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칼바위 능선은 내가 자주 찾는 조망 좋은 곳이다. 오늘은 노적봉, 백운대가 미세먼지 속에 희미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해가 갈수록 이런 날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빛이 제대로 비추질 못하니 세상은 색이 죽어 생기 넘쳐야 할 봄이 그 기운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생명의 기운으로 활기 넘쳐야 봄날이 회색 빛으로 우울하다.
요즘 내 삶의 일상은 수행자의 수행 과정이라 할 만하다. 나를 수행하게 하는 스승은 아내다. 나의 수행 과정은 아내와 마주 앉아 ‘함께 식사하기’로 시작된다. 하루 세끼 함께 밥을 먹고, 같은 공간에서 ‘하루 종일 함께 있기’ 그리고 아내가 무슨 말을 하든 묵묵히 받아들이고, 스스로 성찰하며 수용하기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나도 소크라테스 같은 철학자가 되려나?
실제로 아내가 특별히 구박하거나 눈치를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함께 있는 것이 부담스럽고, 말 한마디 행동하나도 괜히 조심하게 된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아내와 함께 하는 식사는 사랑이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지금은 나를 긴장하게 하고 조심하게 한다. 옛날 에 상생相生하는 관계였다면, 지금은 상극相剋 관계다. 인간도 우주운행 이치에 의해 살아간다. 사계절과 밤낮의 리듬 속에서, 우리 삶도 우리 몸도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이치에 따라 살아간다. 밤과 낮으로 인해 우리는 수없이 살고 또 죽으며,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들 또한 끝없이 생성되고, 소멸된다.
세상만물은 어느 것 하나 저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상생상극 相生相剋해 주는 존재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木火土金水 의 상생相生의 이치로 生하게 하는 기운을 받아야 하고, 水火金木土의 상극相剋의 이치로 제어되어야 한다. 우리 같은 소인小人들의 삶에서 나를 상생상극하는 것이 가족이다. 가족은 나를 生하는 기운을 주기도 하고, 나를 극剋하기도 하여 통제 한다. 잘 산다는 것은 오행五行의 적절한 상생상극으로 균형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나를 生하고 극剋하는 기운이 약한것도 문제지만, 상생상극 기운이 너무 강한 것도 문제가 된다.
너무 과하게 生하고 극剋하지 못하면 오만해지고 삶이 방만해져 결국 그 존재는 파멸의 길로 가게 된다. 요즘 사회적으로 주요 이슈가 되는 지도자들의 삶이 그렇고, 성폭행-성희롱 문제, 과잉 보호로 자식들을 망치게 되는 경우도 그러한 이치다. 상생상극은 세상 만물의 존재의 메커니즘이다. 우주도, 사회도, 우리 몸도 어느 한 곳에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치유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그 체계가 서서히 붕괴된다. 대기오염이나, 수질오염 문제도 그러하고, 사소한 잘못된 습생濕生이 조금씩 내 몸을 파멸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