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은퇴이후 아이들 교육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면서 자식들에게 아는 체를 많이 했다. 이번에 손녀가 태어나면서 얼마동안 손자를 돌보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손자를 한 달에 한두 번씩 만났었는데 이번에는 거의 20일간을 함께 지냈다. 어린이집도 가지 않고, 나와 거의 일상을 함께 하면서 지냈다. 내 삶에서 많이 후회하는 부분이 자식교육이다. 나는 자식교육에 대해 정말 무지하고 무심했다. 그래서 내 자식은 그런 후회를 하지 않았으며 하는 마음에, 그동안 아이를 이렇게 저렇게 양육해야 한다며 이러저런 잔소리를 많이 한 것도 있고 해서 잘해보고 싶었다. 손자와 함께 하는 동안 내 모든 시간, 에너지, 관심은 오로지 손자에 집중되었다. 나의 삶의 패턴이 완전히 무너졌다.
아이와 함께 지내면서 정말 아이를 잘 양육한다는 것, 누구를 진심으로 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실감했다. 2주 정도가 지나자 몸살이 왔고 편도가 붓게 되면서 더욱 힘들었다. 함께 하는 동안 손자는 TV를 보는 시간을 제와하고는 정말 입이 잠시도 쉬질 않았다. 그때마다 아이 눈높이에 맞춰 진심으로 대응하려 했다. 아이는 계속해서 무엇을 질문했고, 공룡놀이를 하면 공룡에 대해 뭐라 이야기하면서 나에게 무엇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아이가 관심이 많은 공룡이나 카봇에 대해 알지 못하는 나는 점점 아이에게 무시당했고, 아이의 할배에 대한 믿음도 점점 사라졌다. 함께 하는 시간동안 자기주장도 강해졌고 내 말을 더 이상 잘 신뢰(?)하지도 않았다 꼭 ‘왜요?’ 라고 물으며 내 말을 순순히 듣는 적이 없었다. 그냥 조용히 있으면서 손자가 책에 있는 공룡을 보여주면서 레고로 이 트리케라톱스를 만들어달라면 열심히 만들었고, 쥬라기공원을 만들자면 함께 만들었다. 책을 읽어주고 함께 놀이터에서 놀고, 자전거를 타고 탄천을 나가면 따라 다니면서 손자가 이것저것 쉼 없이 이야기하는 것에 열심히 반응해주었다. 도대체 아이는 지치질 않았다.
아이에게 의식이 생겨나면서 자신과 타인을 구별하게 되고, 자기 욕심이 생기고, 주장이 생기고 점점 다루기가 어려워졌다. 자기 생각이 있고 욕심이 있는 인간과 소통하는 일은 아이나 어른이나 힘든 일이다. 고집을 부리며 울고불면서 소란을 피우게 되면, 나도 함께 감정조절을 못하고 순간 아이를 어른대하듯 하게 된다. 아이와 소통하는 일은 정말 난이도가 높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어른과도 힘든 소통을 아이들과 어떻게 하겠는가? 상대를 알려고 노력하고, 그래서 상대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이 세상의 모든 잘못은 아이를 잘못 키운 부모들 잘못이다.’ 부모가 아이 마음을 헤아리고 제대로 소통하고 대응할 수 있다면, 그래서 아이가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준비가 제대로 된다면, 많은 사회문제가 사라지지 않을까? 아이와 제대로 소통하면서 아이가 타인의 감정을 헤아릴 줄 알고, 스스로 감정조절을 할 수 있게 키운 부모라면, 당연히 다른 사람들과 잘 소통할 수 있을 것이고, 아이 역시 어른이 되어서도 세상과 소통하면서 삶을 즐겁고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이 교육은 정말 힘든 일이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나서야 한다고 했던가?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아이 교육뿐 아니라 부모의 수련이기도 하다. 아이를 진심으로 전력을 다해 키우는 것은 진짜 어른이 되는 과정이다. 부모가 아이 교육에 대해 공부하여 아이의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아이를 인격적으로 대하며 존중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면, 그 사랑이 아이에 전해지고, 타인에게로, 온 세상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나는 모든 인간에게 자식교육에 대한 학습이 필수적이라 생각한다. 애완동물을 길러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인간이면서 인간에 대해 잘 모른다. 아이는 개나 고양이보다 훨씬 다루기 어려운 대상이다. 부모가 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리 인간이 부족해도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