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아吾喪我
벌써 오십대인가 했는데 육십대를 넘어 육십대 중반이 되었다. 살아온 반평생 동안 아쉬움이 많이 남는 삶이라, 후반 삶은 성찰하며 살고자 했다. 항상 의심하며 살아가려 애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지금 나는 제대로 가고 있는가? 언제나 나의 스승이 되고 친구가 되어준 것은 책이다. 책을 통해 많은 스승을 만났고 친구를 만났다.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고, 책을 통해 만난 좋은 친구들 흉내를 내보려고도 한다. 지금 내 삶은 즐겁고 행복하다.
내 자신을 알아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욕심을 버린지 오래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가진 것은 없지만. 내가 가진 것들을 애지중지하며,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좋아하는 것들을 즐긴다. 늙어서 당당하며 추하게 살지 않기 위해 건강을 위해 의지를 발휘한다. 함께 책을 읽는 아이들 눈빛에서 삶의 의미를 느낀다. 시간이 나면 자연을 찾아 사진을 찍고, 가끔 방금 내린 커피 향과 함께 예전에 좋아하는 올드 팝을 들으면서 사진을 정리한다. 한장의 사진, 그 순간들을 회상해 보는 시간도 좋다. 세상이 고요할 때 피천득님과 법정스님의 수필집을 꺼내 홀로 소리내어 읽는 것도 좋다. 책으로 놀 수 있는 놀이는 너무 많다.
다시 러셀의 ‘행복의 정복’이라는 책을 읽는다. 나는 러셀에게 철학이 무엇인지 왜 철학이 필요한지를 배웠다. 그의 가르침이 접근하기 힘든 철학에 흥미를 갖게 했다. 러셀은 나의 철학 스승이다.
2020년 내 마음에 품고자 하는 말은 ‘오상아吾喪我’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나오는 말이다. 내가 나를 죽인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이념, 지식, 신념에 갇히지 않고, 세상을 향해 나를 열라’는 말로 이해한다.
모든 인간은 생존을 위해 자신만의 세상을 보는 시각이 있다. 이것을 우리는 관념이라고 한다. 인간마다 살아가는 환경과 경험에 의해 편향된 관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굳어진 관념, 신념은 그 사람의 삶을 힘들게 하고 파멸시킬 수도 있다. 그래서 모든 종교의 가르침도 이것이라 생각한다. 자기 속에 갇힌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고, 자비로울 수 없다. 인간의 본능을 거스르는 실천하기 어려운 가르침이다.
공부는 훈련이다. 내몸, 본능이 거부하는 것을 훈련을 통해 익히는 것이다. 나를 세상을 향해 열어두는 것, 철학을 공부하는 목적이기도 하다. 세상의 어떤 현상, 어떤 대상에 대해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다. 의심하여 질문하는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들에 대해서 의심하고 질문하는 능력을 배우는 것이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