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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 한잔 들고가게!

인생

나는 가능하면 인적이 드문 이른 아침에 산을 찾는다. 코로나 이전보다 요즘 산을 찾는 사람들의 수가 훨씬 많아졌다. 예전에는 나이든 중장년이 주류였다면 지금은 이른 아침에 산을 오르는 청소년들도 제법 많다. 단풍이 절정인 수도권의 가을 산들은 만원이다.

 

이 날도 이른 아침에 산을 오른다. 이번 가을은 대체로 햇빛은 맑고 찬란하게 빛나고, 깨끗한 대기로 산능선에 오르면 온 세상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오로지 흑백의 농도만으로 그 모습을 아련하게 드러내는 도시도 신비하고 아름답다. 황금빛 햇살은 인간 사회와 온 천지에 축복을 내리는 듯하다.

 

산속은 고요하고 평화로운 세계라면 도시는 삶의 고뇌를 겪어야 하는 현실의 세계다. 산속에서 생각하면 인간 만사가 대부분 그냥 웃어넘길 별것 아닌 가소로운 것들이다. 하지만 도심 속에 들어가면 세상 이치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핏대를 올리며 서로 알아들을 수도 없는 소리들로 떠들썩하다. 그래도 그것을 삶의 보람으로 알고 살아간다. 오랜 세월 동안 골수에 박힌 생각들은 수천수만 갈래로 뿌리를 내려 이것을 치며 저것이 솟고, 저것을 치면 이것이 솟는다. 그렇게 세상은 또 서서히 변하며 자리를 잡아간다.

 

가랑잎이 바스락 거리는 고요한 산길을 걸으면 황제 산행을 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며, 아늑함을 느낀다. 산은 푸른가 싶더니 푸른색이 점점 짙어져 어느새 가을 색으로 물들었다. 나의 세월은 점점 가속도가 붙는다. 눈 한번 깜박이면 하루가 가고, 잠깐 누었다 일어나면 일주일이 가고, 산을 한번 오르내리면 계절이 바뀌어 있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말하고 다른 사람이 듣는 것을 들으며, 그냥 살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시키는 것, 주어진 것만 하다가 이제 막상 자유를 얻어 내 삶을 살아가려니 막막하다. 인간의 삶이란 거기서 거기다. 대부분의 삶이 세월의 컨베이어 벨트위에서 정해진 과정을 따라 흘러가는 것이다. ‘나’는 물질과 그리고 타인들과의 관계의 덩어리다. 그렇게 '나'는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형성되어가고 또 어느 순간 '나'는 해체되어 가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아이의 인생이란 여섯 살이면 유치원을 가고 일곱 살이면 초등학교, 열세 살이면 고등학교를 가고 스무 살이 되면 대학생이 된다. 남자는 20대 중반이면 군대를 가고 20대 후반에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 키운다. 이러한 과정에서 성장하고 꿈을 키우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면서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이면 사회에서 은퇴하게 된다. 그 이후부터의 삶은 내가 해체되는 시기다. 지금 나는 해체되어가는 중이다.

 

은퇴 전까지는 각 시기별 과정을 무사히 치르는 것이 소명이라면 소명이다. 가정과 사회와 직장과의 관계 속에서 나는 그 무엇이 되어 주어진 역할을 수행한다. 은퇴 후에는 그러한 관계들과의 결속이 느슨해지면서 비로소 자유가 된다. ‘나’라는 존재가 갖는 구심력은 점점 약해지고, 나는 사회에서 점점 떨어져나가게 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게 된다.

 

경험하지 못한 세상에서 우리는 일상의 막연한 불안함을 느끼며 계속 무엇에, 사회에, 어떤 무리 속에 구속되기를 원한다. 인간은 삶의 환경에 얽매야 살아가는 속성을 가진 현실적 동물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던 것처럼 누군가 나에게 갑질을 해주기를 바라고, 나에게 무엇을 지시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더 이상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그것은 더 이상 내가 하려는 무엇이 없기 때문이다. 더 이상 나에 대한 기대가 없기 때문이다. 누구도 나에게 관심 갖지 않기 때문이며 어디에서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무언가를 찾아가는 그 순간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문제는 은퇴를 하고 나면 더 이상 무엇을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하루 종일 묵묵히 산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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