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일주일 전쯤 어느 날 창밖을 보니 눈이 펑펑 내립니다. 외출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서니 눈은 그치고 햇살이 구름 속에서 빼꼼히 얄밉게 나옵니다. 눈은 금방 사라졌지만 가을 흔적이 남아 있어 흘러가는 세월을 보여주는 쓸쓸함의 운치는 있습니다. 예전에는 잡월드를 볼 때마다 '또 누가 저것을 핑게로 얼마나 해먹었을고 '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은 모두 좋게 생각하려 합니다.
변화의 속도가 훨씬 빨라진 현세에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사는지를 알게 되면, 타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그래서 타인을 더 많이 인정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모든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곳이었으면 합니다. 탄천에 비친 반영이 좋습니다. 구름 속으로 햇빛이 들락날락 합니다. 사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순간을 포착하는 능력'이라고 합니다. 자연의 도움이 가장 절실하지만, 기다리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학창시절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주인공은 세상에서 자신을 구원해 줄 그무엇을 처음부터 끝까지 기다리다 그냥 끝납니다. 그때는 '무슨 이런 책이 노벨상을 받은거야'라고 무식한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평생 무엇을 기다립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현실보다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지금의 힘든 상황을 벗어나게 해 줄 무엇을 기다립니다. 그렇게 한 평생을, 무엇을 기다리다 죽습니다. 기다릴 그 무엇이 없다면 삶도 없습니다.
'만일 그가, 그 무엇이 오지 않는다면' 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항상 초조하게 내일을 기다리고, 또 혹시나 하고 모레를 기다립니다. 왜, 무엇을 기다리는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 어제 일도 잊어바리고 기다립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나는 기다리는 능력이 군자와 소인배를 구분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조급한 편입니다. 그래서 소인배에 속합니다. 군자는 멀리 서서 기다리고, 가까이 다가가서 기다리고, 어려워도 기다리고, 풍요로움 속에서 먹고 마시면서도, 해야 할 일을 하며 기다립니다. 세상을 믿고,하늘의 이치를 믿고, 사람을 믿고, 힘들어도 하늘이나 남의 탓을 하지 않고, 스스로를 성찰하며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