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려 오랜만에 카메라를 들고 탄천을 걷습니다. 코로나 탓인지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 탄천을 따라 걷는 인간 모두가 외로워 보입니다.
‘나’는 인간이 되기 위한 재료, 통나무樸로 태어나 무엇으로 만들어져 이름을 얻은 어떤 물질이다. 하지만 인간은 풀, 꽃, 나무처럼 자연의 구성물은 아니며, 자연의 이치에 따라 스스로 그러하게 살아가지 못 하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지는 인공물이다. 인간은 자연의 변화에 따라 살아가는 생명체가 아니라 자연에 저항하며 인간사회의 변화에 따라 적응해가는 유기체다. 산업사회에서. 도시에서. 자유시장체제에서 살아가는 우리 각자 모습은 인간사회의 어떤 상품이 된다.
나는 지금 어떤 물질, 어떤 상품이 되어 있을까? 어떤 인격을 가지고 있을까? 이러한 인간사회체제에서 사회가 구성되고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핵심적 요소는 ‘돈’이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가 아닌 그런 사회의 구성원인 어떤 상품이고, 물질이고, 돈은 그 사회를 유지하는 힘이고 아교glue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을 유지하게 하는 것도 돈이다. 인간은 관계로 살아간다. 관계는 가족이나 친구처럼 정서적 관계가 있고, 무엇을 주고받으면서 맺어지는 이해관계가 있다. 관계는 우리 삶의 황금률 마태복음 제7장 제12절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의 가르침, 무엇을 주고받을 때 만들어진다. 농경시대에는 서로 쌀과 옷감 등으로 또는 서로가 필요한 물질을 주고받고, 서로의 노동을 주고받으면서 관계가 형성되었다. 모든 것을 갖추고 있어 누구와 주고받을 것이 필요 없거나, 가진 게 없어 누구와 주고받을 것이 없으면 관계가 형성될 수 없다.
예전에는 누구든지 누구와도 주고받을 수 있는 능력이나 물질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관계 맺기가 용이하지 않았고, 관계를 맺는 범위가 지금보다 광범위하지 못했다. 현재 삶의 환경 근간을 이루고 있는 산업화, 도시화, 자유시장경제체제에서는 돈으로 관계 맺기가 쉬워졌다. 돈은 모든 인간이 필요로 하는 인간사회의 피血이며 영양분이다. 돈만 있다면 누구와도 쉽게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인간이 농경사회를 거쳐 지금까지 문화적으로 보다 진일보進一步된 현대사회에서 인간을 조종하는 큰 힘이 있다면 그것은 ‘돈’이다. 상대가 만든 상품이나 상대의 능력은 나에게 필요 없지만, 상대가 돈만 있다면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돈만 있다면 안팎. 아래위. 전후좌우 가리지 않고 적절하게 돈으로 얽어매어 두면 필요할 때 삶의 큰 힘이 된다. 현대사회에서 관계 맺기는 훨씬 광범위해졌고 쉬워졌고 자유로워졌다. 돈만 있다면... 하지만 그만큼 관계는 느슨하다.
서로에게 필요한 노동과 물질에 의해 맺어진 관계는 인격으로 맺어진 안정된 관계이다. 그러한 관계는 돈독하고 안정되어 있다. 돈으로 맺어진 관계는 불안하다. 언제든 깨어질 수 있는 관계다. 정서적 관계인 가족관계나 친구관계는 어떤 상황에서도 아무런 계산 없이 서로에게 든든한 정신적 지원군이다. 정서적 관계는 삶이 힘든 상황에서도 나를 지탱하게 하는 자존감이 된다. 이제는 정서적 관계도 점점 이해관계로 변해가고 있다. 가족 관계도 이해관계가 앞선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도 내 삶의 이해관계에 따른 결과로 낳지 않는 것이 더 이익이라는 계산에서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 아이가 자라서 성인이 되고 부모가 나이들어 노인이 되었을 때 더 이상 존재가치는 없으며 유지관리 비용만 드는 물질이 된다. 급변하는 현재의 삶의 환경에서 노인의 지혜는 더 이상 다음 세대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수명은 길어지고 부양해야 할 기간이 길어지면서 부모에게 물질적으로 별로 도움 받을 것이 없다면, 부모에게 소홀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자신이 하는 업業, 일의 본질에 대한 가치로써의 자존감을 갖지 못하고 그 의미를 찾지 못한다. 그 일의 가치를 위해 .일하지도 않는다. 돈을 위해서 일한다. 돈을 벌수만 있다면 모든 것은 인정 된다. 삶의 목적보다 수단이 우선시 되면서 목적은 아득히 멀어져 잊어버렸다. 나에게 주어진 어떤 권한, 사회적 지위, 나의 재능, 나의 이름을 걸고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
인간사회의 모든 분야가 돈으로 돌아가고 인간사회를 조종하는 힘이 돈인 사회에서 평등, 정의, 인간의 품격에 호소하고 자연의 이치를 이야기하고 인간의 情을 이야기하고 예수의 사랑, 부처의 자비, 공자의 仁, 노자의 道德을 이야기한들 들을 수 있을까? 그러한 것을 외치는 인간 역시 그로인해 돈을 벌기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만 든다. 사회 각계, 각층에서 우아하고 고상한 인간들이 보여주는, 돈을 위해서 염치불구하고 민낯을 드러내놓은 현상을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인간사회의 불신은 인간 내부에 쌓여만 간다.
있는 사람은 있는 사람대로,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관계가 불안하기만 하다. 있는 사람들은 인격적으로 친밀한 정서적 관계를 맺지 못하니 불안하고, 없는 사람은 자신의 물질적 가치가 없으니 관계를 맺기가 어렵다. 이것이 모든 현대인이 소외되는 이유고, 현대인의 정신적 질병이 증가하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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