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체의 생존을 위한 영양분은 욕망이다. 욕망을 충족 시키기 위해 생명체는 행동한다.
그렇게 생명체는 존재한다. 욕망이 충족되면 만족하고 행복감을 느끼지만, 욕망이 충족되지
못하면 불평하고, 좌절하고, 불안해 한다.
이러한 감정들이 또 다른 행동을 하게 한다. 그래서 올바른 행동을 하기 위해서 어떤 상황에서
올바른 감정을 일으켜야 한다. 그리고 그 감정에 올바르게 대응해야 한다. 정리해 보면 인간은
욕망으로 존재하며, 욕망은 생존과 번식을 목적으로 하며, 감정을 일으켜 행동하게 한다.
감정을 일으키게 하는 본능적인 욕망의 동기가 되는 것은, 생존과 번식이다. 이것을 어찌할 수는
없다. 생존과 번식이 생명의 주요 목적이라는 것은 '육신의 존재가 최우선'이라는 것이다. 육신이
있어야 '내'가 있다. 그러나 본능적인 욕망만으로 감정을 일으키고, 행동하는 인간은 위험하고,
그 삶 또한 불행하며,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다.
치열하고 험한 생태계에서 생존하기에 인간의 몸은 너무 나약하다. 그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인간의 생존수단은 '지능'이며, 그러한 지능으로 이 세상의 만물을 지배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한 무기를 장착하게된 인간은, 이제 인간을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존재가 되었다.
이런 위험한 인간은, 감정을 통제하기보다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을 조절하여 올바른 감정을
일으키는 것이 우선이다. 올바른 감정을 일으켜 함께 살아가게 하는 학문이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인간이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인간의 정신적 틀이 되는 인성을 형성한다. 인성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것 뿐만 아니라, 인간이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한 인간의 자질, 그 모든
것이다.
인간의 이러한 성질은 교육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성은 일상의 삶의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다. 인성은 어떠한 환경에서,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기반이다.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삶이 나의 생존에 정말 도움이 되는 생존방식인가? 물론
아니다. 그것만으로는 아니다. 어떠한 삶의 태도도 이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내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해 나름대로의 생각과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 생존과 번식외 삶에서 내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의 모든 고통은 몸이 존재하기 때문이고, 또 '나'는 그 몸으로 인해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의 삶의 고통은 어찌할 수 없다. 인간의 삶을 위해 중요한 그 모든 것들은 나를 존재하게
하지만, 그로 인해 나는 어떤 욕망을 하게 되고 또한 고통스럽다.
그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세상의 현상에 대한, 이치에 대한 깨달음이 필요하고, 그래서
그 괴로움을 이해해야 받아들이고, 흘려보내며, 또 다른 괴로움을 짓지 않으며 더 이상
확대하지 않는다.
감각적 인식에 대해 스스로가 분노하고, 좌절하고, 미워하며, 괴로움을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 또한 없다. 이것이 삶의
이치다. 싯다르타는 이런 이치를 '연기緣起'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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