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
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한자는 부수 하나하나가 의미를 갖고 있고, 그 의미가 모여서 또 어떤 의미를 만든다. 내가 한자 실력이 부족해서인지 모르겠지만, 한글처럼 명확하게 표현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문은 주석이 중요하다. 한문을 읽을 때 나는 의미들의 배열이라고 생각하고, 내 아는 지식 내에서 해석한다. 도덕경에 나오는 이 말을 나는 이렇게 해셕한다. 인간도 풀 한포기와 같으며, 자연의 일부분일 뿐이다. 자연은 인간이라고 해서 특별히 생각해주는 것은 아니다.
장마로 물난리가 나든, 가뭄으로 온 세상이 타들어 가든,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든, 자연은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가을이 느껴진다. 하늘은 맑고 푸르며, 불어오는 바람결의 풀 내음에 가을 향기가 묻어있다.
인간의 가치, 의미, 욕망, 목적, 꿈을 위한 가장 중요한 도구는 건강이다. 건강은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을 포함한다. 정신적 건강이란 정서적 능력, 감정조절능력, 감응능력, 대응능력 등 모든 것을 포함하며, 끈기, 성실 인내, 친절 배려 희생, 집중력, 용기, 도전 수용, 존경 등 그 모든 것 또한 포함된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 삶의 일차적 도구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도구들은 무시한다. 그런 것들은 타고나는 것이며, 또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의지에 의해 쉽게 할 수 있는 것들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도구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노력과 학습의 장이 필요하다. 물질은 인간의 2차 도구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돈이 삶의 필요한 물질을 구하는 최고의 도구다. 돈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믿음을 주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심리적 안정감, 미래의 가능성도 준다. 돈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권위를 갖게 하고, 당장 아무런 실질적 가치를 주지 않는다해도 어떤 만족을 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시생활을 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돈은 모든 것이다. 그렇게 인생의 복잡하게 얽혀있는 관계들도 돈으로 간단하게 정리된다. 이 세상 모든 물질들과 타인들을 포함 모든 관계는 돈으로 확실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인간들이 돈! 돈 한다. 돈을 벌어 무엇을 하겠다는 목적이 없으면서도 돈을 벌기 위해 무엇이든 하기 위해 에너지를 쏟을 수 있고, 스스로 잘 살고 있다는 자부심,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을, 긍지를 가질 수 있다. 어떻게 하든 돈만 있으면, 돈만 벌면 된다.
물질적인 것 역시 중요한 삶의 도구지만, 인간에게 진정한 삶의 도구는 지식이라 나는 생각한다. 인간의 생존의 도구는 지능으로 만든 몸의 일부분이 된 지식이다. 관념일 수도 있고, 생각, 이성일 수도 정신적인 그 모든 것이다. 물질은 지식적인 것, 정신적인 것을 구현하기 위한 도구다.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내가 익힌 도구들, 지식을 이용하여 내가 만든 새로운 지식은 다시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가 된다. 그 도구로 내가 달성한 목적은 다시 다른 목적을 위한 도구가 된다. 그렇게 달성한 목적이 새로운 목적을 위한 도구가 된다. 많은 시행착오와 실패와 좌절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좋은 삶의 도구가 되는 이유다.
어떤 궁극적 목적,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 단계를 거치기 위한 많은 다양한 도구들이 필요하다. 공부도, 정신적 사고, 깨달음도 마찬가지다. 불교의 선문답이나 철학자들의 삶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삶의 많은 지식들의 도구로 인한 깨달음이 있어야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경지다.
현시대는 어느 분야나 돈이 최종 목적이다 돈은 지식, 사랑, 역량, 의미, 명예, 그 모든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돈이 최종 목적이 되어 인간사회의 다른 모든 것들을 지배하고 있다. 돈, 그 자체로 아무 가치가 없는 돈은 인간이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였다. 이렇게 인간사회에서 돈이 절대적 가치를 갖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神 역시 인간이 만들었고, 오랜 세월동안 절대적으로 숭배하게 되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神 조차도 돈을 위한 도구가 된다. 법도, 의료도, 교육도, 과학도 그 모든 것이 향하고 있는 궁극적인 목적은 돈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들, 궁극적인 목적들은 돈을 위한 도구가 되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우리가 돈의 노예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직 공부하는 의과대 학생들이 정원을 늘리는 것에 대한 반대 시위를 하는 것도 그렇다. 한참 공부할 시기에 이미 돈의 노예가 되어 있다. 생명을 다루어야 하는 의사가 되어 환자를 치료해야 할 그들이 오로지 의료기술로 돈만 벌겠다는 정신적 기반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돈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대부분의 오염된 인간도 혈기왕성한 학창시절에는 그래도 정의로운 분노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가? 사회에 나가 살다보니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오염되었다 하더라도, 학창시절에는 최소한 의사로서의 윤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청춘들이 성장하여 행하는 의료행위를 믿을 수 있겠는가? 어찌 그들이 과도한 의료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