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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니콜로 마키아벨리, 강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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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2) 마키아벨리는 특히 코시모의 사례를 통해서, 다양한 권력이 상호각축 하는 과정에서 올바른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언급한다. 공화제 전통이 강한 피렌체를 장악하게 된 코시모 데 메디치 이후의 가문은 형식적인 공화제를 유지하면서, 시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축제와 향연을 자주 베풀었다. 사치와 오락이 만연하는 분위기속에서 시민들은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현실에 안주하고, 나태한 삶을 누리려고 했다. 이러한 피렌체의 타락상을 비판한 사제가 사보니롤라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말뿐인 예언자와 무기를 든 예언자의 대비를 통해서 종교와 정치의 논리가 엄연히 다름을 암시하고 있다. 외교와 군사부문에서 일했던 마키아벨리는 능력을 인정받게 되어, 공화정의 주요 업무를 맡게 되었다. 정의의 기수로 선임된 소데리..
마키아벨리(1)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1498년 29세 나이에 피렌체 공화정에 참여하여 외교업무를 담당했다. 1513년 메디치 정부 음모론에 연루되어 투옥되었으나, 메디치 가문의 추기경이 교황 레오10세로 즉위 하자 특사로 석방된다. 마키아벨리는 메디치정부의 공직에 참여하기 위해 계획을 짜고, 그 계획의 일환으로 군주론을 1513년말경에 집필하였으나 그의 기대는 실현되지 않는다. 정치사상사적 차원에서 볼 때 마키아벨리는 정치권력과 정치사상가의 관계에 관해서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정치사상가는 끊임없이 정치권력의 행사에 개입하거나 관여하고자하며 때로는 정치권력의 성격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헝시키고자 한다. 세계를 변혁시키고자 하는 충동은 정치철학의 창시자인 플라톤의 행적에서부터 이미 태동하고 있었다. 플라톤이 서구 최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