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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 한잔 들고가게!

종교의 역할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처하기 위해, 지금보다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더 많이

가지려 하고, 어떤 물질이든 내가 직접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것 산, 강, 바다, 나무, 꽃, 땅 ... 자연의 모든 것은 누구의

소유가 되어서는 안된다. 관리되어야 하는 대상들이다.

 

이 세상 만물이 그 속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소유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은 이용할 수 없게 하며, 나외 다른 사람들은 이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게

하는 것이며, 그래서 군림하는 것이며, 불공정한 것이다.

 

산을 오르다 보면 사찰 일대의 산의 상당히 많은 지역이 언제부터인가 모르겠지만,

사찰의 소유라며 울타리를 치고 통행료를 받는 경우가 많다. 정말 그래서는 안되는,

무소유가 삶의 기본이라 가르치는, 이 세상 모든 것은 공정해야 하는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최후의 보루마저 세상을 소유하려 하고 군림하고자 한다.

 

하느님을 믿고, 부처님을 믿고  인간의 도리를  다하고 성실히 살아가다보면, 삶의

필요한 모든 것은 다 이루어지리라며, 부처님,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그들 조차

돈이 최고라며 솔선수범을 보이니, 이제 일반 중생들이야 어떻게 하리?

 

종교의 역할은 물질적인 탐욕으로 잘못 되어가는 이 사회를, 우리 삶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 아닌가?  주된 가르침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이며, 누구나 

이 세상을 누릴 권리를 가졌다는 것과 물질의 무상함, 물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정신적 가르침의  중심이 되어야 할 종교가 물질적 탐욕으로 편안함을

얻으려 하고, 군림하려 한다면, 그런 곳에서 어떤 가르침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 옛날에 우리 선조들은 하늘을 무서워 하고, 신을 무서워하고, 자연을 무서워했으며,

그래서 나만 많이 가지려 하는 물질적인 과도한 탐욕이나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게

되면 벌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믿으며 신중하게 행동하고, 자연을, 신을 두려워했지만,

이제는 이 세상 살아가는데 믿을 것은 오직 나 자신밖에 없으며, 돈 밖에 없다고 믿는다.

 

그것이 곧 내 힘이고, 나를 지켜줄 것이고,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것만을 인정하고

부러워 한다. 종교도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목표도 물질 중심이

되어버렸다. 인간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불안 심리를 이용하여 물질적 욕심을 채운다.

 

일상에서 필요 이상의 물질을  탐하는 욕구와 무엇을 소유하려는 욕구는 인간이 생존을

위해 어찌할 수 없는 생리적 욕구이지만, 그것이 과하면 분명히 죄악이다. 언제부터인가

학문은 '소유'를 정당하는 하는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이제 인간은 그러한 것을 당연시하게 되었고, 죄악이 아닌 자랑이 되었다. 그런 욕심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그런 욕구를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는 사회라면, 사회의 정의, 평화,

공정사회 이러한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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