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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꿀 권리(박영숙 지음)

함께 흔들리다

도서관에서 만나는 책과 자료는 경쟁에서 이기고 스펙을 쌓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가는 법을 함께 배울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다. 종종 삶이라는 숲에서 길을 잃었을 때 이나 바람이나 물의 흐름처럼 길을 찾아갈 실마리였고,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만났을 때 충분히 도움닫기를 하는데 필요한 구름판 같은 것이었다. 종종 갑작스런 갈림길을 만나거나 막다른 길에 서게 되는 것이 인생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과 함께 어딘가 숨겨져 있을 지도를 찾는 것이 도서관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어디 있더라도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라고, 그저 그곳의 시간이 있는 것이고 또 다른 시간을 준비하고 맞이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자꾸 정처없이 떠돌게 되는 건, 마치 불랙홀처럼 또래 네트워크에서 당기는 힘이 그 바깥에서 발을 딛고 설 수 있도록 지탱해 주는 힘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은 스펙을 위하여 지원활동을 한다. 그런 비자발적 자원활동을 하는 아이들에게 빛이 날 리 없다. 안 그래도 세상 속에서 세상을 배우는 게 아니라, 세상과 격리된 교실에서  세상에 대해서 배우는 현실인데, 이제 교실 밖에서조차 살아가는 법이 아니라 -하는 척, 혹은 맛보기 체험하는 법만 가르친다. 비자발적으로 이어가는 활동에서 세상을 배우는 결과를 기대하는 건 욕심이다. 학교를 떠난 아이들에 대해 정말 두려워해야 할 일은 '아이들이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아이들이 텅빈 눈동자를 마주할 때마다 두렵고 걱정스러웠다.  모든 게 과제로 주어지고, 점수로만 평가 되는 학교를 떠난 뒤 과연 제 으로 뭘 할 수 있을까?

 

책에는 자신이 이야기를 먼저 꺼내기 어려울만큼 거리가 생겼을 때,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읽고 나서 함께 흥분하고,  수다 떨고,  때론 감동을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이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셀 수 없이 많이 담겨있다.  부모는 책임이 무거우면서도. 아이들 편에서 보면  부모는 언제나 잔소리꾼 신세고 자녀는 부담이 크면서도 늘 철부지 응석받이 취급을 당한다. 부모에겐 부모 몫이 자녀에겐 자녀 몫이 있고, 그저 그걸 해 나가는게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 몫이 지나치게 부풀려지면, 서로에게서 각자 자신이 필요하고 원하는 역할을 찾는 데만 매달리느라 정작 상대의 모습을 제대로 보고 알 기회를 잃어버리고 만다. 같은 공간이 있을뿐 서로 만나지 못한 채 세월을 보낸다.

 

서두르지 말 것,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으려면 너무 큰 기대도 갖지말 것, 특히 우리가 서두르지 말아야 할 것은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실패라고 단정하는 일이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르치고, 실패하면서 배우고 자란다. 변화는 천천히 일어날 것 같은 데, 우리가 경험한 건 대체로 어느날 갑자기 였다. 어쨌든 분명한 건 늘 그렇게 시간의 힘에 기댈만 하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된 어느 날, 문득 이 장면이 떠오르지 않을까?  함께 책을 읽던 장면.  함께 읽은 그림책의 제목이나 서로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서점이든 도서관이든 어디서나 책꽂이에 책이 꽂힌 풍경을 만나면 가슴이 뛰지 않을까?  주입식 교육과 획일적인 평가에 길들여졌다해도  경쟁으로 치닫는 선로에서 내릴 방법을 찾지 못한다해도, 절망하고 포기할 수 없는 것, 아무도 주변에 없을 때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무장한 채 가슴뛰는 순간을 차단당한 이들이 다시 그 순간을 회복하도록 응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