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정신을 펀안하게 유지시켜 주는 힘은 자기 확신이다. 자기 주체성이 확실해야 사람은 추진력을 가질 수 있다.
세상만사가 다 선택인데 선택의 주체가 애매해지면 혼란에 빠진다. 자기회의에 빠지면 어떤 선택도, 결정도 내릴 수
없게 된다. 자신감도 없어지고 무력감에 빠진다. 만사가 귀찮아지고 사람들이 두려워진다. 이는 정신적 위기다.
그 사람 말을 충분히 들어주고 자기를 표현할 기회를 충분히 주라. 스스로 마음을 정리하고 이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경청과 대화의 힘은 놀라운 것이다. 강력한 치유력을 갖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 자기 분석을 하며, 의식의 뒤쪽에 있는 무의식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무의식의
문 앞에서 도망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안의 갈등을 해결하고, 진정한 평안을 찾기 위해선 무의식의 탐구를 계속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마음과 행동을 지배하는 것의 대부분이 무의식이기 때문이다.
자기를 빼고 대화에만 열중 할 수 있다는 것은 자유로워 졌다는 것이다. 상대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비난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다. 사람은 인정해 달라고 애걸하는 심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버림받은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대화 중에 자기를 뺄 수 있다.
우리는 감옥에 갇혀 있다. 박수감옥,인정 감옥,비난 감옥에 갇혀 산다.
심리적 감옥은 허상이기 때문에 발견하고 걸어 나오면 된다. 그러면 인정 받지 못할 까봐 초조할 필요가 없고,
비난 받을 까봐 걱정할 필요도, 버림 받을까 봐 걱정할 필요도 없다. 남의 평가 즉 내면의 평가에 의지해 사는 인생에서
자기 판단으로 사는 인생으로 변해야한다.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심리적 현실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감옥생활을 계속한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다. 이는 옛 선인의 지혜가 돋보이는 속담이자 아주 정신분석적인 속담이다.
세 살 때 형성된 인격이 여든까지 간다는 것은 정신분석학에서 이미 증명되었다. 평생을 마음속의 아이 감정에 지배당하며 살다
죽는 사람도 허다하다.
유년기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사람은 인격의 일부분이 미숙한 채로 남아 있다. 철들지 못한 채 성인이 되는 것이다.
철들지 못한 성인은 자신도 고통 받지만 주변 사람들도 괴롭힌다.
우리 주위에 이런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우리 자신도 자세히 보면 어느 구석에 이렇게 철들지 못한 마음속의 아이가
숨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 안에는 과거의 경험이 만들어 놓은 모순된 감정들과 유아적인 감정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이해 할 수 없는
분노와 열등감 같은 유치한 감정들이다. 이런 감정들은 격렬하고 통제하기 어렵다. 무의식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이해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엄연한 현실이다.
실제 현실이 아닌 타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적 현실일 뿐이지만, 대인관계나 정신세계에 구체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아이처럼 화나고 아이처럼 서럽다. 아이가 엄마의 눈치를 살피듯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초조해 한다.
심리적 현실에서 사는 존재는 이미 어른이 된 내가 아니라 마음속의 아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우울, 초조나 열등감은
이 아이의 감정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마음속의 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