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삷의 대부분은 우연이 좌우한다. 우연은 불확실함이고, 그 불확실함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 우연, 삶의 불확실성 때문에 우리는 두려어 하고
그래서 하늘에게, 땅에게, 신에게 기도한다.
불확실함에 대해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두려움에 떨기보다 자연에게,
신에게 기도하고 나면, 뭔가를 했다는 느낌이 조금은 삶에서 내가 불확실함을
통제하고 있다는 마음이 우리를 불안에서 벗어나게 하고, 힘든 삶의 시련을
견디게 한다.
우리는 삶의 우연을 하늘과 땅이 그리고 신이 통제한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냥 기도하는 것말고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나약한 인간은
무리를 지어, 그 무리의 규제 속에서 무리를 위해 살아야 했다. 무리로 부터
따돌림 당하거나, 추방되는 것은 곧 죽음이거나, 생존의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하늘과 땅에게 기도하고, 무리 속에서 조직의 제도와
규볌속에서 보호받으며 살아갔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과학기술의 발전과
인간중심의 인문사회학의 발전은 자연현상의 법칙, 세상의 이치를 상당부분
밝혀냈고, 사회와 국가로 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져 신과 조직 중심에서
개인중심으로 변했다.
이제 조직은 전쟁, 폭력 등의 물리적인 외부 힘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것 외에는
이제 모든 것은 시장원리, 개인 능력 탓이며, 개인책임이 되었다. 잘 살고
못사는 것, 한 개인이 그렇게 된 것은 한 개인이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개인탓이다. 이제 하느님도, 하늘도 땅도 나를 도와주지 못하며 이 모든 것은
내가 잘났기 때문이거나, 내가 못난 내 탓이다.
이제 더 이상 기댈 곳이 없게 되어버린 우리는 개인으로 고립되었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자연현상, 세상 이치가 밝혀져도, 인간 삶의 대부분을
주도하는 것은 아직도 우연이다.
디지탈 기술에 의존하여 네트워크에 연결된 현재의 우리 삶은 가상의 삶이다.
환상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를 부정하는 모든 것을 내가 거부하므로서
불안한 현실을 회피하는 나는 더욱 고립되어 가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잃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