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차나 한잔 들고가게!

'항룡유회亢龍有悔'

지리산 천황봉. 2011년 지리산 종주를 하면서 찍은 것입니다. 올해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불과 6년 정도 지났는데 요즘은 지리산 종주를 하겠다는 생각을 못합니다. 그때만 해도 전국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누구에게나 한창 때가 있지요. 육심이 넘어서면서부터 본의 아니게 나이먹은 대우를 받게 되었습니다. 어쩌다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면 티내지

않으려 더 적극적으로 뭔가 도움이 되려할수록 왕따가 되는 기분입니다. '아버님, 어르신' 하면서 공손恭遜하게 대하지만,

공경恭敬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진 것도 내세울 것도 대우 받을 것도 없는 삶이 남의 눈치 볼 것도 없고, 오히려 자유롭게 행동하며 나름대로 삶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내가 지금 사회적 지위라도 있고, 대우 받는다면 감당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요즘 자주 주역周易의 '항룡유회亢龍有悔'라는 괘사를 떠올리게 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한 때가 있었지요. 그때는 모두 용龍이었습니다. 젊다는 것만으로도 용龍이었습니다. 무엇인가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용龍이었습니다. 이제 그러한 시기를 넘어서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다시 뒤로 되돌아 갈 수도 없습니다. 집안에서도 시회적으로도 아버님, 어르신이기는 하지만 실권은 없습니다. 특히 남자가 그렇습니다. 누구나 겪게 되는 시기입니다. 항룡亢龍입니다. 은퇴한 정치인도, 기업인도, 할아버지도 모두 항룡입니다. 공자는 '항룡유회亢龍有悔'를 이렇게 해석합니다.

 

'귀한 자리에 있지만 앉을 자리도 없고, 지위가 높지만 진정으로 따르는 자가 없으며, 어진 자가 곁에 있어도 도움이 안되니 하는 일마다 후회가 있다.' 子曰 貴而無位 高而無民 賢人在下位而無輔 是以 動而有悔也 (귀이무위 고이무민 현인재하위이무보 시이 동이유회야)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앉을 자리가 없고, 진심으로 따르는 자도 없고 곁에 있는 어진 자도 마저도 아첨꾼이 되니 무엇을 제대로 행하기 어렵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이것이 자연의이치니 서러워 할 일도, 아쉬울 것도 없습니다. 나이들어 어설프게 재주를 부리려 하는 것은 오히려 몸과 마음을 시달리게 할 뿐, 아무 것도 얻는 것도 없이 일생을 그르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무능함을 자각하고 일체 욕구 에서 벗어나 배를 채우는 것으로 만족하고, 마음편한 삶을 즐기는 것이 올바른 노년의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난 한 해를 되돌아 보며 노년 공부의 궁극적 목적 중 하나가 진정으로 자신의 무지無知와 무능無能을 깨닫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차나 한잔 들고가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간과 자연  (0) 2021.05.18
기다림  (0) 2021.05.18
새해  (0) 2021.05.14
올바른 삶의 태도  (0) 2021.05.14
어떻게 살 것인가?  (0) 2021.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