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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한다는 것( 고병권)

철학은 친구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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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에게 가장 눈이 멀었다는 격언이 있다. 멀리 있는 남을 보기는 쉬워도 정작 자기 자신을 보는 것은 어렵다는 말이다. 우리는 자신을 지배하는 습관이나 통념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자유롭다, 철학을 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얻은 지혜를 혼자서 갖는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걸 안다. 오히려 그것을 함께 나눌 때 기쁨이 더 커진다는 것을 안다. 혼자 힘으로는 다른 생각, 다른 삶을 만들어 내기가 어렵다. 혼자서 나의 편견과 습관에서 벗어나는 것은 정말 힘든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모른다. 남의 잘못, 남의 문제는 빨리 알아차려도 정작 자기의 한계는 보지 못하는 게 우리들 아닌가? 나를 지켜볼 수도 있고 나에게 힘을 주는 친구가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좋은 친구를 구할 수 있을까? 자신이 누군가에게 그런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다. 좋은 친구란 마냥 친구 말에 맞장구를 쳐주고 무조건 친구를 껴안아 주는 게 아니다. 때로는 친구가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비판할 때도 있다. 어떤 때는 싸울 수도 있어야 한다. 서로를 생각하게 해주는 사람처럼 서로를 공부하게 만드는 사람, 서로를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자.

 

철학자는 무엇을 깨닫는 것일까? 훌륭한 철학자는 삶을 대하는 법이 다르다. 한마디로 그는 삶과 사귀는 법을 잘 안다. 자기 운명을 친구로 삼는 법을 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알기 어렵다. 사실 세상 일이 그렇게 미리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 일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중요하다.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어떤 일은 큰 일이 되기도 하고 사소한 일이 되기도 한다. 어떤 일은 우리에게 커다란 슬픔을 주기도 하지만, 우리가 다른 방식으로 대하면 오히려 기쁜 일이 되기도 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특히 자기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 애쓸 필요는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지만 지혜로운 태도도 아니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바로 그런 우연들을 사귀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자기운명과 친구가 되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세상일을 미리 알지 못해도 즐거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철학을 잘 사는 기술이라 했다. 잘 산다는 것은 행복하게 산다는 말이다. 철학은 삶을 가꾸는 기술, 행복하게 사는 기술이다. 그런데 행복한 삶을 위해서 철학이 제시한 기술은 생각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그것은 깨어있는 것이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것,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생각 없이 그저 관성대로 습관대로 살지 않는 것이다. 남들이 한다고 그냥 무턱대고 따라 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시켰다고 무조건 복종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책이나 신문에 나왔다고 무조건 믿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생각한다는 것은 습관, 통념, 편견 등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다. 새로운 생각을 낳을 때 우리는 생각한다는 말을 쓸 수 있다. 우리가 새로운 생각 새로운 삶을 낳을 때 우리는 예전처럼 살지 않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무언가를 배운 것이다.

 

공부는 쉬지 않아야 한다. 생각하기도 멈추지 않아야 한다. 공부도 놀이도 일상 체험도 다른 삶을 만들어 준다. 공부는 우리를 자유롭게 만든다. 자유란 공부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편견이나 습관, 벗어나는 순간에 우리는 자유를 느낀다. ‘나는 여기까지야라고 말하지 마라. 그런 한계에서 한 발 더 나아갈 때 자유가 시작된다. 그러고 보니 한계는 우리의 자유가 끝나는 곳이 아니라 시작되어야 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자기 한계를 넘기 위해 친구가 필요하다. 친구를 갖기 위해 먼저 친구가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여러분의 삶, 여러분의 운명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은 무지하다고 하며 상대방에게 가르침을 청하고 논리 허점을 파고들면서 결국 상대방이 무지함을 스스로 깨닫게 한다에피쿠로스는 헬레니즘 시대의 대표적인 철학자 중 한 사람이다. 쾌락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쾌락주의자라는 말은 그의 가르침을 크게 왜곡하는 것이다. 그는 헛된 욕심이나 근거 없는 공포에서 벗어나는 법을 알려주려고 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살아있는 한 죽지 않았고 죽으면 존재하지 않으니 죽음이란 아무것도 아니다.’ ‘빵과 물만으로도 신의 행복에 도전할 수 있다고 했다. 행복을 위해 많은 게 필요하지는 않다. 그는 기원전 307년경 학교를 만들었다. 그냥 학교가 아니라 정원이었다. 정원에는 철학자만이 아니라 그의 친구들 아이들 노예와 몸을 파는 여성들도 있었다. 그의 정원에서 공부를 함께하며 우정을 키우는 곳이었던 것 같다. 그는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즐겁게 살 권리가 있고 따라서 그 기술을 가르치는 철학을 할 자격이 있다고 보았다.

 

데카르트는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그는 확인 불가능한 주장들이 많았던 중세의 형이상학을 비판하면서 인간과 자연에 대한 검증 가능한 지식을 추구했다. 그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앎에 도달할 때까지 의심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도달한 확실한 앎으로 지식체계를 세우려 했다. 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가장 빨리 도달한 확실성이라며 철학의 제1원리로 내세웠다. 스피노자는 신과 종교, 윤리, 정치에 대한 대담한 견해를 펼쳐 보인 사람이다. 사람들이 전쟁공포와 민족주의 광풍에 빠져 자신들의 자유를 지켜준 자도 잔인하게 죽이고, 자유를 억압하는 세력을 지지하는 것을 보고 크게 슬퍼했다. 대중을 무시하거나 비판하지는 않았고, 왜 그런지 이해하려 했다. 사람들은 왜 노예가 되는 길을 자유나 해방의 길인 듯 앞장 서 달려갈까? 그는 삶을 위축 시키고 사람들에게 슬픔과 공포를 심어주는 사상과 체계가 사람들을 그렇게 만든다고 보았다.

 

신은 죽었다는 말로 유명한 철학자 니체의 책 중에 우상의 황혼이 있다. 우리가 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떠받드는 진리나 도덕, 우리에게 우상이 된 가치들을 그는 여지없이 내리친다. 각 진리나 도덕이 옳은가 그른가보다 어떤 주장이 진리로 받아들여지는지, 그런 진리는 그것을 말하는 사람에게 어떤 이로움과 해로움을 주었는지를 알아보려 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건강하고 좋은 판단을 낳은 토양은 어떤 것인지를 생각했다. 사람들이 옳다고 믿고 높이 떠받드는 생각들을 비판하기는 쉽지 않다. 니체는 서양 철학자중 가장 자유분방한 영혼의 소유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고대 그리스시대에는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은 비웃음을 받았다. 한나 아렌트는 자기이익을 넘어서 행동할 수 있는 정치능력을 가져야 비로소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정부나 교회, 기업의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들을 좋게 그리지 않았다. 대체로 이들은 거만하고 자기가 가진 힘을 남용한다. 실제로는 용기도 없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