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 생일을 앞두고 생일 선물을 사려고 오랜만에 책방을 찾았다. 가을이면 누구나 시집을 찾는다. 손자 선물도 아름다운 꽃그림과 아이의 환하게 웃는 얼굴과 함께 아름다움 말들이 가득한 동시집을 샀다. 그 아름다운 말들을 손자가 배우길 기대하며..
아름다운 가을 풍경에 끌려 탄천을 걸어서 집으로 간다. 파란 하늘에 솜털 같은 뭉게구름이 떠있고, 가을 햇살에 눈이 부신다. 어릴 때 시골초가집 마루에서 바라보던 풍경이다. 가을풍경의 풍요로움과 함께 내 마음도 넉넉해진다. 이해인 수녀의 시를 나는 좋아한다. 특히 가을에 읽으면 좋은 시들이 많다.
가을엔 이렇게 살게 하소서 / 이해인
이 가을에는
따뜻한 눈물을 배우게 하소서
내 욕심으로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소리 없이 함께 울어줄 수 있는
맑고 따뜻한 눈물을 배우게 하소서
이 가을에는
빈 가슴을 소유하게 하소서
집착과 구속이라는 돌덩이로
우리들 여린 가슴을 짓눌러
별처럼 많은 시간들을 힘들어 하며
고통과 번민 속에 지내지 않도록
빈 가슴을 소유하게 하소서
이 가을에는
풋풋한 그리움 하나 품게 하소서
우리들 매 순간 살아감이
때로는 지치고 힘들어
누군가의 어깨가 절실히 필요할 때
보이지 않는 따스함으로 다가와
어깨를 감싸 안아 줄 수 있는
풋풋한 그리움 하나 품게 하소서
이 가을에는
말 없는 사랑을 하게 하소서
사랑이라는 말이 범람하지 않아도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간절한 사랑을 알아주고 보듬어 주며
부족함 조차도 메꾸어 줄 수 있는 겸손하고도
말없는 사랑을 하게 하소서
이 가을에는
정녕 넉넉하게 비워지고
따뜻해지는 작은 가슴 하나 가득
환한 미소로
이름 없는 사랑이 되어서라도
그대를 사랑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