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요법이 효과가 없거나 심각한 부작용이 생기고,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폐색전, 뒤이은 장폐색 등은 현대인이
삶의 종말에 가까워졌을 때의 모습이다. 점점 더 큰 위기가 몰아닥치는데 의학은 아주 짧은 임시방편밖에
제시하지 못한다. 그때 ODTAA 증후군이라고 이름붙인 상태에 이른다. ODTAA는 나쁜일이 계속 몰아닥친다는
의미의 ‘One Damn Thing After Another'를 줄인 말이다. 이 상태에 이르면 예측할 패턴이 없다.
하지만 일정 시점이 지나면, 그 여정이 어디로 향하게 될지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유한하다는걸 이해한다는게 축복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삶이 언제라도 깨질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부터는 삶에 대한 초점이 좁아지고, 욕구에도 변화가 생겼다.
아버지는 수술에 관해서 얻는것보다 잃는게 더 많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떨치지 못했다. 아버지는 자기에게서
멀어져 가는 정체성에 매달리는 대신 새로운 정체성을 찾기로 했다. 아버지는 자신이 그어 둔 삶의
한계선을 다른 자리로 옮겼다. 바로 이것이 자율성을 갖는다는 것의 의미다. 삶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제어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스스로 써내려가는 건, 그 상황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제어할 힘을 갖고 있다는걸 의미한다. 아버지는 종양으로 제거했고, 척추 뒤쪽을 목위에서 아래까지 열어둔
상태에서 종양이 자랄 공간을 확보해 두었다. 아버지는 다음날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그로부터 이틀후 병원에서
나와 재활치료시설에서 3주를 보냈다.
더운 여름날 여느 때보다 건강한 느낌으로 집에 돌아왔다. 걸을 수도 있었고, 목의 통증도 없었다. 통증을 없앤
것만으로도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아버지는 각 단계마다 옳은 선택을 했다. 즉각 수술하지 않은 것, 병원 일을
그만 둔 후에도 수술받지 않고 기다린 것, 걷는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일상생활을 영위할 능력을 잃을 위협에
처한 다음에야 수술 위험을 감수하기로 결정한 것 등 모두 잘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선택은 한번으로 끝나는게
아니다. 삶 자체 끊임없이 밀어닥치는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을 하나하고 돌아서자마자 또 다른 선택을
해야 할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아버지는 회복해서 여행할 계획도 세웠다. 아버지의 우선순위는 명확했고, 다시 치료를 할 경우 그것들을 희생
하게 될까봐 걱정했다. 아버지는 다시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약한 구역질이 생겼고, 뭔가 삼킬 때 목이 타는듯한
통증도 느꺘다. 약을 먹으면 증상은 견딜만 했지만 피로감과 변비가 생겼다. 치료를 받은지 몇주가 지나면서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나아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왼손에 국한되었던 통증이 팔꿈치위로 퍼졌고
다리 무감각증상도 무릎까지 올라왔다. 치료 6개월 후 MRI 검사결과로는 종양이 줄어들기는 커녕 뇌까지 미치고
있었다.
의사는 다른 화학요법으로 치료하기를 권장했다. 치료후에는 종양이 더 이상 자라지 않을 확률이 약 30%라고 했다.
잘되면 다시 테니스를 칠수도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것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미끼를 잡지
않았다. 의사들이 제시하는 너무 많은 선택지가 있고, 그에 따른 위험이나 효과가 너무 많아서 가능한 모든
경로를 검토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따라서 아버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버지가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삶을 유지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지를 논의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나는 암주치의 마르쿠 박사가 자신의 환자들에 대해 했던 말이 생각났다. ‘ 나는 1-2년 정도 그럭저럭 잘 지내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죠. 환자들은 10-20년을 생각하고 와요’ 의사는 부작용이 덜하면서 일시적으로 종양이
자라는 것을 억제하는 스테로이드제를 처방해줬다. 아버지는 남아있는 능력으로 가능한 한 최선의 삶을 영위하는
것과 불확실한 미래의 가능성을 위해 남은 삶의 질을 희생하는 것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기존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은 결정이 쉬웠다는 것이다. 누구나 가능한 한 가장 공격적인 치료법을 선택했다.
사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자동모드로 결정되는 것이었다. 모든 선택지들을 고려하는 것, 다시말해 우선
순위를 정하고, 이를 위해 의사와 함께 적절한 치료법을 선택하는 것은 지치고 복잡한 일이었다. 특히 미지수와
모호한 요소들을 분석하는 것을 도와줄 전문의가 없을 때 더욱 그렇다.
그러다 보니 늘 한방향으로 압박이 가해진다. 뭔가를 더 많이 하는 방향으로 . 왜냐하면 의사들은 할 수
있는만큼 노력을 다하지 않는 실수를 범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 하기 때문이다. 노력을 너무 적게 하는
것만큼이나 너무 많이 하는 것도 한 사람의 삶을 파괴할 수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아버지는 스테로이드 부작용마저도 참기가 힘든 지경이 되었다. 식은 땀, 불안감, 사고력 감퇴, 감정 기복등
부작용이 심한데 반해 긍정적인 효과는 별로 없었다. 간호사의 도움, 병원식 침대, 욕창방지를위한 공기주입식
매트리스, 근육경직 방지를 위한 물리치료 등이 필요했다. 요양원은 어떠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기겁을 했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수많은 환자들과 마주친 그 갈림길에 우리도 와 있었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호스피스케어를 고려할 용의가 있었다.
애팔래치안 커뮤니티 호스피스 소속 간호사가 집으로 방문했다. 그녀는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그리고 현재 어떤
상태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분명히 밝혔다. 아버지는 구역질, 통증, 피곤함이 문제라고 했다. 호스피스는
그런 증상을 완화시키는 치료에 중점을 둔다고 그녀가 말했다. 정기적인 방문과 전화를 통한 24시간 긴급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가정 간병인에게 일주일에 14시간씩 목욕, 옷입기, 집 청소를 비롯한 의료 외적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사회복지사와 영양상담사 도움을 받을수 있고, 필요한 의료기구도 공급받을 수 있다.
간호사는 핵심 사안으로 들어갔다. 소생술포기 서류를 가지고 있는지, 24시간 옆에서 도움을 줄 사람이 집에
있는지, 장례식장은 생각해두신 데가 있는지 등에 대해서 세세히 물었다. 그리고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돌아가시면 911이나, 경찰에게 전화하지 마시고, 저희한테 연락하셔야 합니다. 간호사가 도와드릴꺼예요.
남은 약물폐기, 사망증명서 발급, 시신수습, 정례절차 돕는 일까지 모두 다요’. 그녀는 아버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았다. 아버지는 가능한 한 오래 체력을 유지하고 싶다고 했다. 컴퓨터자판을 두드리고,
통화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통증없이 살 수 있기를 원했다. 간혹사와 간병인은 방문시간표를 짰다. 우선 아버지가 진통제 용량을
조절하며 되는대로 먹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꾸준히 일정향을 복용하면서 약에 대한 반응을 기록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 호스피스팀이 약의 효과를 파악해서 통증과 피로감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이상적인
조합과 용량을 찾는데 도움이 될거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혼자 다니면 큰일난다'고 말했다. '고관절을 다치면
정말 큰일'이라고 했다.
넘어지지 않고 하루하루 넘길 때마다 목과 허리에 찾아오던 경련이 줄었고, 통증을 조절하기도 더 쉬워졌으며
체력이 좋아지는걸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대신 오늘을 최선의 상태로
살기로 한 결정의 열매를 눈으로 확인했다. 아버지는 보행 보조기를 이용해 어느 정도 다닐 수 있었고,
손놀림과 팔의 힘도 좋아져서 전화를 하거나 노트북 컴퓨터를 사용하는 데 어려움을 덜 느꼈다. 끔찍한 종양이
아버지에게 허락한 그 좁은 틈에서나마 살아낼 여지를 다시 찾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