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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 한잔 들고가게!

어린왕자와 여우

 

학창시절 별로 책을 읽지 않았지만, 어린왕자라는 책이 그렇게 훌륭한 명작이라고 추천을 받았다.

이건 소설도 아니고, 우화도 신화도 아니고, 수필도 아니고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

 

직장생활을 하다가 우연히 어린왕자라는 책을 또 읽었다. 먼저 책의 분량이 100페이지도 되지 않아

읽었지만, 역시 이해되지 않는 책이었다. 그후 정상적인 직장생활에서 은퇴한 후, 책장을 정리하다가

어린왕자라는 책을 발견했다. 만만해서 다시 읽었다. 감동이었다. 그중에서 여우와의 대화가 나에게는

감동이었다. 아마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가 여기에서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내용을 여기에 소개해 본다.

 

.... ‘안녕.’ 여우가 말했다....

‘너는 누구지? 넌 참 예쁘구나.’ 어린왕자가 말했다.

‘난, 여우야.’ 여우가 말했다.

‘이리 와서 나와 함께 놀아. 난 정말 슬프단다.’ 어린 왕자가 제의했다.

‘난 너와 함께 놀 수 없어.’ 여우가 말했다. ‘나는 길들여져 있지 않으니까.’

‘아, 미안해.’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러나 잠깐 생각해 본 후에 그는 다시 말했다. ‘<길들인다>는 게 뭐지?’

 

‘너는 여기 사는 애가 아니구나. 넌 무얼 찾고 있니?’ 여우가 물었다.

‘난 사람들을 찾고 있어.’ 어린 왕자가 말했다.

‘사람들은 소총을 가지고 있고 사냥을 하지. 그게 참 곤란한 일이야!

그들은 병아리들도 길러. 그것이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지.

너 병아리를 찾니? ‘ 여우가 물었다.

 

‘아니야, 난 친구를 찾고 있어. 길들인다는 게 뭐지?’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건 너무 잘 잊혀지고 있는 거지. 그건 <관계를 만든다>는 뜻이야.’ 여우가 말했다.

‘관계를 만든다고?’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래.’ 여우가 말했다. ‘넌 아직 나에겐 수많은 다른 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소년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난 너를 필요로 하지 않고. 난 너에겐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겐 이 세상에 오직 하나 밖에 없는 존재가 될거야.‘ ........

 

여우가 하던 이야기로 다시 말머리를 돌렸다.

‘내 생활은 단조롭단다. 나는 병아리를 쫓고, 사람들은 나를 쫓지. 병아리들은 모두 똑같고 사람들도

모두 똑같아. 그래서 난 좀 심심해.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내 생활은 환히 밝아질거야. 다른

모든 발자국 소리와 구별되는 발자국 소리를 나는 알게 되겠지. 다른 발자국 소리들은 나를 땅 밑으로

들어가게 만들지만, 너의 발자국 소리는 땅 밑 굴에서 나를 밖으로 불러낼거야!

 

그리고 저길 봐! 저기 밀밭 보이지? 난 빵은 먹지 않아. 밀은 내겐 아무 소용 없는거야. 밀밭은 나에게

아무것도 생각나게 하지 않아. 그건 서글픈 일이지! 그런데 너는 금빛 머리칼은 가졌어. 그러니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정말 근사할거야! 밀은 금빛이니까 나에게 너를 생각나게 할 거거든. 그럼 난 밀밭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소리를 사랑하게 될 거야.’

 

여우는 입을 다물고 어린 왕자를 오래오래 쳐다보더니, ‘부탁이야, 나를 길들여 줘!’하고 말했다.

‘그래, 나도 그러고 싶어.’ 어린왕자는 대답했다. ‘하지만 내겐 시간이 많지 않아. 친구를 찾아야 하고

알아볼 일도 많아.’

 

‘우린 우리가 길들이는 것만을 알 수 있는 거란다.’ 여우가 말했다. ‘사람들은 이제 아무것도 알 시간이

없어졌어. 그들은 상점에서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들을 사거든. 그런데 친구를 파는 상점은 없으니까,

사람들은 이제 친구가 없는 거지. 친구를 가지고 싶다면, 나를 길들여 줘.’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어린왕자가 물었다.

‘참을성이 있어야 해.’ 여우가 대답했다. ‘우선 내게서 좀 떨어져서 이렇게 풀숲에 앉아 있어. 난 너를

곁눈질해 볼 거야. 넌 아무 말도 하지 말아. 말은 오해의 근원이지. 날마다 넌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 앉을 수 있게 될거야.’

 

다음날 다시 어린 왕자는 그리로 갔다.

‘언제나 같은 시간에 오는게 더 좋을거야.’ 여우가 말했다. ‘이를테면, 네가 오후 네시에 온다면,

난 세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시간이 갈수록 난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네시에는 흥분해서

안절부절 할거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되겠지! 아무 때나 오면, 몇시에 마음을

곱게 단장해야 하는지 모르잖아. 의식이 필요하거든.’

 

‘의식이 뭐야?’ 어린왕자가 물었다.

‘그것도 너무 자주 잊혀지고 있는거야.’ 여우가 말했다. ‘그건 어느 하루를 다른 날들과 다르게 만들고,

어느 한 시간을 다른 시간들과 다르게 만드는 거지. 예를 들면 내가 아는 사냥꾼들에게도 의식이 있어.

그들은 목요일이면 마을의 처녀들과 춤을 추지. 그래서 목요일은 신나는 날이지! 난 포도밭까지

산보를 가고, 사냥꾼들이 아무 때나 춤을 추면, 하루하루가 모두 똑같이 되어버리잖아. 그럼 난 하루도

휴가가 없게 될거고...’

 

그래서 어린왕자는 여우를 길들였다.

출발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 여우는 말했다. ‘아아! 난 울 것만 같다.’

‘그건 네 잘못이야. 나는 너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내가 널 길들여 주길 네가 원했잖아.’

어린왕자가 말했다.

‘그건 그래.’ 여우의 말이었다.

 

‘한데 넌 울려고 그러잖아!’ 어린왕자가 말했다.

‘그래, 정말 그래.’ 여우가 말했다.

‘그러니 넌 이익 본 게 아무것도 없잖아!’ 어린왕자가 말했다.

‘이익 본 게 있지. 밀밭의 색깔 때문에 말야.’ 여우가 말했다.

 

잠시 후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장미꽃들을 다시 가서 봐. 너는 너의 장미꽃이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이라는 걸 깨닫게 될거야. 그리고

내게 돌아와서 작별인사를 해줘. 그러면 내가 네게 한가지 비밀을 선물할게.’

어린왕자는 장미꽃을 보러 갔다.

 

‘너희들은 나의 장미와 조금도 닮지 않았어. 너희들은 아직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들에게 그는 말했다.

‘아무도 너희들을 길들이지 않았고, 너희들 역시 아무도 길들이지 않았어. 너희들은 예전의 내 여우같아.

그는 수많은 다른 여우와 꼭같은 여우일 뿐이었어. 하지만 내가 그를 친구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는

이제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여우야.’

 

그러자 장미꽃들은 어쩔줄 몰라 했다.

‘너희들은 아름답지만 텅 비어 있어.’ 그가 계속 말했다. ‘누가 너희들을 위해서 죽을 수 없을테니까.

물론 나의 꽃은 지나가는 행인에겐 너희들과 똑같이 생긴 것으로 보이겠지. 하지만, 그 꽃 한송이는

내게는 너희들 모두보다도 더 중요해. 내가 그에게 물을 주었기 때문이지. 내가 병풍으로 보호해 준

것은 그 꽃이기 때문이지. 내가 벌레를 잡아준 것도 그 꽃이기 때문이지. 불평을 하거나 자랑을

늘어놓은 것을, 또 때로는 말없이 침묵을 지키는 것을, 내가 귀 기울여 들어준 것도 그 꽃이기 때문이지.

그건 내 꽃이기 때문이지.’

그리고 그는 여우에게 돌아갔다.

 

‘안녕.’ 그가 말했다.

‘안녕.’ 여우가 말했다. ‘내 비밀은 이런거야.’ 그것은 아주 단순하지. 오로지 마음으로만 보아야

잘 보인다는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가장 중요한건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잘 기억하기 위해 어린왕자가 되뇌었다.

‘너의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드는 건,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그 시간이란다.’

<...내가 내 장미꽃을 위해 소비한 시간이란다...> 잘 기억하기 위해 어린왕자가 말했다.

‘사람들은 그 진리를 잊어버렸어.’ 여우가 말했다. ‘하지만 넌 그것을 잊으면 안 돼.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게 되는거지. 너는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나는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잘 기억하기 위해 어린왕자는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