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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 한잔 들고가게!

왜 공자, 맹자를 읽어야 하는가?

 

아인슈타인이 프로이드에게 인류를 전쟁의 재앙에서 구원할 방법을 물었다.

프로이드는 '사람들에게 미워하고, 파괴하려는 욕구가 있다'고 대답했다.

인간의 자기보존 욕구는 욕구충족을 위해 공격성을 필요로 하고, 생명은

다른 생명을 파괴함으로써 자신을 보존하다는 것이다.

 

인간본능에는 이런 정신적 기반이 깔려 있다. 그러한 본능을 후천적으로

교육을 통해서 그리고 사회적 규범, 제도로 통제하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다. 역사기록의 대부분은 전쟁의

기록이다. 특히 전쟁이 진행되던 시기에는 인간의 공격성, 잔혹성을 통제하기

위해 인문학이 많이 강조되었다. 중국전역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일진일퇴 공방전이 200년이상이나 지속되던 춘추전국시대에, 동양철학의

기반이 되는 논어 등이 씌여졌다.

 

지금이 아마 인류 탄생이후 가장 펑화로운 시대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그런 교육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다. 왜 그런 것들이 필요한지 이해도 안되고

마음의 여유도 없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지금 격심한 경쟁을 부추긴다.

공격성은 생존을 위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오로지 힘있는 자만이 생존한다.'

모든 국가, 기업은 이렇게 외친다.

 

왜 공자, 맹자를 읽어야 하는가?  졸부에서 지성인으로의 변신을 위해 백화점

VVIP회원자격으로 초청받은 인문학 강좌를 한번 듣고, 책한 두권 읽는다고

사람이 바뀌겠는가?  사회가 변하겠는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은 그냥

있는 자들의 사치의 일부로 인식된다.

 

인문학도 생존을 위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물음에 답을 찾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함께 살아야 생존한다는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지금 인간의 잔혹성에 의해 일어나는 사회적 현상은 지금 이 순간, 그 사건의

가해자, 그와 관련된 인간들만의 잘못, 문제가 아니다. 현재는 그러한 사건들은

언제 어디서나 계속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이다.

 

조사를 받고 있는 가해자들, 옷을 벗게된 관련자들은 아마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재수없게 내가 걸렸다고..."  맞다. 재수없이 걸려들었다. 지금 발생한 이떤 사회적 

사건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여러가지 상황이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지금 

그러한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것은, 사회적 여건이 그렇게 되게끔 조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같은 일반 대중들은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상황을 보면서, 분노하고

언론에서 만들어낸 속죄양을 한동안 씹게 된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의 공격성을

달래는 한가지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상황은 언제 나에게 닥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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