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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심리학 (배르벨 바르데츠키

나는 대체 누구인가?

구두적 우월감은 심각한 결핍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어린시절 충분한 수용과 애정을 받지 못하고 결핍과 방치만 경험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잃어버린 것에 대한 보상심리가 잠재되어 있다. 이들은 대개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서 원하는 모든 것을 그저 얻으려 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이들도 많다. 자신의 욕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거나 충족시키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이러한 구두적 욕구는 충족시킬 길이 없다. 그 욕구는 거짓 자아개념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남들의 관심을 끌어도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거짓자아에게 물을 주는 형국이기 때문에 만족할 수 없다. 다른 이들로부터 얻는 물리적, 감정적 양분을 받아들일 토양이 없다는 것이다.

 

아기들이 생후 최초 몇개월 동안 충분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 결핍감과 상실감이 유발된다. 현실은 구름 위를 떠다니는 것처럼 멋진 일들로만 가득하지는 않다. 언젠가는 실망도 맛보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에 대해 실망 정도가 심각한 것이 문제다. 반복적인 열광과 실망은 우울증이나 기타 질병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한번 실망하면서 누구도 내가 뭘 느끼는지, 뭘 바라는지, 알아주지 않는다는 확신을 굳힌다. 이로 인해 내면의 공허감과 갈망은 점점 더 커져만 가고 다음 파트너에 대한 기대는 더더욱 높아만 진다. 그러면서 악순환은 계속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 자기감정과 욕구를 분명하게 받아들이고, 전달해야 비로소 그 고리를 끊을수 있다. 남자가 여자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때도 있다. 그렇다고 자신의 부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상대방이 어디까지 수용할 있고 어디서부터는 수용할 수 없는지 깨닫고, 수용하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상대방이 자신의 욕구를 말하지 않아도 눈치채고 알아서 충족시켜주기를 바란다는 데 있다. 모든 일을 알아서 다해주는 남자를 찾지 못할 경우, 자신이 직접 나서서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누군가에게 뭔가를 부탁하는걸 죽기보다 싫어한다. 이들은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게 필요한 걸 알아서 해주는 사람을 찾을 수 있다'는 환상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코후트는 실망에 대처하는 방식을 익힘으로써 아이는 자아구조와 자아개념을 형성할 수 있다고 기술했다. 아이와 분리기간이 너무 길어서는 안된다. 분리기간이 너무 길어지면, 보호자가 다시 올거라는 믿음이 생성될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호자가 곁을 잠시 떠났다 하더라도 이내 돌아오는 것을 여러번 보고 안심한다면, 그 다음부터는 의존적 태도를 버리고 자립심을 키울 수 있다.

 

우월감이 무너지면 열등감과 우울증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열 사람중 아홉이 칭찬하고, 단 한 사람이 부정적 비판을 했다 하더라도 부정적 비판에만 집착할 뿐 나머지, 아홉명의 칭찬은 까마득히 잊어버린다. 자존감이 약한 여성들은 남들로부터 거부당할까봐 두려워 한다. 먼저 자기가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점은 생각하지 못한 채, 남들이 자기를 좋아해 주기만을 바라면서 남들이 원하는 모습에 자기를 맞춘다. 여성적 나르시시즘을 앓는 여성들은 자신의 한계와 욕구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의 욕구를 억누른채 남들이 자신의 욕구에 맞게 행동해주기를 기다린다. 자기쪽에서 먼저 다가가는 법이 없다. 수치심 뒤에는 다른 사람으로 인해 상처받을까봐 남들이 자기속을 훤히 꿰뚫을까봐 두려워 하는 마음이 숨어 있다. 나르시시즘을 앓는 여성들은 대개 남의 말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바깥 세상과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남들이 자신을 둘러싼 보호막 안으로 침투하려할 때, 이들은 숨거나 외면하는 것으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킨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이들은 진정한 자아를 체험하지 못하고, 거짓자아의 양극, 즉 우월감과 열등감 사이를 오가면서 스치듯이 자아를 체험할 따름이다.

 

깊은 고독감을 느낀다는 것은 독립된 인간으로 발전하는 과정에 있다. 원래 의존적 공생관계에서 벗어나는 순간, 고독감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해묵은 문제를 해결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심리구조를 구축하자면 오랜 시간이 걸릴수 밖에 없다. 원래 발전이나 변화에는 종지부라는 것이 없다. 자기자신과 자기 삶을 아끼면서 열심히 살아가다보면 늘 새로운 문제와 도전에 직면하게 되고, 이를 통해 한층 더 성숙해진다.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위기들은 보기에 따라 발전과 성숙의 기회이기도 하다. 도전을 무조건 거부하면 발전이 중단되어 버린다. 거짓자아로 인해 유발된 공포심을 해소하는 것 또한, 진정한 자아 체험의 일부이다. 거짓자아는 주로 버림받는 것과 파멸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유발시킨다. 진정한 자아를 체험하는 과정에서 깊은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다가 기분이 아주 좋은 상태에 빠지는 상태를 반복하는 환자들이 많다.  우월감의 관점에서 볼 때, 취식과 구토는 현재 직면한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다. 긴장감이나 실망, 갈등 등을 먹는 행위를 통해 해소하고, 이를 통해 자기자신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자기자신과 주변 세상을 속이는 것이다. 진정한 자아의 관점에서는 취식과 구토가 어떤 의미를 지닌까? 취식과 구토행위는 진정한 욕구나 감정, 고독감, 관심 그리고 휴식에 대한 갈망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불안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자기자신이나 타인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