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나 한잔 들고가게!
프레임
백파
2022. 5. 5. 10:12
봄이 오니 꽃피고 나무마다 연녹색 새싹이 돋아나고, 숲속에는 벌써 봄향기 그윽하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줄기는 푸른빛 짙어간다. 골마다 봄바람 살랑 불어오고 햇빛 따스하니 봄빛이 더욱 찬란하다. 따스한 봄바람에 몸은 나른해지고 진달래는 햇빛을 받아 더욱 곱다. 좋은 곳에서 흉한 일을 만나는 일이야 흔히 있는 일, 고난이 지나야 즐거움이 오고 즐거움이 지나치면 고난이 오는 것은 세상이치 아닐런가? 항상 교만과 게으름을 경계하고 수양해야 할 일이다.
인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우아하고 고상한 것 같지만, 대단히 어리석고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다. 인간의 감각이나 인지능력은 허술하고 믿을 수 없다. 인간은 말 한마디에 이렇게도 휩쓸리고 저렇게도 휩쓸리는 갈대 같은 존재다. 그래서 인간은 항상 성찰해야 하는 존재다.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의 인지심리학자 대니얼 사이먼스교수는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여러분을 테스트 할거예요. 영상을 보고 공이 몇 번 전달되었는지 횟수를 적어 내세요.” 그리고 25초짜리 영상을 보여주었다. 화면에는 흰색과 검은색 티셔츠를 입은 학생 여섯 명이 둥글게 모여 농구공을 주고받았다. 실험이 끝난 후 사이먼스교수가 물었다. ‘고릴라를 본 사람 있어요’ 실험 대상자 중 50%가 이렇게 대답했다. ‘고릴라 같은 것은 없었는데요’ 다시 그 영상을 보니 두 손으로 가슴을 치는 고릴라가 어슬렁거리는 장면이 있었다. 왜 50%는 고릴라를 보지 못했을까? 시선이 오로지 공에 쏠려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의 감각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의 인지구조는 불완전하며 얼마든지 외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조지 레이코프는 이러한 인지과학 연구를 바탕으로 언어가 어떻게 인간의 생각을 형성하는지 연구한 학자다. 인지는 심리학에서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으로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여 그 정보를 저장하거나 인출하는 정신과정을 말한다. 지각, 기억, 상상, 판단, 추리를 포함하여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을 나타내는 포괄적인 용어다. ‘코끼리를 생각하지마’라고 하면 오히려 코끼리만 머릿속에 떠오른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면 먼저 코끼리를 떠올려야 한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할수록 머릿속에는 더 강하게 코끼리가 떠오른다. 왜 그럴까? 조지 레이코프는 이것을 '프레임'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의 뇌는 어떤 대상이나 개념을 처음 접하면 그것을 인식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런데 모르는 것도 한번 알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그것을 인식하는데 시간이 짧게 걸린다. 뇌가 감각기관으로 들어온 정보를 처리하고 생각하는 데는 에너지가 많이 든다. 그래서 효율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생각을 처리하는 방식을 공식처럼 만들려고 한다. 프레임은 ‘기본 틀’이라는 뜻이다. 생각의 기본 틀이다. 인간은 생각을 쉽게 하기 위해 각자의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인간도 프레임 없이 살수는 없다. 프레임은 아이디어나 개념을 구조화하고 생각하는 방식을 형성하며, 행동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하지만 프레임을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형성되고 사용하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프레임을 사용한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것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작동방식이다.
예를 들어 어떤 여자가 인터넷에서 가짜 상품을 명품으로 속여 팔았다고 전해지자 인터넷에서 그녀를 사기꾼이라고 표현했다. 사기꾼이란 사기라는 범행을 저지른 사람으로 의심받는 사람이다. 그녀를 사기꾼이라고 말하면 그때부터 그녀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 진실과 상관없이 그녀는 사기꾼이 되는 것이다. 테러를 일으킨 IS 무장단체를 잔인하고 간악한 ‘테러리스트’라고 하지만, 그들을 지지하는 자들이 ‘용감한 전사’라고 여긴다. 용감한 전사라는 말을 듣는 IS무장단체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언제 누구든 심지어 어린아이들도 죽여도 된다는 잘못된 프레임에 갇혀 끔찍한 테러를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
이렇게 잘못된 프레임은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하고 무서운 결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인간이 이성을 가진 합리적인 존재라고 하지만 정부나 언론 또는 권위를 가진 사람이나 많은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말하면 잘못된 프레임으로 넘어간다. 그것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의 흥망도 그 나라가 어떤 프레임으로 작동하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1980년대 미국 대통령 레이건은 부자들의 편에 서서 ‘상속세’를 줄이자고 했다. 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해 상속세를 ‘죽음세’라고 표현했다. 상속세는 죽은 다음에 재산을 물려줄 때 붙는 세금으로 당연히 내야 하는 세금이다. 하지만 ‘죽음세’라고 하면 왠지 죽어서까지 세금을 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상속세를 줄이는 것은 부자들에게 유리한 정책이다. 하지만 당시 가난해서 물려줄 재산이 없는 사람들조차도 ‘죽음세’라는 말의 프레임에 갇혀서 상속세를 줄이자는 정책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것이 프레임의 힘이다. 프레임의 힘은 대단하다. 그래서 정치인, 정부, 언론은 프레임을 먼저 손에 넣으려고 한다. 조지 레이코프는 정치란 결국 ‘프레임 전쟁’이라고 했다.
인간은 자신의 프레임과 맞지 않으면 사실을 망각하거나 무시해 버린다. 사람들은 이미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프레임을 지키려는 속성이 있다. 그래서 사실이나 진실은 별로 의미가 없다. ‘코끼리를 생각하지마’라고 할수록 자꾸 코끼리만 생각나는 것처럼 오히려 기존 프레임을 강하게 만드는 역효과만 날 뿐이다. 자신이 기존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가치와 정체성을 담은 프레임을 끊임없이 점검하고 상황에 맞게 프레임을 만들어야 한다. 많은 문제들과 상황을 나의 가치로 해석하고, 인간으로서의 도덕적인 올바른 세계관으로 헤아려 보아야 한다. 사회의 무수히 많은 조직들은 그 나름대로의 프레임 속에서 움직인다. 그 프레임이 지켜야 할 원칙이 되고 구성원들을 구속한다. 그 프레임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도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기란 쉽지않다.
조지 레이코프는 이렇게 말했다
“ 프레임을 새로 조직하는 것은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려면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다르게 생각하려면 우선 다르게 말해야 한다”
1941년 12월 일본이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하면서 서태평양을 중심으로 전쟁을 벌였다. 우리는 이 전쟁을 ‘태평양전쟁’이라 하지만, 일본 정부는 ‘대동아전쟁’이라고 불렀다. 대동아大東亞전쟁이라고 한 것은 동아시아 번영을 위한 전쟁이라는 프레임을 만들기 위해서다. 일본국민은 일왕과 정부가 만든 대동아전쟁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전쟁터에 나가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자살특공대가 되었다. 일본은 폐전 후 제국주의자들에 대한 처리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제국주의 프레임에 갇혀있고, 우리나라는 해방이후 지금까지 반공프레임에 갇혀 남북이 분단되어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아가는 민주시민에게는 법을 어기는 것만이 범죄는 아니다. 잘못된 프레임으로 잘못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도 죄악 아닌가?
국가가 분열되고 전쟁이 일어나고 망하는 것도 프레임 때문이다. 인간은 언어로 생각하고 언어로 행동한다. 생각을 언어로 나타내기 위해서는 생각을 언어구조에 맞도록 조정한다. 언어구조는 사람의 정신세계를 형성한다. 우리를 우리답게 해주는 것이 언어다. 인간사회에 문명이 발달한 것은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었고, 또 그 언어로 인류는 멸망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어로 먹고 산다. 한 인간은 언어로 인해 행복한 삶을 살 수도 있고, 언어로 인해 불행한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은 언어로 생겨나고 언어로 사라진다. 국가 또한 그렇다. 언어로 그 사회에 좋은 문화를 꽃 피울 수 있고, 언어로 인해 모든 것을 잃고 분열되고 멸망할 수 있다. 그래서 언론이 중요하다.
현대 사회는 너무나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카오스의 세계다. 일반 민중이 인터넷과 미디어로 쏟아지는 언어를 제대로 판단할 능력이 없다. 언론이 올바른 시각으로 올바른 판단으로 올바른 프레임으로 민중을 이끌어야 한다. 그 사회의 언론이 잘못되면 어떤 개인이 언어로 인해 흥하고 망할 수 있는 것처럼, 그 사회도 그 사회에서 사용되는 언어로 흥하기도 망하기도 한다. 어떤 국가가 분열되고 독재자가 나타나고 전쟁에 내몰리는 것도, 어떤 프레임으로 그 나라 구성원들을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물질적 자원이 부족해서 그 나라가 빈곤하고 약소국인 것만은 아니다. 올바른 언어로 올바른 문화와 문명을 만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잘못된 프레임으로 서로를 적대적으로 만들면 하루 아침에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것들을 잃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