는 것이기도 하다.
외적인 관계가 많이 정리되면, 그때 내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다. 주변이 고요해지니 내적으로
더욱 집중하게 된다. 외부 자극에서 벗어나면 처음에는 권태롭지만, 그 다음에는 내적으로 집중
하게 만든다.
이제 관계를 다시 정리해야 한다. 내적인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외적인 것은 그냥 따뜻한
손길, 눈길이면 된다. 나를 생존하게 해줄 음식과 내가 따스함을 느끼는 햇살, 상쾌한 바람,
가슴 뛰게 하는 파란하늘,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꽃, 나무, 풀, 새소리, 계곡 물소리...
이런 것들이 내게 기운을 준다. 이제 내게 삶의 의미를 주는 새로운 것들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나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내 세상을 만들어 나간다. 삶의 의미를 갖게
하는 것들은 대단한 것도, 고상한 것도, 지적인 것도 아니다. 삶의 의미를 찾는다고 해서 대단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니다. 내 삶을 사는 것이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좋은 노래를 듣고 즐기는 것, 나를 즐겁게 만드는 일상의 소소한
것들이 내 삶의 의미가 될 수 있다. 그것들이 나를 살아가게 한다. 내 몸에 기운을 준다. 그래서
내 몸의 신체기관들, 세포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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