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파 2021. 5. 18. 15:28

오랜만에 산행을 한다. 안개가 온 세상을 덮고 있다. 이 세상에 오직 나 홀로 있는 것만 같다. 산 능선에 자리 잡고 앉아 안개가 바람에 날려가기를 기다린다. 세상은 고요하기만 하다. 모든 것이 멈춘 것만 같다. 그래도 이 순간이 좋다. 가끔씩 희미하게 산봉우리가 드러나기도 한다.

 

요즘은 주말이면 비가 와서 산행을 하지 못하고 있다. 백수가 꼭 주말에 산을 가야 할 것도 아닌데, 주중에 베낭을 메고 지하철을 타는게 어색하다. 이렇게 내 몸과 나는 사회적 관습, 문화, 가족, 다른 사람의 시선에 구속되어 있다. 나는 사진을 잘 찍지는 못한다. 하지만 사진을 찍는 그 행위가 좋다. 산을 찾아 사진을 찍는 그 순간만은 내가 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자유로움 같은 것이 있다. 그때 맘껏 내 숨을 쉬게 된다. 오롯이 나만의 감성으로 산속에서 자연을 보고 느끼고 소리를 듣고, 사진을 찍는 그 순간만은 나는 내 삶의 주체가 되어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David Yoon, 전방만, 외 13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