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꿈꿀 권리(박영숙 지음)

꿈의 크기를 누가 정할 수 있을까?

나는 도서관에서 나이나 학력으로 가르지 않고, 장애나 계층도 상관없이 서로에게 배우고 함께 어울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세상의 많은 부모들이 세상 모든 일을 꿈꾸어도 좋을 나이의 자식을 보며 그 일도 할 수 없을까봐 걱정하고,  다른 일은 엄두도 낼 수 없을거라고 여기는 부모의 두려움이 절망스러웠다.  이 세상 누구에게 한 사람의 꿈의 크기를 결정할 권리가 있을까?  밤을 세워 토론하며, 도시빈민 철거문제, 아동심리, 교육학, 역사와 경제학을 공부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런 마음에 무력감도 들고 자괴감도 들었다. 이 세상에 절반만 사람인 사람은 없다는 진실과 절반쯤만 사람 취급을 받는 사람이 많다는 현실도 알게 되었다. 

 

장애인 처지에 사회적인 관계와 세상과의 소통, 도전 따위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순하게 접어버린다. 그들의 생존을 먼저 걱정하고 배려하느라 그 사람의 감정, 욕구, 생각, 개성같은 것은 미처 보지 못하는 것이다.  사회 규범에 의해 혹은 가진 것에 따라 우리에겐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분류표의 이름이 주어진다.  그 이름표가 너무 커져서 본래 그 사람의 이름은 미처 보이지 않도록 가려지곤 한다. 돈이 없거나 ,학력이 낮거나, 심지어 부모가 없다는 이유로 어떤 대상을 절반 쯤만 사람으로 여기는 예는 흔히 볼 수 있다.  그렇게 분류표처럼 주어진 이름들은 생존의 문제와 연관된다.  생존은 중요하고 절실하지만 나머지 절반의 삶도 포기하거나 무시될 수 없다. 자존감, 자긍심, 세상과 소통하면서 쌓아가는 고유한 정체성은 같은 이름표를 달고 있는 역할도 다른 빛깔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누구든 생존의 문제에만 매이지 않고 행복한지, 가슴을 뛰게 하는 뭔가가 있는지가 중요하고 그것을 위해 기꺼이 공을 들일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살아가면서 환경에 의해 주어지고 제한되는 삶의 틀에 갇히지 않고 누구든 넓은 세상을 만나고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사랑방처럼 편안하고,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고, 사방을 책으로 채웠다. 그러다 보니 도서관이 되었다. 도서관 이름 앞에 붙여진  '공공'이라는 수식어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만 있고, 또 장소나 서비스가 흔히 그런 것처럼 공들여 관리하고 섬세하게 배려하진 않지만, 돈이 들지 않기 때문에 이용하게 되는 곳,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에 시장에 맡길 수 없는 일쯤으로 여기고 있다. 개인과 사회의 자유, 번영, 그리고 발전은 인간의 기본적 가치다. 이러한 것들은 정보를 갖춘 시민들이 민주적 권리를 행사하고,  사회 안에서 능동적 역할을 수행하는 능력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 민주주의 발전은 지식, 사상, 문화 그리고 정보에 대한 자유롭고 무제한적인 접근뿐만 아니라, 만족스러운 교육에 달려있다..... 공공도서관은 이용자가 모든 종류의 지식과 정보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지역의 정보센타다. 공공도서관 서비스는 모든 사람을 위한 균등한 접근 원칙에 입각하여 제공된다. ( UNESCO 공공도서관 선언에서)

 

사회구조를 유지하면서 시스템이 작동하는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구성원들을 구별하는 잣대는 끊임없이 발전시켜 왔다.  잠재력을 키우는게 교육의 목표라고 하면서도 서로 다른 아이들을 존중하는 법은 많은 아이들을 만나는 교사들 조차 배울 기회가 없다. 해야 할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가려내야할 때 포기하거나 유예하거나 혹은 강행하는 선택을 할 때도 기준은 언제나 공공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